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못하는 이유

“함께 큰다.” 동반성장의 사전적 개념이다. 경제적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은 목표를 향해 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뜻이다. 이런 동반성장은 언젠가부터 한국경제의 주요 콘셉트가 됐다. 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대기업이 그토록 동반성장을 부르짖지만 ‘동반성장했다’고 응답하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 왜 일까. 답은 간단하다. ‘대등한 관계’라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빠졌기 때문이다.

▲ 대기업이 법만 제대로 지켜도 동반성장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6일 A기업 본사에서는 일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세미나가 열렸다. 외부 인사들에게 A기업이 2008년부터 해온 지속가능경영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게 한 후 쓴소리를 해달라는 거였다. 강한 어조로 쓴소리를 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 강연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2~3시간씩 사전인터뷰도 진행했다고 한다. 지속가능경영만 따로 떼내 외부감사를 받은 셈이다. 지속가능경영 검토 대상에는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도 포함돼 있었다.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쓴소리를 귀담아듣겠다고 나선 A기업이 정작 동반성장의 본질을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A기업이 외부인사들에게 공개하기로 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적시한 동반성장 활동들은 다음과 같다. “협력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 지원, 교육 지원, 금융 지원, 고용 지원, 하도급 관리 체계 강화, 소통 채널 확대….” 하지만 이런 활동들은 사실 다른 대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동반성장 활동과 다른 게 별로 없다.

지난해 선정된 동반성장 우수사례들을 보자. B기업의 경우 협력업체의 이직률을 낮춰주기 위해 임금과 복지, 근무환경을 개선해줬다. C기업은 종자회사를 설립해 농민들을 지원, 농가가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동시에 원가까지 절감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D기업은 친환경 지역 이미지를 담아 ‘지역 화장품’을 출시, 브랜드 가치 제고와 함께 지역 발전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A기업 보고서와 이 사례를 종합해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기업의 지원→협력업체 수혜→생산성 등 개선→안정적인 협력업체 관리를 통한 대기업 수혜’라는 정형화된 틀이다. 다시 말해 ‘자금을 투입하고, 더 큰 이윤을 얻어가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거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0대 대기업이 협력업체 지원을 위해 쓴 돈만 1조7406억원에 달한다. 바로 이게 문제다. 

동반성장은 투자가 아니다

익명을 원한 E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상생과 동반성장에 관해 잘못 알고 있다. 이런 건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상생이나 동반성장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대등한 관계에서 파트너십을 맺는 거다. 그래야 협력업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자생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진짜 생태계가 조성된다. 대기업들이 동반성장에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

그는 “상생이나 동반성장이 등장한 배경이 ‘대기업 경제력 집중 현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 성장과 양극화’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 등이니까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게 바로 상생과 동반성장”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1월 민주정책연구원과 사회경제정책연구회 주최로 열린 사회경제정책포럼에서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 개선 토론이 열렸을 때, 전문가들이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중소기업의 카르텔 인정과 지위 개선, 부당노동행위 문제 개선, 독일과 일본의 집단자치(상생교섭) 지원제도 등을 집중 논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대기업들의 동반성장 구호는 취지가 좋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동반성장을 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체감도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상생과 동반성장은 어떻게 하는 걸까. E교수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건 평등한 관계 설정이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협력업체와 그 밑의 2차 협력업체, 기업과 소상공인까지 모두 갑을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거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대기업이 법을 잘 지키면 된다. 또한 법을 지키면서도 기술경쟁력이 좋은 협력업체와 동등한 파트너십을 맺으면 된다.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도 없다. 그건 오히려 빠져나갈 구멍만 만들어줄 수 있다.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근로기준법 등의 ‘법 취지’는 힘을 가진 이들이 갑질을 하지 말라는 거다. 

동반성장은 사실상 ‘혁명’

갑을문화가 없어져야 상생과 동반성장의 토대가 만들어진다. 그러려면 결국 대기업 오너와 CEO가 인식을 바꿔야 된다. 협력업체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그만큼 상생과 동반성장은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거다.”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이명박 정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14년이 넘도록 정부와 기업이 상생과 동반성장을 외쳤음에도 대ㆍ중소기업 양극화가 해결되지 않고 더 심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는 거다. 통계에선 동반성장지수가 올라가고 있었지만 약속 어음결제, 기술 탈취, 인력 빼가기, 단가인하 압박을 통한 성과 탈취 등이 여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E교수는 “물론 중소기업은 그 나름대로 대기업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평등한 관계가 되려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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