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꿈 실현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장세욱(55) 동국제강 부회장이 3대째 내려온 꿈을 어렵사리 이뤄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 고로高爐제철소 CSP를 완공시키고 그곳에서 생산한 원자재 슬래브를 들여오는 데 성공한 것. 남미~아시아에 걸친 글로벌 철강벨트 완성으로 슬래브 자체 조달에 성공해 향후 경영에도 호재가 되고 있다. ‘옥중 경영’ 중인 장남 장세주(64) 회장과 2년째 구원 투수를 맡은 동생 장 부회장 간의 우애도 깊어 보인다.

▲ 동국제강은 올해 철강 생산 수직 계열화를 이뤄냈다. 사진은 2016년 1월 철강업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장세욱 부회장.[사진=뉴시스]
“고로제철소를 만들겠다는 3대에 걸친 꿈이 비로소 실현됐습니다.” 장세욱 부회장은 감격한 듯 이렇게 말했다. 3월 22일 동국제강 당진공장에서 열린 CSP슬래브 입고 기념행사장에서다. 슬래브는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식혀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철강 반제품이다. 압연壓延 과정을 거쳐 선박ㆍ건축ㆍ교량용 후판 등의 판재류를 생산하는 데 쓰인다.

이날 행사는 지구 반대편 적도 부근에 위치한 브라질 CSP제철소(뻬셍철강주식회사)에서 생산된 슬래브 5만8751t이 마침내 당진공장에 그 모습을 드러낸 걸 자축하는 뜻에서 열렸다. 슬래브를 실은 배는 49일간 지구 반 바퀴에 해당하는 1만9378㎞를 항해한 끝에 도착했다.  

CSP제철소는 동국제강이 기획하고 주도해서 11년 만에 브라질 현지에 세운 3자 합작(동국제강 30%+브라질 발레사社 50%+포스코 20%) 고로제철소다. 투자비는 55억 달러(약 6조1655억원) 상당이 들었다. 지난해 6월 고로에 불을 지핀 지 9개월 만에 모기업 동국제강이 쓸 슬래브를 배에 싣고 온 것이다.

지금까지 후판의 주 원자재로 쓰이는 슬래브 전량을 포스코 등 국내외에서 힘들고 비싸게 공급받던 동국제강으로선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올해 창립 63년을 맞은 동국제강이 ‘5전 6기’ 끝에 용광로(고로)에서 철강 반제품(슬래브)~완제품(후판)에 이르는 철강 생산 수직 계열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장 부회장은 기념식 내내 기쁨에 겨운 듯 상기된 모습을 보였다. 남미와 아시아를 잇는 세계 철강사에서 보기 드문 철강벨트 구축에 성공했으니 감격할 만도 했다. 그는 “불가능은 없다는 ‘퍼스트펭귄(First penguin)’의 자세로 CSP프로젝트에 도전했고, 마침내 글로벌 철강벨트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퍼스트펭귄이란 펭귄 무리 중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을 이르는 말이다. 생존과 발전을 위해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도전하는 퍼스트펭귄이 철강업계 선구자 동국제강과 닮았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주 원자재 슬래브의 자체 조달과 외부 판매를 통해 매출을 늘리고 시너지를 높여 지속적인 흑자경영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가 이날 감격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오너 3대에 걸친 꿈이 3세(2남 3녀) 중에서도 막내인 자신이 CEO를 맡고 있는 시기에 완성된 점, CSP제철소 건설 후반부에 글로벌 철강 시황 부진과 회사 경영난으로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가 어렵사리 완공된 점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또한 CSP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진두지휘했던 장남 장세주 회장이 2015년 5월부터 옥고(3년 6개월)를 치르는 풍파 속에서 프로젝트를 끝내야 했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동국제강은 포스코ㆍ현대제철 등과 함께 국내 철강업계 ‘빅3’로 불리며 재계 순위 30위(2015년 기준) 안팎을 오르내린 국내 굴지의 철강회사다. 업계 사람들은 국내 철강업 태동기부터 사업을 해온 동국제강을 국내 철강 종가宗家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 동국제강 가문의 오너 3대가 있다. 고故 장경호 창업회장(1975년 작고)-고 장상태 회장(2세ㆍ2000년 작고)-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3세) 등이 그들이다.

‘5전 6기’ 끝 브라질서 슬래브 자체 조달 

하지만 철강 사업가들이 꿈으로 여기는 고로제철소와 동국제강 가문은 인연이 멀었다. 5번이나 고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국내에서는 두번은 포스코에, 또 한번은 현대제철에 고배를 마셨다. 이후 베네수엘라ㆍ미국ㆍ캐나다 등 해외로 눈을 돌렸지만 그것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국내에서 계속 좌절만 하던 동국제강은 결국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그것도 3자 합작 형태로 꿈을 이뤄냈다.

2005년 본격 착수한 브라질 CSP프로젝트는 유난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당초 브라질 세아라주州와 150만t급의 전기로電氣爐 제철소를 세우기로 했다가 나중 연산 300만t급의 고로제철소로 바뀌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고로를 제작하기로 했던 일본 철강사가 포기하는 바람에 포스코를 설득해 지분 참여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동국제강 내부에서도 큰 문제가 터져 나왔다. 글로벌 철강 시황 부진으로 2012년부터 계속 적자가 나면서 2014년 예정됐던 제철소 건설비용 대출(30억 달러)이 지연돼 애를 먹었다. 게다가 메가톤급 오너 리스크까지 터졌다. 2001년부터 15년째 그룹을 이끌던 장세주 회장이 해외 도박 및 횡령혐의로 2015년 5월 구속된 것. 1990년, 2004년에 이은 세번째 사법처리여서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6개월의 원심을 확정 받고 복역 중이다.

장 부회장은 이때부터 친형 장 회장의 구원투수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장 회장보다 9살 아래인 그는 철강 시황 부진, 악화된 재무구조, 3대째 숙원사업 브라질 CSP제철소 표류라는 큰 숙제들을 안고 출발했다. 그래도 숙원사업인 CSP제철소를 완성시키기 위해 비핵심 사업체를 매각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국제종합기계와 DK유아이엘 등 3개 계열사를 팔았고, 본사 사옥인 페럼타워도 매각했다. 선제적 구조조정 덕분에 지난해 CSP제철소를 완공했고, 707억원의 당기순이익(연결 기준)도 내 5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그는 특이하게 육사(41기) 출신이다. 1996년(34세) 소령으로 예편한 뒤 같은해 2월 동국제강 과장으로 입사했다. 그 후 2010년(48세) 말 그룹 2대 계열사인 유니온스틸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2015년 1월 1일 유니온스틸이 동국제강에 합병됨에 따라 동국제강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같은해 5월 장 회장의 구속으로 구원투수가 돼 비상 경영에 나서게 됐다.

숙원사업 위해 구조조정 아픔 감수

그의 전면 등장으로 동국제강의 ‘형제 경영 체제’가 어떻게 변할지도 주목거리였다. 하지만 장 회장의 ‘옥중 경영’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영권 갈등 소지는 없어 보인다. 이번 기념식에서 그는 친형 장 회장과의 우애를 여러 번 강조했다. 장 회장이 2015년 5월 구속된 이래 총 147회의 면회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형을 매우 좋아한다. 내년에 장 회장이 복귀하면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할 것이고, 저는 부회장으로서 내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입고식 전날(3월 21일)에도 형에게 다녀왔는데, 행사 일정 등을 알려주자 섭섭해 하면서도 내색은 크게 하지 않았다”며 “‘네가 잘하니까 됐다. 똑바로 잘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면회를 갈 때마다 장 회장이 많은 당부와 잔소리를 하는데 특히 CSP 안정화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CSP제철소가 이해관계가 다른 3자 합작인 만큼 이를 잘 이끌어가는 게 그에게 주요 과제로 등장했다. 많은 이들은 또 두 형제간의 신뢰와 우애가 변함없길 기대하고 있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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