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소비학

▲ 내비게이션은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로 안내해준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비자가 가성비를 더 따지는 이유를 아는가. 많은 정보와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소비기술을 갖고 있어서다. 손가락 하나만 있으면 정보를 찾고 평판을 검색할 수 있으니, 모든 소비자가 까다로워졌다. 공급자로선 죽을 맛이겠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그렇지도 않다.

지난 방학 중에 일주일 정도 미국 LA 근처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기회여서 비행기 티켓 말고는 아무 준비도 없이 저녁 무렵 LA 공항에 내렸다. 자동차를 렌트한 후 숙소를 찾았다. 자동차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으로 근처의 호텔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일정한 반경을 정해주면 가격대별로, 호텔 등급별로 숙소 검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내비게이션으로 근처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음식 종류별로는 물론 가격대별로도 검색이 가능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 레스토랑을 찾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외에도 주변 관광지나 쇼핑센터, 슈퍼마켓, 골프장도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 검색이 가능했다. 목적지를 클릭하기만 하면 자동차는 친절하게 필자를 목적지에 데려다 줬다.

조금 적응이 된 다음에는 못할 게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무료 와이파이에 접속한 후 내비게이션에서 찾은 목적지의 ‘소비자 후기’를 읽어봤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덕분에 무수한 걸 검색하고, 소비할 수 있었던 셈이다.

‘내비게이션 소비’라는 게 있다. 특정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대로 안내해 소비가 이뤄지는 행태를 뜻한다. 운전자를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처럼 말이다.

‘내비게이션 소비’가 가능하게 된 건 무선통신기술 덕분이다. 무선통신이 없었다면 인터넷 정보가 실시간으로 내비게이션에 제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소비’를 가능하게 한 또 다른 기여자는 프로그램에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슈머들이다. 자신이 경험한 맛집, 볼거리를 소개하고 호텔 후기를 올리고 긴급 상황 시 대처요령을 설명하는 프로슈머의 콘텐트가 없었다면 ‘내비게이션 소비’는 불가능했을 거다.

새로운 트렌드는 소비자의 행태를 변화시킨다. 첫째, 모든 걸 미리 계획할 필요가 없어진다. 계획하지 않아도 자동차 내비게이션이나 다른 모바일 프로그램이 소비자를 더 값싸고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도한다.

둘째, 소비자를 까다롭게도 만든다. 클릭 몇번으로 정보를 찾고 수많은 후기를 비교할 수 있으니, 소비자는 실속을 따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선진국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더 따지는 이유는 수많은 정보와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다.

당연히 이런 세상에선 소비자의 충성도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소비자들이 손가락 하나만으로 공급자나 판매자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공급자 입장에서는 부담이기도 하다. 고객 니즈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해서다. 일회성 고객도 단골과 마찬가지로 공급자를 평가할 수 있는 채널을 갖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내비게이션 소비’는 공급자에게 기회다. 정말 좋은 제품과 서비스만 제공하면 입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내 시장으로 만들 수 있는 놀라운 기회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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