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보수 망친 트로이목마들
[윤영걸의 有口有言] 보수 망친 트로이목마들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34
  • 승인 2017.04.0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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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ㆍ황교안ㆍ박근혜의 패착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올림머리만 국민에게 남겼다. 민심을 외면한 게 비극의 씨앗이었다.[사진=뉴시스]
트로이전쟁 때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연합군은 트로이를 침략했으나 10년간 승패가 갈리지 않자 오디세우스가 꾀를 낸다. 나무로 거대한 말을 만들어 그 안에 자신을 포함한 날랜 무사 수십명이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리스군 함대는 후퇴하는 척 시야에서 사라진다.

여기에 속아 넘어간 트로이군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승리의 축제를 벌이고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다. 새벽이 되자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군이 빠져나와 성문을 열어 트로이를 함락시킨다.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 요인에 의해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비유하는 뜻으로 쓰인다.

이 땅의 보수가 트로이목마 때문에 궤멸하게 생겼다. 첫번째 트로이목마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다. 마땅한 보수후보가 없던 과거 집권여당은 입지전적 인물의 상징인 그를 영입해 정권 재창출을 꿈꿨다. 소통 부재의 정치에 목마름을 느낀 국민에게 그의 존재는 오아시스였다. 마침 불어온 ‘충청대망론’의 순풍을 타고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반 전 사무총장은 꽃가마를 무임승차할 생각만 했지 어떻게 나라를 이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다. 허둥지둥하다 한국정치가 이럴 줄 몰랐다며 원망의 변을 남기고 사퇴했다. 반 전 총장의 정치실험은 시작하자마자 끝이 났고, 보수는 치명타를 입었다.

두번째 트로이목마는 황교안 국무총리다. 박근혜 정권에서 사직을 통보받았던 그는 탄핵열풍 속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행운’의 관료다. 그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대권을 향한 권력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애당초 이룰 수 없는 꿈을 꾼 셈이었다. 지지율이 10% 내외에서 지지부진하자 자의반타의반으로 출마의사를 접는다. 진작 청산됐어야 할 친박 골수세력들은 황 대행의 지지율에 숨어 시간을 벌었다. 황 대행이 대선출마를 놓고 미적거리는 사이 본의 아니게 수구 세력들의 숙주宿主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번째 트로이목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세월호 당일 행적에서부터 질타를 받던 그는 최순실과의 국정농단이 밝혀진 이후에도 책임회피로 일관하면서 자신에 대한 비난을 보수 전체의 문제로 떠넘겼다. 부패 대 반부패라는 프레임이 어느새 보수 대 진보로 바뀌었다. 박근혜가 친박과 TK(대구ㆍ경북)를 정치적 인질로 삼아 보수 진영을 분열시키는 바람에 보수의 마지막 회생 가능성까지 막아버렸다.

촛불의 분노와 함께 무임승차한 진보측은 박근혜의 이런 행동으로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내년의 지방선거, 3년 뒤의 총선까지 꽃놀이패를 손에 쥔 셈이다. 감옥에 갇힌 박근혜는 자칫 진보진영의 ‘마리오네트(실로 조종하는 인형)’가 될지 모른다.

국가라는 비행기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쪽 날개로 날아갈 수 있다. 시장경제와 국가 안보에 강점이 있는 보수는 복지와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와 선의의 경쟁체제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예측불허와 상식에 반하는 박근혜의 행동으로 이번 대선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구멍 난 운동장이 돼버렸다. 대선을 앞두고 자유시장경제에 반하는 공약이 난무하고, 북한 핵위협으로 안보불안이 커져가니 보수의 분열과 몰락이 더욱 아쉽다.

세월호가 3년 가까이 수장됐다가 목포신항으로 돌아오는 항해를 시작하는 2017년 3월 마지막 날, 마침내 박근혜는 차가운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기막힌 인연이다. 박근혜의 운명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는 날 304명의 희생자와 함께 가라앉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세월호는 그냥 세월호가 아니었다. 우리가 버려야 할 모든 부정부패, 소통부재, 오만, 차별 등 지상의 모든 악惡을 담고 침몰했다. 이 때 대통령 박근혜는 이렇게 선언했어야 했다. “세월호가 바로 나다.” 그리고 국가 대개조에 나섰어야 했다.

훌륭한 지도자는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청와대를 떠나는 모습이나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모습이나 그의 행동이나 언어에는 감동이 없다. 그저 억울하다는 하소연만 가득하다. 그래서 폐허가 된 트로이성 유적을 걷는 것처럼 허전하다.

보이기 위한 올림머리만 국민의 기억에 남겼을 뿐 그는 끝까지 민심을 외면했다. 개인 박근혜의 몰락보다 더 큰 비극은 보수의 동반침몰이다. 감옥에서라도 본인의 정계은퇴와 친박폐족을 선언하고 골박(뼛속까지 친박), 삼박(삼성동 자택까지 따라온 친박)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 땅의 보수를 놓아줘라.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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