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롯데그룹

말 많고 탈 많은 롯데가 기로에 서있다. 신격호 총괄회장 체제에서 신동빈 회장 체제로 세대교체는 사실상 마무리됐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다. 복잡하게 얽힌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하고,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도 재추진해야 한다.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 탓에 현지사업도 진퇴양난이다. 변해야 한다고, 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걸림돌이 너무 많다. ‘퇴장하는 아버지 신辛’ 이후의 롯데를 분석했다.

▲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롯데가 기로에 서있다.[사진=뉴시스]
“고령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렵다고 판단돼 재선임을 하지 않기로 했다(2016년 3월 롯데제과 정기 주주총회).”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 등과 맞물려 불가피한 일이다(2017년 3월 롯데쇼핑 정기 주주총회).”

롯데그룹의 창업주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속속 물러나고 있다. 지난해 3월 롯데제과와 호텔롯데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데 이어 최근엔 롯데쇼핑 주총에서도 신 총괄회장을 등기이사로 재선임하지 않았다.

3월 24일 오전 롯데쇼핑은 서울 영등포 당산동 롯데빅마켓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총에서 롯데쇼핑은 이원준 유통 BU(Business Unit)장과 강희태 롯데백화점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신격호ㆍ이원준 체제이던 롯데쇼핑이 이원준ㆍ강희태 체제로 변경된 거다. 이로써 신 총괄회장은 1979년 이사직에 오른 지 38년 만에 롯데쇼핑에서 퇴장하게 됐다.

신 총괄회장의 퇴장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지난해부터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등기이사 명단에서 순차적으로 이름이 지워지고 있어서다. 임기가 남아 있는 계열사에서도 마찬가지다. 5월 예정인 롯데자이언츠, 8월 예정인 롯데알미늄 주총에서도 신 총괄회장은 재선임되지 않을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1922년생, 올해 95세인 고령도 문제지만 성년후견인(법정대리인)을 지정받아야 할 정도로 건강이 부쩍 나빠진 탓에 더이상 경영 참여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사실상 신 총괄회장의 시대가 롯데 창립 50년 만에 막을 내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신 총괄회장이 1967년 4월,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롯데 역사는 시작됐다. 이후 롯데알미늄, 롯데호텔, 롯데쇼핑, 롯데자이언츠, 롯데물산 등을 차례차례 세우며 ‘신격호의 롯데’를 화려하게 장식해갔다.

경영구도가 신 총괄회장에서 차남인 신동빈 회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건 2015년 7월께다. 2011년 2월 신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신 총괄회장은 주요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유지, 그룹 경영에 관여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5년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 정기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부터 얘기가 달라졌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 총괄회장이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촉발한 것도 이때부터다.

원톱 체제에 돌입한 신 회장은 롯데제과와 주요 계열사 지분을 조금씩 사들이며 지배력을 강화했다. 반대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월 블록딜로 롯데쇼핑 지분 5.5%를 매각하는 등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여전히 신 전 부회장 측은 “경영권 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신동빈 체제’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첫걸음 뗀 ‘뉴롯데’의 미래

문제는 지금의 롯데가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너무 많이 안고 있다는 데 있다. 롯데는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상장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그룹을 불투명하게 운영해왔다는 방증이다. 신 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을 첫번째 목표로 삼고 있는 이유다. 각종 의혹과 비리로 얼룩진 기업 이미지도 바꿔 나가야 한다. ‘준법경영’이라는 키를 내세워 지난 2월 컴플라이언스 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 10월 정책본부 축소, 지주회사 전환 추진 등을 포함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런 밑그림을 통해 ‘뉴롯데’를 만들겠다는 거다. 2월에는 조직개편 및 정기 임원임사를 통해 전략을 구체화했다. 조직을 유통ㆍ식품ㆍ화학ㆍ호텔 및 서비스 등 4개 BU(Business Unit) 체제로 개편해 각각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정책본부도 기존보다 70% 축소된 인원으로 재편했다.

뉴롯데 건설을 향한 첫걸음을 뗐음에도 신 회장의 ‘뉴롯데’는 기로에 서있다. 재판은 계속되고,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는 기약이 없다. 안 그래도 골치인 중국 사업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관련 이슈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고 둔 수는 되레 국민들에게 반감만 샀다. 도통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는 거다.

▲ 롯데가 신격호 시대에서 신동빈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롯데월드타워 대들보에 새겨진 신격호·신동빈 부자 서명.[사진=뉴시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변화를 위한 적기라는 의견도 있다. 김희천 고려대(경영학) 교수는 “수많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롯데가 바뀔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동안 롯데는 투명하지 않은 경영, 복잡한 지배구조 탓에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국민과의 소통에도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다른 분야 사업 역량도 충분한데 ‘껌 팔아서 큰 기업’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소통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위기인 지금이 되레 기회

김 교수는 롯데가 그동안 버리고 가야 할 문제, 몸에 맞지 않는 문제까지 끌어안고 왔다면 지금이 이런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최관순 SK증권 애널리스트도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지주회사 전환’을 공식화한 만큼 롯데의 의지는 확고하다”면서 “다만 비자금 관련 검찰 수사와 횡령ㆍ배임 등으로 재판 중이라 그 시기를 확정하긴 어렵지만 최종 종착지가 지주회사 전환인 만큼 이런 과정을 통해 재평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 측도 “지배구조 개편, 호텔롯데 IPO 재추진 등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기업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하나씩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고 전했다. 3일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Lifetime Value Creator’라는 새로운 비전을 내놓은 신동빈호號가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뚫고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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