가계부채 기우론과 반박

▲ 지난 23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고소득층에 몰려 있어 상환부담 우려가 크지 않다고 발표했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어느새 130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부채 증가율은 2년 연속 두자릿수를 찍었다. 그런데도 “가계부채의 우려는 과장됐다”는 주장이 쉼없이 제기된다. “부채보다 자산이 더 많다” “부채가 많으면 소비도 증가한다” 등이 근거다. 정말 그럴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주장의 허점을 찾아봤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연 증가율은 놀랍게도 11.7%에 이른다. 그럼에도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월 7일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위험한 단계가 아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도 “채무 상환에는 큰 부담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려를 일축했다. 증권사들도 보고서를 통해 “가계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금융권의 이런 분석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질문 ➊ 금융자산 많아 괜찮나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가구 중 대다수는 부채보다 금융자산이 두배 가까이 많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6월 무디스가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해 3분기 금융자산 대비 부채는 45.3%였다. 2015년 말 44.8%에 비하면 소폭 상승했지만 2010~2015년 평균인 45.9%와 큰 차이가 없다. 금융자산 대비 부채가 여전히 50%를 밑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무상환 부담이 적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지난 23일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내놓은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고소득자와 고신용자에 몰려 있어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낮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소득상위 30%의 고소득자와 신용등급 1~3등급의 고신용자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각각 65.5%, 65.7%에 달했다. 순자산으로만 따져보면 4~5분위(상위 40%) 가구가 전체 부채의 60.8%를 차지했다.

무디스와 한국은행의 주장 모두 얼핏 설득력 있게 들린다. 문제는 두 곳의 주장 모두 저소득층의 부채 문제를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저소득자(하위 30%)의 가계부채 규모는 약 77조원으로 전체의 6.2%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이 미칠 영향은 적지 않다.
송종운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이사는 “현대 경제는 서로 얽히고설켜있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무너지면 고소득층도 타격을 입는다”면서 “저소득층에 채무불이행, 디폴트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회사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는 금융회사 자산 중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고소득층에도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소득층의 부채를 기반으로 하는 펀드가 단적인 예”라면서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도 저소득층의 부채를 묶은 펀드가 무너지면서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질문 ➋ 부채 증가하면 소비도 늘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가 늘면서 소비도 덩달아 증가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부채는 소비를 가속화하는 동시에 자산도 증대시킨다. 이른바 ‘부채의 자산증식 레버리지 효과’다.

이 애널리스트는 “부동산 경기가 활황을 맞으면서 부채는 자산을 키우고 있다”면서 “글로벌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수요가 늘면 부채는 소비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당 증권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별 평균 부채 증가액은 약 399만원에 불과했지만, 평균 가계자산 증가액은 약 15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펴는 경제전문가들도 있다. 한 경제전문가는 “일정 시기까지는 부채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게 분명하다”면서도 “하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면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져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더구나 금리까지 인상되면 유동성 제약 완화효과와 원리금 상환부담의 역전 현상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면서 “소득이 받쳐주지 않으면 빚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빚 아닌 소득 통해 소비 늘려야

▲ 부채의 자산증식 레버리지 효과를 더 이상 보기 힘들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실제로 우리나라 가계의 원리금 상환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고위험가구의 부채 비중은 7%로, 전년 대비 1.3%포인트 증가했다. 고위험가구는 원리금상환비율(DSRㆍ대출상환능력 심사기준)이 40%를 넘거나 자산평가액 대비 부채 (DTA)가 100%를 넘는 가구를 말한다.

부동산 건설시장에 거품이 끼고 있는 건 또다른 뇌관이다. 지난해 부동산 건설시장의 국내총생산(GDP) 기여율은 51%에 육박했다. 반면 설비가동률은 -2%에 그쳤다. 고용ㆍ투자활동 등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보다는 부동산을 활용한 단기적인 경제활성화에 급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송종운 이사는 “부동산에 활력이 감돌기 때문에 부채가 소비를 활성화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면서 “부동산에 껴있는 거품을 감안하면 부동산 시장의 활황이 되레 문제를 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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