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한 을은 문제 없나

▲ 기업 생태계가 악화하는 게 대기업만의 탓은 아니다. 중소기업도 자성할 것이 많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중소기업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은 ‘대기업’이다. 공룡처럼 큰 몸집으로 중소기업 상권을 침해하기 일쑤다. 불공정 거래 습관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대기업 탓만은 아니다. 그런 생태계 속에서 혁신 의지를 잃은 중소기업에도 문제는 있다. 실제로 국내 중소기업은 투자 비중을 계속해서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R&D(연구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들에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중소기업들이 원론적인 답을 입에 담은 건 아니다.

기업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R&D라고 생각하는 중소기업 CEO는 숱하다. 정부가 중소기업들의 투자비용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청은 ‘중소ㆍ중견기업 기술개발 지원사업’을 주관한다. 21개 사업 과제에 따라 신청을 받고, 선정된 중소기업에는 최소 2000만원에서 최대 8억원가량(과제당)의 R&D 비용을 지원한다.

월드클래스300도 같은 맥락의 지원 사업이다. 성장의지와 잠재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해 산업의 허리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로 시행됐다. 2011년 29개 기업으로 시작한 월드클래스300은 지난해까지 누적 230개 기업이 R&D 비용을 받았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은 해마다 악화하고, 대기업 간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불공정거래 관행’ 등 중소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혁신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청이 공개한 전국의 1인이상 중소기업 사업체의 투자 현황을 보면 그렇게 볼 만한 여지도 있다.

중소기업의 매출 대비 투자는 2013년 3.9%에서 2014년 3.8%, 2015년 3.6%로 내리 감소했다. 중소중견기업 기술개발 지원사업 신청수도 2015년 1만9896건에서 지난해 1만8355건으로 크게 줄었다. 중소기업의 투자 분야는 되레 후퇴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의 투자 분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신제품 개발(52.8%)’이었다.

하지만 2015년에는 신제품개발의 투자 비중이 33.6%로 추락했고, 그 자리를 ‘기존제품 개선(59.5%)’이 차지했다. 부가가치 생산성도 같은 기간 절반가량 떨어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경쟁력을 키우려면 R&D 투자가 중요한데, 신산업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다는 건 스스로 성장을 포기한다는 얘기”라면서 “대기업 틈에서 힘든 줄은 알지만 그럴수록 투자를 통해 혁신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을 위해선 대기업의 갑을관계 개선 노력과 불공정거래를 막는 제도 마련이 필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중소기업의 혁신 의지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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