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노래방 열풍의 그림자

1990년대 유행했던 동전노래방이 또 인기다. ‘가성비 높은 놀이터’라는 점이 인기 요인이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2017년 노래방은 1990년대보다 협소하다. 500원으로 2곡이나 뽑을 수 있는 것도 다르다. 돈 없고 희망 없는 청년들의 애환을 동전노래방에서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청년실업, 학자금 대출 등으로 힘겨운 청년들은 놀거리도 마땅찮다.[사진=아이클릭아트]
중소기업에 취직해 1월 사회 생활을 시작한 서민경(25)씨. 그는 일주일에 1~2번 동네오락실을 찾는다. 퇴근길에 그가 오락실을 찾는 이유는 흥미롭게도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다. 오락실 속에 둥지를 튼 작은 동전노래방을 대부분 혼자 이용한다.

친구들은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았거나 대부분 취업준비를 하고 있어 “잠깐 나와서 놀자”고 불러내기가 눈치 보인다. 차라리 혼자 놀자고 시작한 게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누구 눈치 안 보고 신나게 30분쯤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날 쌓인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다.

돌고 도는 유행 속에 과거 열풍이던 동전노래방이 다시 기지개를 폈다. 지난해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형뽑기방과 함께 동전노래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노래를 부르는 시스템이 과거와 비슷하다.

1990년대. 동전노래방이 청년들 놀이문화를 파고들었다. 노래기기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노래 한곡을 부를 수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었던 당시 청년들에게 동전노래방은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예나지금이나 빈곤한 청년들의 주머니 사정 탓이다. 동전노래방은 1곡당 500원이다. 1시간 동안 노래를 부른다고 가정해보자. 노래 한곡에 평균 3분. 1시간이면 20곡을 부를 수 있다. 필요한 돈은 1만원. 중간에 끊으면 돈이 아까우니 끝까지 불러야 한다.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게 시간제 노래방이다. 1곡당 가격이 아니라 ‘1시간에 1만원’하는 식이다. 마음씨 좋은 노래방 주인은 10분, 20분씩 서비스 시간을 더 넣어주기도 했다. 동전노래방 대비 가격 부담이 적은 시간제 노래방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골목마다, 건물마다 노래방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중엔 우후죽순 생긴 노래방 탓에 할인경쟁이 붙어 1시간에 5000원 하는 곳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놀이 문화가 변하면서 점점 기세가 꺾였다.

그러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다시 동전이 돌기 시작했다. 가격 부담은 그때보다 줄었다. 과거엔 500원에 한곡이었지만 이젠 두곡을 부를 수 있다. 오락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동전부스를 한데 모아놓은 듯한 노래방도 점점 늘고 있다. 동전노래방의 인기를 잘 보여주는 풍경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유행하던 동전노래방이 다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청년의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돈’ ‘시간’ ‘1인’이다.

1990년대와 다른 노래방 문화

2017년을 살고 있는 청년들은 극심한 청년실업, 학자금 대출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올 2월 기준 15~29세 청년실업률은 12.3%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2월 기록한 12.5%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청년실업률이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을 해소해줄 마땅한 정부 정책도 없어 청년실업률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좁은 문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마냥 즐거울 수 없다. 경제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쌓여버린 빚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취업 후 상환해야 할 학자금 체납액은 110억6300만원이었다. 2010년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가 생긴 이래 급속히 증가하더니 2015년 처음으로 100억원을 돌파했다. 그만큼 청년들의 빚 부담도 늘었다는 얘기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또래들끼리 모여 무엇을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저마다 빚을 떠안고 있으니 만나서 밥을 먹고,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사치가 돼버렸다. 바로 이것이 동전노래방이 성행하는 첫째 이유다. 500원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다 보니 주머니 가벼운 청년들이 많이 찾는다는 얘기다.

둘째 이유는 ‘시간’이다. 취업준비를 하거나 알바를 하고 있는 청년은 진득하게 앉아 무언가를 배우거나 즐길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그럴 시간에 스팩을 하나라도 더 쌓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한다. 동전노래방은 자기가 원하는 시간만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청년들의 스트레스 해소 장소가 되고 있다.

‘솔로이코노미’ ‘혼술족’ ‘혼밥족’ 등 소비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도 동전노래방의 인기를 부채질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등 혼자 소비하는 이들은 점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동전노래방은 1~2명이 이용하기 적당한 크기의 부스라서 혼자 이용하기가 편하다. 1인 가구 증가세에 동전노래방이 수혜를 받고 있는 셈이다.

힘겨운 현실이 투영된 놀이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비용ㆍ시간ㆍ여유 등 모든 게 부족한 세대”라며 “그들이 저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보니 동전노래방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한적이고 구속적인 직장 환경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점도 동전노래방 유행의 원인”이라고 꼽았다. 복고열풍과 돌고 도는 유행 속에 ‘동전’이 다시 돌아왔지만 여기엔 힘겨운 청년들인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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