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소비학
지난 방학 중에 일주일 정도 미국 LA 근처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기회여서 비행기 티켓 말고는 아무 준비도 없이 저녁 무렵 LA 공항에 내렸다. 자동차를 렌트한 후 숙소를 찾았다. 자동차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으로 근처의 호텔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일정한 반경을 정해주면 가격대별로, 호텔 등급별로 숙소 검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내비게이션으로 근처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음식 종류별로는 물론 가격대별로도 검색이 가능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 레스토랑을 찾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외에도 주변 관광지나 쇼핑센터, 슈퍼마켓, 골프장도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 검색이 가능했다. 목적지를 클릭하기만 하면 자동차는 친절하게 필자를 목적지에 데려다 줬다.
조금 적응이 된 다음에는 못할 게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무료 와이파이에 접속한 후 내비게이션에서 찾은 목적지의 ‘소비자 후기’를 읽어봤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덕분에 무수한 걸 검색하고, 소비할 수 있었던 셈이다.
‘내비게이션 소비’라는 게 있다. 특정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대로 안내해 소비가 이뤄지는 행태를 뜻한다. 운전자를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처럼 말이다.
‘내비게이션 소비’가 가능하게 된 건 무선통신기술 덕분이다. 무선통신이 없었다면 인터넷 정보가 실시간으로 내비게이션에 제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소비’를 가능하게 한 또 다른 기여자는 프로그램에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슈머들이다. 자신이 경험한 맛집, 볼거리를 소개하고 호텔 후기를 올리고 긴급 상황 시 대처요령을 설명하는 프로슈머의 콘텐트가 없었다면 ‘내비게이션 소비’는 불가능했을 거다.
새로운 트렌드는 소비자의 행태를 변화시킨다. 첫째, 모든 걸 미리 계획할 필요가 없어진다. 계획하지 않아도 자동차 내비게이션이나 다른 모바일 프로그램이 소비자를 더 값싸고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도한다.
둘째, 소비자를 까다롭게도 만든다. 클릭 몇번으로 정보를 찾고 수많은 후기를 비교할 수 있으니, 소비자는 실속을 따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선진국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더 따지는 이유는 수많은 정보와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다.
당연히 이런 세상에선 소비자의 충성도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소비자들이 손가락 하나만으로 공급자나 판매자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공급자 입장에서는 부담이기도 하다. 고객 니즈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해서다. 일회성 고객도 단골과 마찬가지로 공급자를 평가할 수 있는 채널을 갖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내비게이션 소비’는 공급자에게 기회다. 정말 좋은 제품과 서비스만 제공하면 입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내 시장으로 만들 수 있는 놀라운 기회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