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구속 그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 31일 구속됐다. 박 전 대통령은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구속된 전직 대통령에 세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삼성, SK, 롯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엮여 있어서다. 그렇다고 흔들릴 한국경제를 생각해 여기서 멈춰서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잔가지를 쳐내야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

▲ 3월 31일 서울중앙지법은 박근혜 전 박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사진=뉴시스]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ㆍ상당성이 인정됐다.” 3월 31일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가 밝힌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사유다. 그동안 법조계 전문가들과 각종 단체, 시민들 사이에선 “구속은 당연한 수순이다”는 의견과 “구속할 필요는 없다”는 격론이 오갔다. 법원이 ‘구속’을 결정했을 때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그 자체로만 해석하기보다는 좀 더 넓게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속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느냐에 주목해야 한다는 거다.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구속으로 범죄 혐의가 유죄로 입증된 건 아니다. 하지만 핵심은 법원이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검찰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했다는 데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이 “박 전 대통령 구속 이후의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다.


반대로 말하면 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와 관련된 이들에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수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제시한 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총 13가지인데, 그 가운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 대가로 433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주요 공소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이 부회장은 뇌물 공여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대가성’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공모 관계의 핵심인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이후 법적 공방에선 검찰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朴 구속으로 비상 걸린 대기업


특히 검찰은 최순실씨와 박 전 대통령이 미르ㆍK스포츠재단을 사실상 공동운영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 부회장 등 관련자가 모두 구속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후 법원이 검찰의 주장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부회장의 공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는 고스란히 삼성의 악재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은 “삼성의 리더십 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면서 “당장의 경영에는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이 부회장의 부재가 지속된다면 삼성은 유례없는 대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삼성만이 아니다. SK, 롯데, CJ 등도 초긴장 상태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오고간 금액의 정체가 뇌물로 좁혀지면 이들 기업도 검찰의 칼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구속에 힘입어 SK와 함께 롯데, CJ로 이어지는 도미노 수사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SK, 롯데, CJ 등이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자금을 뇌물로 볼 수 있는지를 우선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별수사본부는 이들 기업이 거액을 출연하면서 청와대에 현안 해결을 요구한 정황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대가성’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우연히도 이들 기업은 같은 시기에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수혜를 받았다. 최태원 SK 회장은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이후 사면됐고, 롯데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이후 면세점 특허권을 획득했다. 지난해 5월 K스포츠재단의 하남 체육시설 건립사업에 70억원을 기부했다가 서울중앙지검의 압수수색을 앞두고 돌려받아 의혹은 증폭됐다. CJ그룹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사면 이후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주도한 K컬처밸리 사업에 1조원대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경우에 따라선 세 기업의 총수들도 검찰소환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중에서도 CJ그룹의 피해가 상당할 거란 전망이다. CJ그룹은 지난 2013년 7월 이 회장이 구속된 이후 3년간 오너 부재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제 막 부활을 꿈꾸던 찰나에 또다시 된서리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그룹 공채 폐지한 삼성

한편에서는 이미 경제적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의 공채 폐지다.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이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이후 해체되면서 그룹공채 제도가 사라졌다. 삼성그룹은 2018년부터 계열사별로 채용을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계열사 자율 채용 시스템이 도입되면 비용 절감을 위해 필요한 인원만 뽑게 돼 채용규모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삼성그룹 공채에서 실시하던 비수도권 인재 채용 쿼터제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 삼성그룹은 35%는 지방대생, 5%는 저소득층으로 채용했다.

문제는 재계 1위 삼성의 행보가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공채 폐지는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면서 “재계 1위라는 상징성이 큰 삼성의 움직임은 다른 그룹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고용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분명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당분간 우리 경제에 미칠 여파는 크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한번 잘못 심은 뿌리는 뽑아서 다시 심지 않으면 갈수록 기반이 약해질 거라는 점이다. 대신 박 전 대통령과 관련 기업들의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역풍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수사가 길어져 대선까지 이어질 경우 정치적 프레임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정치 상황에 맞췄다는 의혹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하루빨리 묵은 때를 벗겨내고 재정비해야 할 때다.


이기현 더스쿠프 객원기자 webmast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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