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림노스 - 염려하지 않는 자

▲ 불안은 욕망의 하녀일 뿐이다. 내일은 내 것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영화 ‘지니어스’는 미국의 천재 작가 토마스 울프(1900~1938년)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세기의 소설가로 키워낸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울프의 처녀작 「천사여, 고향을 보라」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언론은 그에게 천재작가라는 수식어를 달아준다.

더욱 완벽한 후속작품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그는 엄청난 정신적 고뇌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과 불화하다가 뇌종양으로 38세에 요절한다. 이 영화에 스쳐 나오는 동시대의 유명한 작가들도 하나같이 불행하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년)는 「위대한 개츠비」를 내놓은 이후 역설적으로 파국을 맞는다.

더 좋은 후속 작품에 대한 불안감은 단 한줄의 글도 쓸 수 없을 정도의 강박감으로 그를 몰아넣는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병마 생활고로 고통을 겪다가 44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무기여 잘있거라」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년) 역시 순탄치 않은 삶을 보냈다. 그는 극심한 불안감으로 펜조차 들 수 없는 자신을 자책했다. 과대망상과 우울증으로 고통 받다가 집에서 총구를 입에 물고 생을 마감했다.

인간은 모두 불안에 떨며 산다. 죽음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 못지않게 실패와 명예 추락에 대한 공포도 크다.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안은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거리다. 물질적 풍요에도 직위, 성취, 수입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성공한 사람은 더 큰 성공을 위해 불안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한다. 성공한 사람조차 놀랍게도 자신이 뒤떨어진 존재고, 가난하다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다. 성취한 뒤의 만족감은 극히 짧다. 정상에 오르면 또다시 불안과 욕망이 뒤엉킨 새로운 저지대로 내려가야 한다. 언젠가는 친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적과의 동침’을 해야 하고, 언젠가 원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친구와 함께 살아야 하니 늘 불안감을 떨칠 수 없을 게다.

한국만큼 안보ㆍ경제ㆍ미래가 총체적으로 불안한 나라가 없다. 광기의 지도자가 이끄는 북한은 핵실험을 하며 전쟁 위협을 하고 있고, 중국은 주권국의 방어용 무기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를 놓고 경제보복을 해댄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을 보면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백년대계보다는 당선되고 보자는 포풀리즘이 판을 친다. 평균 수명은 머지않아 100세 시대를 넘본다는데, 일터에서는 언제 퇴출될지 모른다. 노후준비는커녕 가계부채가 더 쌓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표현이 신기하게도 365번 나온다고 한다. 1년 365일 내내 불안에 떠는 인간의 심리를 표현한 말일 게다. ‘염려하다’는 헬라 말은 ‘메림노(merimno)’로 ‘목을 조르다’ ‘마음이 나누어지다’는 뜻이다.

‘아메림노스(Ameimnos)’라는 말이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애용한 별칭으로 ‘염려하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어니 J.젤린스키는 저서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일어났고, 22%는 사소한 사건이고, 4%는 바꿀 수 없고, 4%만이 대체할 수 없는 진짜 사건이라고 말했다. 96%의 걱정거리는 쓸데없는 마음고생이니 훌훌 털어버리라는 조언이다.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한 불안과 걱정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불안을 극복하려면 삶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또 세상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을 지옥이라고 했다. 타인의 시선은 내 삶을 함부로 규정하는 폭력이라 말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다.

동물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어제를 기억하며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내일 염려는 내일이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니까 내가 걱정할 권리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 그날 그날을 즐겁고 보람차게 사는 것이 생명을 주신 신神의 섭리다. 긴 세월 속의 지금 이 순간은 티끌보다 가벼운 찰나에 불과하다. 생

명은 어차피 소멸하는 것이고, 죽음 앞에서는 모든 일이 하찮고 부질없는 일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은 무려 84일 만에 잡은 초대형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 상어 떼와 싸우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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