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영웅 ❷

영화 ‘영웅’에서 감독 장예모는 작심한 듯 압도적인 비주얼을 여러 장면 선보인다. 왕궁이라면 아담하고 정겨운 왕궁 경복궁에 익숙한 우리에게 장예모 감독이 펼쳐 보이는 진왕(진시황제) 영정嬴政의 궁궐 규모와 모습은 거의 SF영화 CG처럼 비현실적이다.

▲ 중국은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인해전술을 과시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장예모 감독은 아마도 전각의 넓이가 700m에 달했다는 진시황제의 전설적인 아방궁阿房宮을 화면 속에 소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려시대 개경의 왕궁을 보고 ‘작은 기와집’이라 기술했다는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라는 자의 난폭한 안목을 이해할 만도 하다. ‘큰 것’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장예모 감독도 크기와 규모에 집착하는 과대망상증(megalom ania)에 시달리기라도 하는 듯, 장천(견자단)과 무명(이연걸)이 결투를 벌이는 기원棋院에서의 바둑알까지도 아이 머리통만하다.
족히 여의도광장쯤 되어 보이는 궁궐 앞에 빼곡히 도열한 진시황제의 근위대는 웬만한 나라 전군全軍을 소집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릴 때 대개 ‘인구대국’이 먼저 떠오르고 한국전쟁 중 중공군의 ‘인해전술’이라는 전술 아닌 전술이 떠오르는 우리로서는 압도적인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미장센’들이 개운치만은 않다. 왠지 불편하다.

영화 속에서 진시황제 영정嬴政의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처럼 새까맣게 조趙나라를 향해 진격한다. 조나라는 전국시대 7웅 가운데 그나마 최강 진나라에 대항할 수 있었던 강국이었다. 조나라 정벌은 진시황제의 중국대륙 통일이 거의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진시황제가 자랑하는 강력한 궁수부대는 일사불란하게 진을 치고 조나라를 향해 일제히 화살을 날린다. 수만의 병사들이 일제히 날리는 수만의 화살은 능히 하늘을 뒤덮고 마치 먹구름이 몰려가듯 조나라를 향해 날아간다. 장예모 감독다운 비주얼이다.

그런데 궁수부대의 공격목표는 조나라의 왕궁도 군영軍營도 아닌 허름한 서원書院이다. 백발의 스승이 학생들과 서예에 몰두하고 있는 서원에 화살이 우박처럼 쏟아진다. 강력한 화살은 서원의 기와지붕을 간단히 뚫고 내리꽂힌다.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서생들에게 노스승이 ‘조나라의 문자를 지키라’고 일갈하고 서생들은 자시 제자리를 잡고 앉아 글씨를 쓰며 한명씩 붓을 든 채 죽어간다.

감당할 수 없는 몽고제국의 침략을 맞아 온 정신을 모아 팔만대장경을 한자 한자 새겨나갔던 고려인들의 비원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한 나라의 문자는 곧 그 나라의 정신이다. 무력이나 물리력으로 땅을 빼앗고 사람들을 복종하게 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정신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그 정신까지 빼앗지 못하면 그 사람을 잠시 굴복시킬 수는 있지만 그를 나의 사람으로 만들고 영원히 굴복시킬 수는 없다. 정신까지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뿌리까지 뽑히지 않은 풀은 언젠가는 다시 싹이 날 것이다.

▲ 진시황 무덤에서 출토된 무사용의 평균 신장이 180cm에 이를 만큼 위용이 엄청나다.[사진=뉴시스]
조나라 서생들은 조나라가 비록 진나라의 무력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 정신만이라도 지킨다면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들의 문자(정신)를 지키며 죽어간다. 그들의 믿음과 비원대로 망국 조나라의 유민遺民 비설(장만옥)과 파검(양조위)은 절치부심 무술을 연마하여 진시황제의 암살에 나선다. 단 둘이 진시황제의 궁궐에 난입, 3000근위대를 초토화시키고 그의 목에 칼끝을 겨누는 절대고수로 거듭난다.

진시황제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전국시대 6개국의 땅을 모두 차지했지만 뛰어난 적들인 비설과 파검의 정신까지 빼앗고 마음까지 얻지는 못한다. 오로지 벌거벗은 무력으로 세운 그의 ‘제국’은 21년 만에 무너진다. 노르웨이의 정치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그의 ‘제국주의의 구조(The Sturcture of Imperialism)’에서 진정한 제국의 조건으로 군사력, 경제력과 함께 ‘문화의 힘(cultural power)’을 꼽는다. 피지배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만 비로소 제국이 완성되고 안정될 수 있다.

로마제국이 ‘로마문화’라는 문화의 힘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로마의 시대를 구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군단병력급의 불가사의한 지하군단 병마용을 만들었던 진秦 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결코 로마제국에 뒤지지 않았지만 문화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로마는 소통을 위한 도로를 건설했지만 진시황제는 단절의 만리장성을 쌓고, 문화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분서갱유에 몰두했다. 그 결과는 저항과 혼란, 그리고 몰락이었다.

요즘 중국굴기中國屈起를 외치며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오로지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휘젓는 21세기 중국의 모습에서 2000년 전 굴기屈起하여 21년 만에 허무하게 무너진 진시황제의 제국이 스쳐 지나간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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