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락 가르는 말 한마디

▲ 네거티브 싸움에 숨은 진실을 찾아내는 건 유권자의 몫이다.[사진=뉴시스]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선거로 1970년 앨라배마 주지사 민주당 예비선거가 꼽힌다. 조지 윌러스의 비방공세가 얼마나 심했던지 상대편인 앨버트 브루어는 “주지사가 되는 것이 이렇다면 차라리 포기하는 쪽을 택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인종차별주의자인 조지 윌러스는 선거기간 내내 “깜둥이, 깜둥이, 깜둥이”를 끊임없이 외쳐댔다. 브루어의 두 딸이 흑인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흑인유화정책을 쓰는 것이라는 전단까지 나돌았다. 브루어는 싸우지 않는 신사 이미지를 고수하다가 결국 좌절하고 말았다.

조지 부시와 존 케리가 격돌했던 2004년 대통령 선거 역시 상대 후보를 히틀러라고까지 비난한 지저분한 선거였다. 닉슨 대통령 선거캠프 참모였던 머레이 코티너는 “착한 사람과 겁쟁이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가 눈앞이다. 민주주의는 총칼을 투표용지로 바꿔놨고, 피를 흘리지 않고도 권력의 향방이 결정되도록 했다. 그러나 피에 굶주린 권력의 속성은 여전하다. 험악하고 야만스러운 선거운동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폭력 본능이자 숙명이기도 하다.

대중들은 이성을 잃은 채 상대편 진영에게 저주를 퍼붓고, 조작된 드라마와 가십에 열광한다. 선거에서 폭로와 비방만큼 약발이 잘 듣는 특효약도 없다.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싸움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나 그뿐이다. 상반된 주장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는다. 문제는 흑색선전과 검증의 구별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후보자의 주장이 악의에 찬 흑색선전인지, 선의의 검증요구인지를 구별해내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고 책임이다.

네거티브 칼날은 2강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집중되고 있다. 두 후보에 대한 폭로도 꽤 나왔다. 문 후보의 아들 특혜 취업, 참여정부 민정수석 재임 때 노무현 전 대통령 사돈의 음주사고 무마 의혹 등이 불거졌다. 안 후보에 대해선 부인 김미경 교수의 서울대 임용 특혜 의혹, 포스코 이사회 의장 시절 부실기업 인수의혹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의혹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후보들의 대응 태도를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다.

잔혹한 네거티브 선거사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만 해라”고 어물쩍 넘기는지, 아니면 진정성 있게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는지 점검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는 검증의 실패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대통령을 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애국심 하나는 믿어도 될 줄 알고 뽑았는데 알고 보니 최순실의 꼭두각시에 가까운 혼주昏主였다. 2002년 대선에서 경쟁자들은 여성 지도자의 사생활에 대한 ‘비열한’ 흠집내기라는 비난이 두려워 제대로 나서지 못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1934년에서 1945년까지 뉴욕시장을 역임한 라 구아디아씨는 감성적인 어휘를 구사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행정판사로 재직했던 시절에 빵을 훔친 죄로 법정에 온 한 노인에게 “빵 훔친 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하지만 내가 내겠다”면서 그 이유로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나 스스로의 벌금”이라고 판결했다. 상대방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불우이웃돕기’라는 표현 대신에 따뜻한 말로 감싸안은 것이다. 이명박ㆍ박근혜의 보수정권은 국민의 마음을 배려하는 감성적 리더십이 부족해 불필요한 분노를 자극한 측면이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사상 유례가 없는 네거티브 속에 감성적인 선거가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촛불집회는 질풍과 노도를 상징한다. 혼돈의 시대에 표심은 후보의 말 한마디에 지지와 비토 사이를 오간다. 특히 보수층 유권자들의 고민이 깊다. 라 구아디아 시장처럼 감수성 넘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당락을 가를지 모른다. 철학자인 칼 포퍼는 “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표심에 상처를 주는 말은 최악의 선택이다.

유권자들은 후보가 마뜩잖아도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거짓말쟁이와 세상 물정 모르는 푼수 중 한 사람을 골라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고통스러운’ 축제다. 흑색선전이 난무하던 링컨 대통령이 선거운동 당시 미국의 어느 신문 정치 논평의 말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신神이시여, 이 나라를 구하소서!”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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