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영웅 ❸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춘추전국시대 중국 대륙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진秦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무협 판타자의 형식 속에 ‘권력’의 속성과 그 양면성을 담아내어 재미와 의미를 모두 만족시키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진秦왕 영정嬴政의 중국통일 대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기원전 220년인 듯하다. 기원전 230년에 진秦나라 군대가 한韓나라를 멸망시킨 다음부터 221년 제齊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약 10년간 한韓ㆍ조趙ㆍ위魏ㆍ초楚ㆍ연燕ㆍ제齊 6개국이 잇달아 진나라에 무너졌다. 수백년 동안 중국 대륙을 분할통치해 ‘전국 7웅’이라 불렸던 나름 강국들을 평균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한 나라씩 멸망시킨 진나라의 무력은 가공할만하다.

영화 ‘영웅’은 바야흐로 대륙통일의 대업을 목전에 둔 시대를 그린다. 이미 운동장은 기울었다. 영정과 진나라가 대세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기울어진 운동장’과 ‘대세’에도 굴하지 않고 의기충천하고 오기만만하고 분기탱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는 시각과 역사의 기록에 따라 이들은 의사義士ㆍ열사烈士ㆍ지사志士로 기록되기도 하고 ‘꼴통’ 혹은 테러리스트로 기록되기도 한다. 우리의 안중근 의사도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테러리스트(장사: 壯士)로 기록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천(견자단), 파검,(양조위), 비설(장만옥), 여월(장즈이) 그리고 무명(이연걸)이 이들이다. 이들은 진왕 영정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분노하고, 목숨을 던져 그의 천하통일을 막아선다. 예나 지금이나 강자에게 저항하는 약자에게 허용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암살’이다. 전국시대 ‘무림 4대천왕’ 장천, 파검, 비설, 그리고 무명은 영정 암살 프로젝트에 의기투합한다. 정규전에는 거칠 것 없는 영정도 ‘암살’이라는 비정규전은 두렵다. 파검과 비설의 범궐犯闕에 한 차례 식겁한 영정은 모두에게 자신으로부터 ‘백보百步 이내 접근금지법’을 시행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첨단의 보안시스템도 재야在野의 초절정 해커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절정의 고수 무명(이연걸)은 10보 내에서는 누구든 확실히 죽일 수 있는 필살기를 연마해 완성한다. 무명이 영정을 10보 내에서 알현할 수 있을만한 공을 세워주기 위해 장천과 비설은 기꺼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는다. 진나라 병사들이 입회한 가운데 장천과 비설은 무명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내놓는 승부조작 사기극을 벌인다.

▲ 무명은 영정의 심장을 찌를 기회를 얻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천하의 영정도 이들 ‘무림 사기단’의 기막힌 승부조작극에 낚여 ‘10보 필살기’를 완성한 무명을 용상龍床 반경 10보의 거리에 들도록 허락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이제 영정은 죽은 목숨이다. 그 순간 무명은 흔들린다. 영정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했던 파검의 마지막 말의 의미를 그 순간에 깨닫고 암살을 포기한다.

마지막 순간에 무명은 ‘10보 필살기’로 영정의 심장을 찌르는 대신 파검이 쓴 ‘검劍’자 휘호를 영정에게 전한다. 무림 사기단에 꼼짝없이 걸려 죽음을 각오했던 영정은 파검의 휘호를 보며 상념에 사로잡힌다. 영정은 홀연히 파검의 깊은 뜻을 깨닫는다.

‘검劍’을 파자破字하면 사람들(人)과 목숨(命)과 칼(刀)이다. 또한 모두(첨:僉)와 칼(刀)로 이루어져 있다. 칼은 모두의 목숨을 해할 수도 있고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영정은 칼(무력)로써 수많은 목숨을 빼앗을 줄만 알았을 뿐, 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지키지 않았다. 파검이 진왕 영정에게 전한 메시지와 당부는 결국 ‘너의 칼로 수많은 목숨을 거두어 통일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그 칼로 사람들의 목숨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파검은 그 염원으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

▲ 올해 새로 선출될 대통령도 '절대권력으로 국민 모두를 구하겠다'는 약속을 할 것이다.[사진=뉴시스]
영정은 파검의 깊은 뜻을 숙연히 받아들이고 그러겠노라고 무명에게 약속한다. 헌법 위에 손을 얹고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고 약속하는 대통령 취임선서를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다. 무명은 칼을 버리고 영정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 영화는 거기에서 끝난다.

파검과 무명의 영전靈前에 성군聖君이 될 것을 선서하고 황제에 취임한 영정은 여전히 칼로써 사람들을 살리는 대신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폭군으로 남는다. 칼은 ‘절대반지’와 같은 절대권력이다. 우리의 대통령들도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희생하는 수많은 파검과 무명, 그리고 국민들에게 ‘나에게 쥐어준 칼(절대권력)로써 국민들을 해치지 않고 그들을 모두 구하겠다’고 약속하고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진시황제처럼 그들도 칼을 휘둘러 그들만의 아방궁을 짓고 분서갱유를 저지른다. 그들도 불행해지고 국민도 불행해진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