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무대서 존재감 없는 한국

▲ 최근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코리아 패싱은 외교안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해 한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사진=뉴시스]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국제외교 무대는 물론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데에서조차 한국은 존재감이 없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만 움직일 뿐 한국은 왕따당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ㆍ한국 왕따)’ 현상이 심각하다.

북한의 미사일ㆍ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반도로 이동한다던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는 다른 데서 훈련 중이었다. 미 행정부 당국자들이 확인해준 날짜보다 열흘 늦게 뱃머리를 돌렸다지만, 4월 위기설의 한축이었던 칼빈슨호의 한반도 조기 배치는 사실이 아니었다. 칼빈슨호 항로 논란이 미 행정부의 착오였든, 계산된 전략이었든 북한이 오판했다면 한반도는 큰 위험에 빠질 뻔한 위기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4월 초 미국-중국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거라서 시 주석이 그런 말을 했는지, 트럼프 대통령이 곡해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느 쪽이라도 심히 우려되는 역사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원수끼리 대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도 문제지만, 한국을 얼마나 가볍게 보면 그런 말을 언론에 거침없이 해댈까. 트럼프 정부의 한국 홀대는 이미 여러 군데서 감지됐다. 주한미국대사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석달 넘게 공석이다. 일본과 중국 주재 미국대사는 일찍이 임명됐다. 일본-중국과는 정상회담에 이어 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 3월 동북아 순방길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로 표현했다. 한미 양국간 외교 혼선 속에 두 나라 외교장관 만찬이 불발됐다. 일본 언론은 틸러슨 장관이 방한 과정에서 ‘한일관계 정체에 유감을 표명했다’고 보도해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을 두둔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4월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방한해 비무장지대를 찾고 북한의 위협에 상응한 한미동맹의 대비 태세를 강조한 뒤 불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문제를 거론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압박하게 하는 대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는 ‘빅딜’을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부통령이 직접 한미 FTA 개정을 압박했다. 트럼프식 미국우선주의에 입각한 통상 압력이 가시화한 것이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환율조작국 지정이란 오명 씌우기는 피했다지만, 이는 한국이 예뻐서라기보다 무역흑자가 훨씬 큰 중국은 봐주면서 한국을 지정하기 어려운 점이 작용했으리라.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와의 통상마찰 소지는 상존해 있다. 이를 예고하듯 미 상무부는 18일 한국 등 10개국이 수출하는 철강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다. 트럼프 정부의 한국산 수출품에 대한 첫 덤핑관세 조사다.

우려할 일이 잇달아 터지는데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한국은 중국의 일부’ 발언에 외교부가 한 일은 공식 성명이나 논평도 아닌 ‘프레스 가이던스(언론 대응 지침)’ 형태로 “보도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일고의 가치도 없음”이라고 언급한 게 전부다.

아무리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는 국정 리더십 공백 상태라고 해도 이래선 안 된다. 코리아 패싱을 자초하는 형국이다. 코리아 패싱을 넘어 ‘코리아 배싱(Korea Bashingㆍ한국 때리기)’ 현상까지 빚고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그것이다.

코리아 패싱은 외교안보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인 코리아 리스크를 키우고, 한국 기업과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대한對韓 투자 매력까지 갉아먹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해 ‘경제 부문의 코리아 패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작금의 외교안보 현실은 미국과 중국의 두 ‘스트롱맨’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야 할 한국 대통령의 험난한 앞날의 예고편일 수 있다. 새 정부는 한반도 위기관리에다 미국과 통상 마찰, 중국과는 사드 보복 등 삼각 파고를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대선 후보들은 주적主敵 표현과 대북對北송금 논란 등을 둘러싼 말꼬리 잡기에 바쁘다. 대선 후보들이여,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미래를 주제로 토론하라. 코리아 패싱의 배경을 따지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뭘 어떻게 할지를 밝혀라.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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