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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사진관] 두 자폐아 엄마의 꿈 “내가 죽더라도…”제5막 임신화 꿈고래놀이터 부모협동조합 이사장
[234호] 2017년 04월 04일 (화) 10:01:28
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

맏이도, 둘째도 ‘중증 발달장애아(자폐아自斃兒)’로 태어났다. 아빠도, 엄마도 유전적 질환이 없었지만 마음이 불편한 ‘두 천사’를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엄마는 눈물만 흩뿌리지 않았다. 세상의 편견을 온몸으로 뚫으면서 ‘자폐아를 위한 텃밭’을 가꿨다.

‘엄마가 죽더라도’ 두 천사가, 아니 세상의 발달장애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그녀의 꿈이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엄마 임신화(42) 꿈고래놀이터 부모협동조합 이사장과 두 천사 동현(13), 혜승(11)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 1장. 엄마, 맏이의 마음을 보다

“엄마 배 속에 있던 아이란다.” 바다 고래마저 벌벌 떨 만큼 추웠던 2007년 2월 5일 늦은 오후, 경기도의 한 산후조리원. 엄마(임신화)는 전날 태어난 2.76㎏ 무게의 쪼끄만 아기를 두살 터울 오빠(동현)에게 소개했다. 14시간 진통 끝에 찾아온 사슴 같은 눈을 가진 아기(혜승)였다. 엄마는 하늘이 보내준 선물을 맏이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말수가 유독 적은 아이였다. 유별날 정도로 자아自我가 단단했다.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엄마를 찾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 제힘으로 하려 했고, 못 하겠으면 엄마 손을 거칠게 끌어당겼다. 이웃들은 이 별난 아이를 ‘기특하다’며 칭찬했다. “아들만 믿고 살면 되겠네. 부럽다 부러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엄마는 ‘찬란한 미래’를 꿈꿨다. “난 아이를 꿋꿋하면서도 창의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키울 거야. 영화감독, PD, 예술가… 음, 멋진데….” 말문이 트이지 않은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아이 아빠도 그랬단다”는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면 ‘걱정 끝 웃음 가득’이었다.

▲ 무관심하던 동현이가 장난을 걸자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혜승이도 재미난 듯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런데 둘째를 처음 만난 그날, 맏이는 참 낯설었다. 천사 같은 아기를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질투 때문은 아니었다. 관심이 없는 듯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통제도 잘 안 됐다. “그러면 안 돼”라는 아빠의 호통에도 맏이는 산후조리원을 헤집고 다녔다.

엄마는 예민해졌다. 돌이켜보니, 저런 모습은 한두번이 아니었다. 편의점만 보면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막무가내로 건너간 적이 숱했다. 잠깐 한눈판 사이 사라져, 집안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은 일도 많았다.

둘째가 태어나 그토록 기쁜 날. 엄마는 맏이의 ‘자폐증’을 처음으로 의심했다.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건 아닐까? 에이 아니겠지, 설마.” 하지만 엄마의 직감直感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 2장. “미안해, 내 아들아!”

그로부터 10여일 후. 젖을 배불리 먹은 둘째가 새근새근 잠들자 엄마는 컴퓨터를 켰다. PC를 ‘켰다 껐다’ 한 게 벌써 5일째. ‘설마가 현실이 될까’라는 무서움, ‘현실이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탓에 엄마는 ‘망설임’을 반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순 없었다. 점점 날카로워지는 직감 탓에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쿵쿵대는 가슴을 누르고 PC를 켠 엄마는 ‘자폐아 조기발견 체크리스트’를 검색했다. 총 10개의 항목. ‘네라는 대답이 7~8개 이하면 자폐를 의심해야 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 동현이는 요즘 차를 타는 걸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엄마가 핸들을 잡는 시간이 늘어났다. [사진=오상민 작가]

엄마는 천천히 눈을 내려 질문을 읽었다. “아이는 엄마와 눈맞춤을 합니까?” “엄마가 ‘저기 봐라’ 하면 가리키는 대로 아이가 함께 보나요?” “엄마의 지시에 따라 아이는 장난감으로 먹는 척을 하나요?”

세번째 질문까지 읽은 엄마는 창을 내리고, PC를 껐다.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질문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길로 엄마는 맏이의 손을 붙잡고 병원에 갔다.

결과는 엄마의 바람을 외면했다. “자폐가 의심됩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맏이처럼 베개를 끌어안고 방구석에 앉았다. 그제야 맏이의 마음이, 맏이의 불편함이 보였다. “엄마 때문이야. 미안해, 미안해.” 엄마의 눈물이 베갯잇을 슬프게 적셨다.

# 3장. 가장 슬픈 생일선물

자폐, 自閉, Autismus. 현실과 살아 있는 접촉의 상실(민코프스키).

엄마는 맏이가 현실과 동떨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유명하다는 사설 아동발달센터를 찾아다니면서 언어, 인지, 감각통합 등을 닥치는 대로 가르쳤다. ‘맏이가 스스로 닫은 문門을 열 수만 있다’면 천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럴수록 현실의 높은 벽을 절감했지만 엄마의 집착은 심해졌다.

그나마 둘째가 얌전한 아이라서 다행이었다. 둘째까지 속을 끓였다면 ‘못 살았겠구나’ 싶었다. 가끔씩 오빠처럼 멍하게 있거나 느닷없는 행동을 하곤 했지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늘이 아무리 냉정하더라도 둘째까지 ‘자폐아’일 리는 없었다.

▲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현이는 하교 후 꿈고래놀이터 부모협동조합에서 치료를 받는다. 이곳은 동현이가 좋아하는 따뜻한 보금자리다. [사진=오상민 작가]

엄마는 “맏이가 3~4살 땐 그 아이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된다는 생각만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야속한 신神은 엄마의 바람을 외면했다. 그토록 헌신했건만 맏이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점점 더 엄마의 눈을 피했고, 엄마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2010년 2월 5일, 맏이의 만 5살 생일날. 엄마는 마음만큼이나 차가운 바람을 뚫고 동사무소(수원시 우만동)로 향했다. 그 한편에 자리를 잡은 엄마는 무언가를 멍하니 기다렸다. 침묵의 시간 10여분, 동사무소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현이(맏이) 어머니.”

직원은 엄마에게 주민등록증 크기의 ‘복지카드’를 건넸다. ‘장애 1급’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엄마는 혼잣말을 하면서 슬픔을 눌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일선물을 받았구나. 생일 축하한다. 맏이야.”

그날 밤, 엄마는 집 앞 놀이터로 애 아빠를 불러냈다. 맏이의 만 다섯해 생일, 도저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엄마는 꽁꽁 싸맸던 속내를 그제야 털어놨다. “여보, 미안해요.” 죄 없는 엄마는 어느덧 죄인이 돼 있었다. 자폐아를 낳은 엄마. 세상이 만든 ‘주홍글씨’가 엄마의 몸에 쓰여 있었다.

# 4장. 오빠를 쏙 빼닮은 천사

시간이 약이랬다. 눈물을 흠뻑 쏟았던 엄마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스며들었다. ‘자폐아라도 즐겁게 키우자’라고 수없이 다짐한 덕이었다. 예쁜 둘째도 엄마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들뜨게 했던 봄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 어린 시절 동현이와 혜승이의 모습. 사진에서 보듯 자폐는 어릴 때 발견하기 쉽지 않다. 자폐아 판정을 만 5세에 하는 이유다. 엄마는 “첫째도, 둘째도 자폐아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고 털어놨다. [사진=임신화 이사장 제공]

맏이가 6살, 둘째가 4살이던 2011년 5월 어느날이었다. 엄마의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단골 분식집 여사장의 전화였다.

엄마 : “대낮에 어쩐 일이세요?”
여사장 : “동현이 엄마, 둘째가 왜 여기 있어요?”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간 둘째가 거기 있을 리 없었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옆에 있던 그 분식집은 어린이집에서 족히 1㎞는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어린이집 방향에서 6차 대로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었다.

엄마 : “에이, 잘못 봤겠지.”
여사장 : “아니에요. 노란색 윗도리에 치마 입고 있지 않아요?”


엄마의 등골에 서릿발이 내렸다. 편의점만 보면 돌진하던 맏이의 돌발행동이 떠오른 탓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둘째는 말문도 제때 트였고, 눈도 잘 쳐다봤어.”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엄마는 이내 고개를 떨궜다. “아차, 기대였을지 모른다. 둘째만은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착시 현상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한달음에 분식집으로 뛰어갔다. 둘째가 분식집 옆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긁고 있었다. 오빠를 쏙 빼닮은 모습, 오빠와 똑같은 행동이었다. 그때 그 날카롭던 직감이 또다시 살아나 엄마의 심장을 압박했다. 엄마는 무척 불안했다.

▲ 야외체험 학습에 나선 동현이와 혜승이. 엄마는 “쉽진 않겠지만 두 아이가 손을 잡고 난관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둘째를 상담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와 같을 가능성이 높네요. 자폐 기질이 있습니다.” 엄마는 그날의 기억을 잘 떠올리지 못했다. 자신이 낳은 두 아이가 모두 ‘자폐아’였으니, 기억을 또렷하게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인지 모른다.

엄마는 자신이 미웠다. 두 아이를 자폐아로 낳은 자신이 싫었다. 엄마는 가슴을 ‘꽝꽝’ 쳐댔다. 두 아이는 관심 없는 듯 먼 곳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래, 맏이와 둘째는 자폐아였다.

# 5장. 꿈 많던 소녀와 꿈 잃은 엄마

참 생기발랄한 여고생이었다. 155㎝의 작은 키였지만 응원단장은 늘 그의 몫이었다. 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했다. 세상 밖을 편히 경험하고 싶어 택한 진로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엠블럼, 원단 등을 파는 ‘1인 기업’도 세워 봤다. 엄마는 말했다. “친한 사람들에게 가끔씩 이런 농담을 해요. 내 키가 5㎝만 컸어도 여걸이 됐을 거라고요(웃음).”

선택選擇. 여럿 가운데 필요한 걸 골라 뽑는 행위. 사전적 정의에서 보듯, 모든 선택은 ‘자기결정권’의 범위 안에 있다. 그래서 무얼 선택하든 내 책임이고, 내 탓이다. 문제는 ‘선택하지 않은 무언가’가 내 인생을 저격할 때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도 아닌데, 때론 패자가 되고, 때론 죄인이 된다.

장애아를 낳은 엄마들의 운명이 그렇다. 엄마에게 유전적 질환이 없어도 별별 질타를 다 받으며 살아간다. 스스로 택한 길이 아님에도 세상의 편견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니 두 아이 모두 ‘자폐아 판정’을 받은 엄마는 어땠겠는가.


꿈이 많았던 엄마는 몇년 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엄마를 잘 쳐다보지 않는, 쓰다듬는 걸 그토록 싫어하는,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는, 반복적인 동작을 하는, 작은 변화라도 있으면 참지 못하는 아이 둘을 키우느라 진을 뺐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지저분한 뒷말도 엄마를 지치게 했다. “어떻게 둘 다 자폐아야? 남편이랑 궁합이 안 맞는 거 아니야?” “자기는 아니라고 그러는데, 분명히 엄마에게 유전적 문제가 있을 거야.”

엄마는 바깥이 싫어졌고, 밤이 무서워졌다. 엄마의 약해진 마음을 파고든 우울증 탓이었다. “둘째가 자폐아 판정을 받은 다음에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우유배달을 시작했어요. 월·수·금 새벽 3~5시 1500가구를 뛰어다녔죠. 저를 걱정하는 가족, 친지분들은 왜 몸을 혹사하느냐며 뜯어말렸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엄마의 인생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헤매고 있었다. [※ 참고: 엄마는 지금도 우유배달을 하고 있다.]

# 6장. 슬픈 입학식과 다짐

매일 똑같은 꿈이 엄마를 괴롭혔다. 목 터져라 소리 질러도 두 아이는 멀리 달아났다. 엄마의 간절한 부름에 무관심한 것은 현실과 똑같았지만 손을 잡을 수 없는 건 또다른 공포였다. 손을 허우적거리다 깨면 ‘무서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두 아이가 자폐아 판정을 받기 전에는 장애인을 둔 부모들이 왜 동반자살을 하는지 몰랐어요. 그럴 법도 하죠. 그 마음을 누가 알겠어요. 그런데 막상 제 일이 되니까 ‘아! 그래서였구나’ 싶더라고요. 제 꿈도 이제 다른 부모들과 같아졌어요. 뭐냐구요? 아이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겁니다.”

▲ 화가 난 동현이를 방과후 선생님이 달래고 있다. 자폐아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다(왼쪽). 아이들의 신발과 함께 놓여 있는 임신화 이사장의 하이힐. 그는 “하이힐은 자존감의 상징”이라고 말했다(오른쪽 아래). 숲체험에 나선 혜승이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오른쪽 위).

공포는 두 아이가 성장할수록 커졌다. 맏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엔 극에 달했다. 엄마도, 아빠도 걸어보지 않은 ‘자폐아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보낼까, 특수학교에 보내는 게 나을까, 적응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한두개가 아니더라고요.”

우려는 기우杞憂가 아니었다. 2013년 봄, 엄마가 약한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 터졌다. 그날은 맏이의 입학식(일반학교 특수학급)이었다. 엄마, 아빠, 친정부모님이 맏이의 입학식을 축하하기 위해 발걸음을 함께 했다.

그런데 정작 맏이와 가족들은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낯선 환경이 여린 마음을 건드린 탓이었는지 맏이는 대강당 입구에서 야단스럽게 자지러졌다. 맏이의 법석을 이기지 못한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교실로 한걸음 물러났고, ‘가족들만의 입학식’을 치렀다. 말 그대로 조촐한 입학식이었다.

엄마는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똑바로 서야 한다. 엄마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갈 길을 잃는다.” 엄마는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 7장. “엄마, 하이힐을 신다”

혼돈의 시기에는 원망·분노·좌절 등의 감정이 뒤섞여 나타난다. 때론 그 이유를 배우자나 아이들 탓으로 돌리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가사에 얽매여 있던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다시 하이힐을 신다」 중 일부).

▲ 임신화 이사장은 두 아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순간을 대비하고 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교육을 주문한다. 사진은 숲체험 중인 혜승이의 모습. [사진=오상민 작가]

세상과 담을 쌓았던 엄마는 바꿔야 할 게 많았다. 무엇보다 얽매여 있던 모든 걸 내려놔야 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것도 숙제였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번씩 되뇌었다. “난 멋진 사람이야. 그러니 너희들도 멋진 아이들이야.” ‘가보지 않은 자폐아의 길’도 두 아이보다 먼저 걷기로 했다. 장애인 사춘기를 공부했고, 장애인 인권을 배웠다. 용케 강사 자격증도 따냈다.

“세상과 조금씩 부딪치니까 용기가 났어요. 그래도 제가 한때 응원단장이었다니까요. 자폐아 두명을 키워서 슬픈 엄마가 아니라 자폐아를 두명이나 키우는 기쁜 엄마라고 생각했죠. 참, 공부를 시작하면서 하이힐도 신었어요. 내심 ‘난 부끄럽지 않다. 당당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에요(웃음).”

긍정적인 눈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자기 새끼나 잘 키우지 왜 나와서 설치느냐”는 냉정한 시선도 쏟아졌다. 하지만 엄마는 어두운 곳에서 벌벌 떨지 않았다. 아니, 이를 악물고 ‘두려움’을 떨쳐내려 애썼다.

원망·분노·좌절 등의 감정이 뒤섞여 나타나는 혼돈의 시기를 엄마는 두 아이를 위해 뚫고 있었다. 역경逆境을 힘차게 뒤집으면서 경력經歷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 8장. 엄마의 땀, 아이들의 텃밭

장애인 서적을 탐구探究하고 세상과 부딪치니, 궁금한 게 많아졌다. “아동발달센터 선생님은 왜 그리 자주 바뀔까?” “한 클래스(Class)가 40분 수업에 10분 상담인데, 5만~10만원을 교육비로 내는 건 지나치게 비싼 건 아닐까?”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자폐아를 둔 엄마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속 깊은 얘기를 나눴다. 엄마는 조금씩 ‘병폐病弊의 퍼즐’을 풀고 있었다. “수익 중 60%가량만 선생님에게 주는 아동발달센터가 적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상당수 선생님이 계약직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죠. ‘아! 그래서 선생님들이 자주 바뀌는구나’ 싶었어요.”

▲ 임신화 이사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협동조합 업무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엄마는 ‘행동하는 양심’을 택했다. 몇몇 기관과 단체에 ‘센터 수익을 줄이는 대신 선생님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사업계획서를 직접 만들어 건넨 적도 있다.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즐겁지 않겠느냐는 논리에서였다.

하지만 도돌이표처럼 같은 답이 되돌아왔다. “취지는 알겠지만 불가능합니다. 적자를 감당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2015년 2월 같은 꿈을 꾸는 엄마들, 아동교육가(박현주 꿈고래어린이집 원장) 등 20명과 손잡고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가벼운 주머니를 탈탈 털어 출자금(4000만원)을 모았고, 이름은 ‘꿈고래놀이터 부모협동조합(꿈고래조합)’이라고 정했다. 선생님의 복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수많은 아동발달센터가 징수하는 치료비의 40%는 받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아름다운 ‘나비효과’가 일어났다. 아이들의 치료비(1회 3만6000원)가 낮아지고, 선생님의 복지는 향상됐다. 학부모가 몰렸고, 꿈고래조합엔 활력이 깃들었다. ‘자폐아와 선생님에게 행복한 텃밭을 선물하겠다’는 엄마의 작은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참고: 꿈고래조합은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한데 어우러진 교육 생태계를 꿈꾼다. 꿈고래 어린이집과 네이밍(Naming)을 일치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꿈고래조합은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공동 놀이터다.]

# 9장. 엄마 “희망을 만들다”

엄마의 작은 발걸음은 알찬 열매를 맺고 있다. 꿈고래조합에서 치료를 받는 자폐아는 2015년 2월 12명에서 올 3월 75명으로 훌쩍 늘었다. 학부모는 같은 기간 20명에서 120명으로 6배가 됐다.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은 12명에 이르는데, 모두 정규직이다. 꿈고래조합이 약속한 대로 ‘치료비의 40%’를 챙기지 않은 덕이다.

▲ 혜승이가 꿈고래놀이터에서 로션, 물감 등을 활용한 미술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내실도 나름 탄탄하다. 2015년 11월 경기도 예비사회적기업에 지정됐다. 오는 4월에는 경기도 동탄시에 2호점을 연다. 경기도 지역 사업인 ‘우리아이 심리서비스 바우처(Voucher) 사업’을 함께 진행할 정도로 신뢰도 쌓았다.

수상 실적도 빼어나다. 지난해 4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해 7월엔 행자부 주최 크라우드펀딩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꿈고래조합이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작은 성지聖地’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는 “일주일에 3번가량 다른 기관에서 탐방을 온다”면서 “꿈고래조합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곳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엄마의 걱정이 끝난 건 아니다. “꿈고래조합을 만든 지 벌써 2년이 흘렀네요. 소중한 텃밭을 만들기 위해 여러 엄마들과 애썼는데, 결과가 나쁘지 않아 다행이에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까마득해요. 풀어야 할 과제도 많고요.”

# 10장. 힘겨운 몸부림, 슬픈 꿈

그렇다. 엄마가 넘어야 할 산은 숱하게 많다. 꿈고래조합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교육자료·기자재 등 구입해야 할 건 많은데, 재정이 여의치 않아서다. 그래서 학부모들의 회비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날이 늘어난다. 실체도 불분명한 재단에 대기업 돈 수백억원이 쌓여 있다는 걸 감안하면, 세상 인심 참 야속하고 교활하다.

▲ 꿈고래놀이터 부모협동조합 치료실에서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혜승이. [사진=오상민 작가]

무서운 건 또 있다. 자폐아를 향한 불편한 시선은 ‘불치병’에 가깝다. 장애인(자폐아) 생태계는 ‘흠투성이’다. 일부 장애인 시설은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이 법적 기초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장애인들이 홀로 살기에 대한민국은 아직 적당치 않다는 얘기다.

엄마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겉으론 활기차게 일하지만 마음엔 항상 무거운 짐이 있어요. ‘내가 죽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을까’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장애인 시설로 보내지는 건 아닐까’ ‘자폐아라서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할 텐데….’ 이런 걱정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머리를 때리죠.”

인터뷰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던 엄마는 순간 목이 메었다. 눈시울이 붉게 물든 적은 있지만 말문이 막힌 건 처음이었다. 현장을 이리저리 누빈 만큼 냉정한 현실도 꿰뚫고 있는 듯했다. “잠깐만요, 미안합니다.” 2~3분, 침묵이 쓸쓸하게 흘렀다. 엄마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 꿈고래놀이터 부모협동조합은 장애인 부모와 비장애인 부모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사진=오상민 작가]

때마침, 맏이와 둘째가 꿈고래조합에 들어왔다. 엄마는 이내 밝은 목소리로 “아들 딸 왔어”라고 반겼다. 엄마로선 힘겨운 몸부림이었지만 두 아이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자폐아는 변하기 힘들다.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시린 진리를 엄마는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엄마들과 함께 꿈고래조합을 사단법인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자폐아를 위한 텃밭을 더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서죠. 법인명名도 생각해 놨어요.” 그게 뭐냐고 물으니, 먹먹한 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죽으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이었다. 우리 사회, 아직 갈 길이 멀다.

글=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 엄마 임신화 이사장과 동현, 혜승은 ‘sustain’이라고 쓰여 있는 티셔츠를 입었다. 번역하면 ‘견디다’는 뜻이다. 촬영이 끝날 때쯤 동현이가 벌떡 일어나 앵글 밖으로 사라졌다. 엄마가 수차례 이름을 불렀지만 동현이는 뒤를 보지 않았다. 엄마는 “이래서 견뎌야 한다니까요”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 동현이가 엄마에게 의사 표현을 하고 있다. 동현이의 살가운 행동에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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