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은 왜 대우조선 재지원했나

요즘 대우조선해양은 말 그대로 골칫거리다. 혈세를 또 잡아먹게 생겨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59조원이든 17조원이든 손실액이 크기 때문에 살려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도 유분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실상 임기가 4개월밖에 안 남은 임 위원장은 왜 대우조선 지원을 결정했을까. 정략일까 전략일까.

▲ 경제에 미칠 파장을 이유로 무조건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는 건 능사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 밑 빠진 독은 아닌지부터 확인해야 한다.[사진=뉴시스]
“또 수조원의 혈세를 집어넣겠다는 건가?” 3월 23일 정부(금융위원회)와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이 2조9000억원의 신규자금, 2조9000억원의 출자전환, 9000억원의 채무조정을 골자로 하는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발표한 이후 쏟아지는 비판이다. 후폭풍이 만만찮다는 거다.

국민 여론이 심상치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대우조선을 살리는데 왜 세금을 쓰냐는 거다. 사실 산은과 수은이 대우조선을 지원하는 돈 자체는 엄밀히 말해 ‘혈세’는 아니다. 하지만 산은과 수은은 국책은행이다. 이들의 유동성이 나빠지면 정부가 ‘자본확충’이라는 명목으로 나랏돈을 투입한다. 이 때문에 ‘넓은 의미의 혈세’라고 해도 무방하다.

둘째, 지원하는 자금이 너무 많다. 2015년 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회(서별관회의) 이후부터 신규자금 지원 외 출자전환, 채무조정 등을 모두 합치면 총 14조800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지원 자금은 대부분 대우조선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아니라 손실을 메우기 위한 돈이다.

셋째, 지원을 해서 대우조선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금융위원회는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추가 지원 없이도 ‘회생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는 얘기다. 회생 가능성을 너무 긍정적으로 분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넷째, 형평성에 어긋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한진해운이다. 한진해운이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할 당시 부족자금은 약 4조원이었다. 당시 해운업계와 전문가 중에선 “한진해운은 살리는 게 실익이 크다”고 강조한 이들이 많았다. 법원조차 산업은행에 자금 지원을 의뢰했을 정도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자금지원을 받지 못하고 지난 2월 파산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에는 자금이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할지 가늠하는 것도 어렵다. 수많은 조선업계 전문가들이 “법정관리로 가든 파산하든 시장논리에 따라 가는 게 옳다”고 꼬집을 정도다. “살려야 했던 한진해운은 죽이고, 죽여야 할 대우조선은 왜 살리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비판이 나올 걸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몰랐을까. 아니다. 임 위원장은 대우조선 추가지원을 발표하면서 “말을 바꿔 송구스럽다”면서 “대우조선 경영정상화 실패의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말했다. 국민의 공분을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임기 말에 대우조선 땜질한 이유

문제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임 위원장이 대우조선 신규지원 카드를 꺼낸 이유가 뭐냐는 거다.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지만 우려대로 대우조선이 ‘밑 빠진 독’에 빠졌을 때 임 위원장이 책임질 수 있는 건 없다. 더구나 5월 장미대선이 치러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 위원장의 임기는 40일도 채 안 남았다. 수조원의 지원 결정을 책임지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다.

임 위원장의 속내가 궁금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유추해볼 수는 있다. 가장 유력한 가정은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게 아니냐’는 거다. 이른바 ‘임종룡 면피론’인데, 이런 지적이 나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2년 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2015년 10월 22일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을 당시, 전문가들의 비판은 거셌다. “회의록조차 남지 않는 밀실회의를 통한 의사결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이는 임 위원장을 비롯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안종범 전 경제수석,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홍기택 전 산은 회장 등이 전부였고, 회의는 ‘비공개’였다. 대우조선의 정확한 재무상황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4조2000억원의 지원을 밀어붙였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렀다. 서별관회의에서 정부는 대우조선이 매년 110억~120억 달러의 수주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우조선의 회생 가능성을 높게 점친 이유다.

하지만 지난해 대우조선의 실제 수주물량은 10분의 1 수준(약 15억 달러)에 그쳤다. 저가수주 논란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영업적자는 1조6000억원에 달했다. 서별관회의서에서 분석했던 것과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대우조선의 재무상황과 전망이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정략적인 판단에 따라 지원했을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문제는 대우조선의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했음에도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급기야 신규 지원을 하지 않으면 파산할 지경까지 몰렸다. 이런 상황은 정부와 임 위원장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 2015년 서별관회의 이후의 지원 결정을 모두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어서다.

‘임종룡 면피론’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와 임 위원장이 욕을 먹더라도 대우조선을 신규 지원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거다. 만약 대우조선이 법정관리에 빠지면 책임론이 일파만파로 확산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차기 정권에 떠넘기는 것”이라면서 “관치금융의 전형적인 폐해”라고 지적했다. 

밑 빠진 독인지 확인부터 해야

대우조선은 단순히 조선업 불황 때문에 쓰러지고 있는 게 아니다. 연임에 눈먼 CE O들의 분식회계, 분식회계를 눈감아 준 회계법인, 부실을 감춰주고 이권만 챙기려 한 채권은행과 정부 등이 복합적으로 대우조선을 무너뜨리고 있는 거다. 전임 CEO들이 구속되고, 해당 회계법인은 영업정지를 당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은 또다른 비리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다. 의혹이 많은 서별관회의 역시 조사내용에서 빠질 수 없다.

금융위와 임 위원장이 책임론에서 빠질 명분이 있을지 의문이다. 임 위원장의 논리는 “그럼 안 살리면 어떡하냐”는 거다. 하지만 살리냐 죽이냐를 떠나 대우조선이 진짜 ‘밑 빠진 독’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규명하는 게 순서 아닐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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