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대우조선 사태 막으려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논란에 휩싸인 대우조선해양.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도 문제다. 대우조선과 같은 사례가 수없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2, 제3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혈세가 들어갈 입구를 막고, 정부의 입김을 막으면 된다. 이 간단한 걸 우리는 지금까지 못했다.

▲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정략적으로 판단해 구조조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사진=아이클릭아트]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 결정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독단적이었다는 점이다. 부처 간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우조선 파산에 따른 손실추정액을 산정하면서 무려 42조원이나 차이 나는 전망을 내놨다.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결정에 뒷말이 무성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선 이런 지적이 나온다. “임종룡 위원장이 정말 대우조선을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문제는 자신이 틀렸다면 그 손실을 어떻게 만회할 것이느냐다. 책임을 진다고 하는데, 임 위원장 재산이 몇조원이라도 되나. 쇠고랑을 찬다고 해도 그 손실은 메워지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제2, 제3의 대우조선에다 근거 없이 혈세를 지원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임 위원장이 ‘내 철학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일했다’고 하면 그걸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 불투명한 의사결정을 통해 제2, 제3의 대우조선에 혈세를 투입하고 누구도 책임은 지지 않는 일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의 핵심 논리다.

불상사를 막을 해법은 없을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해법은 다양하다. 먼저 불투명한 경로로 혈세가 들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정부는 국책은행을 통해서 공적자금을 지원하고, 이로 인해 국책은행이 부실해지면 나랏돈으로 자본확충을 해준다. 다시 말해 간접적인 혈세 지원인 셈이다. 나랏돈을 투입하는 경로가 불분명하다보니 책임 문제는 물론 자금 회수도 불분명해진다는 거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국책은행을 통한 간접적 지원 시스템이 문제”라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의 GM이 했던 방식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방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GM이 부실해졌을 때 미국은 기존 GM을 완전히 청산하고, 재정을 투입해 새로운 GM을 만들어 기존 GM의 고용과 자산을 승계하도록 했다. 얼마의 손실이 나고, 얼마의 공적자금이 들어갔는지 분명했다. 때문에 자금 회수율도 높았고, 효과를 분석하기도 쉬웠다. 관료들이 정략적으로 개입할 여지도 없었다.” 그는 “정책적으로 반드시 지원이 필요한 산업군에 속하는 기업이라면 특수한 경우에만 지원하도록 과거에 운영했던 정책금융공사를 두고 직접 지원하면 그만”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책은행 통한 간접지원 막아야

박 교수는 “재정을 기업에 직접 투입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업과 지역경제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여파를 고려해 대우조선에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면서 “아무래도 공적자금은 실업대책과 지역경제 안정화에 쓰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구조조정에는 정부(금융위원회)의 개입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억지로 재정을 투입해서 기업을 살린다는 게 자율경쟁 원칙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거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두면 언젠가 또 정략적 판단에 따른 구조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따라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폐지하고, 구조조정은 도산전문법원이 담당하도록 해 금융위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도산절차를 잘 활용해야 한다”면서 “위험을 감지한 채무기업이 도산절차를 빨리 신청할 수 있도록 채무기업에 배타적 회생계획안 제출 권한을 주는 방법, 도산신청을 하지 않아 기업가치를 더 떨어뜨린 경영진이 채권을 배상하게끔 하는 방법, 채권자의 경영 관여는 주주권한 행세로 보고 채권을 불인정하는 방법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청산을 하는 게 마땅함에도 정책적으로 살려야 할 필요가 있는 기업이라면 도산절차를 통해 부채가 깨끗해진 기업을 누군가 인수해갈 수 있도록 하면 된다”면서 “이건 현행법상으로도 가능하지만 안 하니까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계기업=법정관리 원칙 세워야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은 법정관리로 가는 것을 기본적으로 하되, 거기에 다른 입김이 들어가지 않도록 규범을 명확히 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학) 교수는 “현재 조선업황도 안 좋고, 대우조선이 특별히 차별화된 능력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법정관리를 통해 상황을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을 두고 한진해운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김 교수는 “중요한 건 절차의 문제인데, 확실한 선을 그어줘야 한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의 말은 늘 바뀐다. 어떨 때는 통폐합해야 한다고 하고, 어떨 때는 세금 넣어서 살려야 한다고 한다. 이래서 정부가 공신력을 얻을 수 있겠는가. 현행법이 법정관리를 통해 해결하도록 돼 있으니 뭐가 됐든 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면 법정관리로 맡긴다는 걸 매뉴얼로 만들어서 주관이 개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 교수는 금융위의 역할에도 날을 세웠다. 그는 “금융위는 국책은행이나 금융상품의 관리감독 등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권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행여 개입이 필요하다면 본연의 업무와는 중복되지 않는 별도의 조직을 통해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요지는 같다. 정략적 판단을 배제하고, 원칙에 따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야 임기 말에 개인 철학에 따라 수조원의 혈세를 집어넣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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