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는 절대 잠들지 않는다
이자는 절대 잠들지 않는다
  • 김다린 기자
  • 호수 233
  • 승인 2017.03.30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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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무서운 진짜 이유

“한국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다.”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가계부채를 두고 전망이 엇갈린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을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있다. 우리가 가계부채 1300조 시대를 사상 처음으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예측할 수 없는데서 발생하는 리스크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지금 우리 경제가 그렇다.

▲ 우리나라는 아직 가계부채 부실로 인한 위험을 겪어본 적이 없다.[사진=뉴시스]

“가계부채를 두고 우리 경제를 무너뜨릴 뇌관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엄청 급한 불은 아니라고 보는 모양이다. 기껏해야 ‘이자급증→소비 감소→국내 경기 부진’ 정도를 언급한다. 그도 그럴게, 아직까지 대출금리가 폭등하거나 연체율이 증가한 일이 없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을 따져보면 가계부채를 리스크로 예단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 말이다. 우리는 가계부채의 공포를 모른다. 이렇게까지 규모가 늘어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부채. 혹자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고 혹자는 독毒이라고 한다. 어쨌든 자본주의는 부채를 먹고 산다. 좀 더 풀어보면,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돈을 대출하는 방식으로 통화를 유통한다. 시중은행은 이 돈을 가계나 기업에 빌려주며 이자를 받는다. 기업과 가계는 은행에 손을 벌리지 않고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부채는 ‘독’이 아니다. 도리어 부채의 성장은 자본주의의 자양분이다. 늘어난 부채가 소비와 투자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철학이 한국경제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344조원으로 폭증했다. 2002~2013년 연평균 50조원씩 늘어나던 가계부채는 2014년 66조원, 2015년 118조원, 2016년에는 141조원이 증가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두고도 정부는 ‘당장은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미국이 긴축통화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다급한 모습은 아니다.

 

낙관론의 배경에는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건전성을 좋게 보는 데 있다. 가계 대출의 70%가 소득 상위 4~5분위에 몰려 있고, 연체율이 높지 않다는 게 근거다.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니 독으로 작용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여기엔 ‘가계가 빚을 갚을 수만 있으면 문제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가계부채 정말 괜찮나

그런데 바로 이 믿음이 문제다. 가계가 빚을 갚지 못한다면 한국경제는 예상이 못한 불행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 가계부채 위기요인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먼저 빚을 갚기 위해서는 소득이 뒷받침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소득과 부채를 비교한 지표는 암울하다. 지난해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165.4%. 2015년 157.5%에서 1년 사이 약 8%포인트나 급등했다. 1년 내내 번 돈을 다른 곳에 안 쓰고 빚 갚는데 써도 부채의 절반 넘게 남는다는 얘기다. 이는 소득보다 빚 규모가 더 빨리 불어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0.6% 증가하는 사이 대출은 11.7%나 늘었다.

물론 긴 시간 허리띠를 졸라맨다면 갚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빚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변동금리를 타고 스스로 몸을 부풀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의 비중은 71.6%에 달한다. 대출자 대부분이 금리 인상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는 얘기다.

착실히 갚아나갈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만기일시상환 비중이 너무 높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중 만기일시상환 비중은 56.7%로 절반이 넘는다. 상호금융업권의 비중은 92.1%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당장은 원리금 상환 부담이 적지만 만기가 되면 상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발생한 리스크의 1차 습격대상은 취약계층이다. 저소득ㆍ저신용층, 다중채무자의 가계부채가 늘고 있다. 잠재적 취약계층으로 꼽히는 자영업자와 고령층 대출의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 더 큰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가 취약계층을 겨냥하고 있는 탓에 그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데다 워낙 부실한 곳을 건드리고 있어서다.

취약계층, 가계부채 1차 습격대상

박창균 중앙대(경영학) 교수의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자. “1997년 외환위기, 우리나라는 기업 대출의 위험성을 경험했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을 뿐만 아니라 대량 실직과 가족해체, 생계고에 따른 자살 등 수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를 앞서 예측한 전문가는 없었다.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계부채 부실을 경험한 적 없다. 어떤 통계로도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도 ‘어느 정도의 가계부채 수준이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냐’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확실한 건 있다. 우리는 가계부채 1300조원 시대를 처음 살고 있다.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여러 대책을 꺼냈지만 증가세만 가팔라졌다. ‘가계가 부채 규모를 줄이고 상환능력을 올리는 원론적인 해법 밖에 없다’는 우울한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캄캄한 경제 상황을 비춰볼 때,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계부채 리스크를 걱정하는 사이에도 빚에는 이자가 붙고 있다. 이자는 결코 잠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계대출이 무서울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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