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못 넘은 3만달러 벽

▲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정치 지도자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5월 대선이 중요한 이유다.[사진=뉴시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7561달러(약 3198만원)에 머물렀다. 2006년 이후 11년째 3만 달러 벽을 넘지 못했다. 2014년부터 3년 연속 2만7000달러대를 맴돌았다.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가는데 독일이 4년, 일본은 5년, 미국이 9년 걸린 것과 비교하면 너무 오래 2만 달러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지금 한국은 성장이 정체되고 소득이 늘지 않는 ‘중진국 함정’에 빠진 양상이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 압축성장한 결과 나타나는 물가와 인건비, 지대 상승과 지역ㆍ계층간 소득격차에 따른 사회갈등, 복지욕구 증대와 같은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그리 하지 못해서다. 이러다가 브라질ㆍ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처럼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주저앉거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버금가는 장기 불황을 겪을 수도 있다.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은 이미 시작됐다. 최근 5년 동안 2014년 한 해만 빼곤 계속 2%대 성장이다. 올해도 잘해야 2%대 성장이지 삐끗했다간 1%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 내수 부진이 심각한데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등 우리가 어쩌기 힘든 정치화한 대외 경제변수 악재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11년째 2만 달러 벽에 갇힌 데는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낡은 패러다임 경제정책도 작용했다. ‘경제 대통령’을 외치며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최대 국책사업은 4대강 개발사업이란 토목공사였다. ‘한국형 녹색 뉴딜사업’을 표방하며 22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물길을 인위적으로 바꿈에 따른 보와 댐의 안전 문제에 유속이 느려져 수질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제치고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찾으며 ‘중소기업 중심경제’를 선언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하고, 창조경제를 핵심 어젠다로 제시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임기 내 ‘474 공약(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을 현실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실제 집행한 정책은 연례행사화한 추경예산 편성에 ‘빚 내 집 사라’는 부동산 경기 띄우기였다. 결국 그 바람에 국가채무와 가계부채가 폭증했다. 474 공약 중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했고, 잠재성장률은 2%대로 추락했다. 급기야 비선실세 최순실과 공모한 정경유착 비리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됨으로써 코리아 디스카운트까지 초래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아베 일본 총리는 과감한 돈 풀기와 규제완화, 친기업정책으로 일본경제를 침체의 늪에서 구출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제조업의 성장을 발판으로 서비스업의 선진화를 꾀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낡은 정책으로 타이밍을 놓치고 신산업 태동을 위한 규제개혁에도 실패했다. 그간의 성장동력이었던 제조업마저 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 구조조정 실패로 응급 상황에 처했다.

한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의 관건은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이다.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고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ㆍ벤처기업이 공생하는 산업 생태계와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국민성장’ ‘공정성장’ ‘혁신성장’ 등 성장담론을 거론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구체성이 부족하다.

정당별 대선 후보의 공약을 꼼꼼히 살피자. 5월 9일 장미 대선에서 또다시 실현 가능성이 없는 포퓰리즘이나 헛공약에 넘어가 검증되지 않은 후보를 선택해 후회해선 안 된다. 추운 겨울 광장에 운집한 1500만 촛불 시민이 “내가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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