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자회사들의 수상한 거래

▲ 산업은행의 두 자회사 간 계약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사상 최대 위기에 놓인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상선과 최대 9000억원 규모의 초대형유조선(VLCC)  건조의향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이 거래에 수상한 점이 많다. 현대상선이 신조 발주를 할 이유가 분명치 않아서다. 두 회사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입김을 넣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우조선해양이 최대 10척 규모의 초대형유조선(VLCC) 건조의향서를 체결했다. 발주처는 현대상선. 초기 발주 5척과 추가 발주 5척 등 VLCC를 최대 10척까지 발주할 수 있다는 게 건조의향서의 골자다.

VLCC 1척의 현재 가격이 약 9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우조선해양은 이번 계약을 통해 최소 4500억원에서 최대 9000억원가량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건조의향서를 체결했다고 해서 계약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회사채 상환을 앞두고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문제는 이 계약에 수상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현대상선이 VLCC를 최대 10척이나 건조해야 할 만한 이유가 분명치 않다. 2016년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현대상선의 원유운송 사업 비중은 전체 사업 실적의 5% 이내에 불과하다. 원유운송 장기계약은 에쓰오일과 필리핀 석유화학업체 페트론 두곳과 체결했는데, 이마저도 올 7월과 2018년 4월에 계약이 만료된다.

현재 사업 규모를 유지한다고 해도 VLCC 10척은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상선이 원유운송 사업에 사용하고 있는 유조선은 총 12척이다. 이 중 단기 거래를 위해 그때그때 빌리는 소형유조선이 7척에 이른다. 실제 사업에 사용하는 고정 유조선은 5척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5척 중에서도 VLCC(17만5000~30만dwt급)는 2척, 나머지는 13만dwt 이하급이다.

그렇다고 현대상선이 중요하지도 않은 사업에 거액을 투자할 만큼 재무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833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6년 연속 적자다. 2015년 2006%까지 치솟았던 부채 비율을 지난해 349%까지 낮추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업황이 불투명한데 원유운송 사업규모도 크지 않은 현대상선이 왜 30만dwt급 VLCC를 5~10척이나 발주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업계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부에선 적절치 않은 계약 체결 시점도 꼬집는다. 국민연금공단의 채무재조정안 최종 발표, 사채권자 집회 등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에 VLCC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채무재조정에 실패하고 P-플랜(프리패키지드 플랜)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단을 의식한 계약 체결이 아니냐는 것이다.

P플랜 결정 앞두고 따낸 수주

P-플랜은 법정관리를 통해 모든 채무를 조정한 뒤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 체제로 전환하는 구조조정 절차다. P-플랜에 돌입하면 기존 건조계약이 취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우조선해양이 P-플랜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수주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더구나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의 대주주는 KDB산업은행이다. 지분율은 각각 49.7%, 14.2%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한 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면서 “이 때문에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하려 했을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산업은행도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면 채권단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상선과 대우조선해양의 건조 계약은 정부가 지원할 전망이다. 현대상선의 VLCC 발주는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가 주관하는 ‘선박 신조 프로그램’을 통해 자금을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박 신조 프로그램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만든 일종의 펀드다. 자금은 민간금융회사 60%, 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ㆍ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국책금융회사 30%, 해운사 10%로 조성된다. 민간금융회사가 출연한 금액도 무역보험공사가 보증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금이 혈세에서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대상선 측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들을 보면 알겠지만 원유운송 사업의 성장 잠재력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업황이 좋지 않은 지금이 가장 값싸게 건조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을 뿐이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시장의 의견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두고 왜 법정관리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은 대우조선해양을 선택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대우조선해양의 파산을 두려워하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상선과 대우조선해양의 건조의향서 체결을 둘러싼 수상한 의혹들, 우연의 일치일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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