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와 경제학 거인들

“하이에크, 슘페터, 케인스….” 세계 경제학의 거인들이 5월 장미대선에 등장했다. 각 후보들의 경제 정책을 통해서다. 이들 경제학자의 제자들이 세기가 지나서도 치열한 논쟁 중인 만큼, 어느 후보의 공약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후보들의 경제 정책에 아쉬운 점을 엿볼 수는 있다.

▲ 대선주자의 경제정책에서 유명 경제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사진=뉴시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경제해법은 오스트리아 출신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떠올리게 한다. 홍 후보의 선고 포스터에 실린 슬로건을 보자. “기업에는 자유를, 서민들에게는 희망을.”

홍 후보는 “경제정책의 기본은 기업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라면서 “부자가 가진 걸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잘못된 복지정책”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과 부자에 매기는 세금을 줄이고 기업 규제를 풀면 기업들이 신나게 투자를 늘릴 거라는 분석이다. 투자가 늘어나면 일자리도 덩달아 상승한다는 거다.

‘줄푸세’의 원류는 하이에크다.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꺼렸다. 정부가 개입하면 시장의 자생적 회복이 더뎌지고 왜곡된다고 생각해서다. 정부가 커지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경제가 더욱 망가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자생적 질서인 시장과 혁신, 경쟁이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한다면 정부의 역할은 크게 필요 없다고 봤다. 반면 기업 및 금융시장 규제 도입과 소득세 및 법인세 증세, 사회복지 확대와 노동권 강화 등의 정책을 쓰는 정부의 결말은 “노예로의 길”이라고 비난했다. 홍 후보의 톤과 비슷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경제해법은 조셉 슘페터와 가깝다. 슘페터의 경제사상의 핵심이 ‘기업가 정신’이라서다. 슘페터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적 파괴’를 이끌어가는 영웅적인 창업가들이야말로 시장의 동력으로 봤다. 슘페터에게 경제위기나 불황은 기업이 과도하게 출현해 생긴 과잉 투자를 해소하는 과정일 뿐이다. 정부는 그저 기업가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의 핵심 경제해법 역시 ‘중소벤처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그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기업과 민간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재벌개혁에 대해선 반칙과 부패를 일삼는 기업은 엄단해야 하지만, 그저 재벌이란 이유로 옥죄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슘페터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제정책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론을 빼닮았다. 문 후보는 국가재정지출 증가율을 연평균 3.5%에서 7%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돈을 풀더라도 과거 정부가 해오던 토목 공사에는 집중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신 육아와 교육, 복지, 주택, 보건의료 등 사회복지분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하이에크 닮은 홍준표

문 후보 스스로 케인스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만나 이런 말을 했다. “경제학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고, 정치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민주주의 틀 내에서 하는 것이다. 이런 케인스의 말이 곧 문재인의 말이다.”

세 후보는 서로의 경제정책을 두고 맹렬히 비판한다. 흥미로운 건 세 후보를 떠올리게 하는 세 명의 위대한 경제학자가 서로를 비판할 때 쓰던 논리가 그대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안 후보는 문 후보의 경제해법에 반대 논리로 이런 설명을 꺼냈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 정부의 역할은 교육개혁을 통한 창의적 인재 양성과 독자적 과학기술력 확보, 공정경쟁 산업구조 마련 등 3가지다.” 오늘날 신新슘페터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정부의 경제적 역할과 들어맞는다.

사실 정부냐 시장이냐, 케인스 이론이냐 슘페터 이론이냐 하는 원론적 접근은 중요하지 않다. 정부도 역할을 해야 하고 민간기업의 참여도 독려해야 한다. 하이에크와 케인스, 슘페터는 이론적으론 대치했지만 모두 존경받았다. 세 후보의 경제공약을 놓고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절대적으로 판정할 순 없는 이유다.

다만 등장하지 못해서 아쉬운 경제학자는 있다. 바로 ‘금융투자의 케인스’다. 문 후보가 언급한 ‘국가재정의 케인스’와는 결이 다르다. 케인스는 국가 재정 지출 확대로 소득을 늘리는 데만 집중한 게 아니다. 그가 ‘실물 투자의 성장’도 원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케인스는 금융자본 안에 숨은 속성을 발견했다. 바로 ‘투기投機’다. 금융자본은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투기로 사용된다는 거다. 하지만 투기는 시장과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케인스가 막대한 금융자본이 단순히 투기에 낭비되는 걸 마뜩지 않아했던 이유다. 그는 대신 이 자본이 생산 분야로 흘러 들어가면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봤다. 이를 위해서 은행과 자본시장에 촘촘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이론이 맞는가

한국경제는 현재 ‘자본 과잉’ 상태다. 시장에는 수천조원 규모로 떠돌아다니는 유동자본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수백만명의 청년구직자도 있다. 기업의 여유자금과 은행의 여유자금, 그리고 사모펀드ㆍ헤지펀드에 몰리는 금융자본 등이 실물투자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발표된 대선 후보들의 경제정책에는 이런 해법이 빠져있다. ‘금융투자의 케인스’를 이번 장미대선에서 보고 싶은 이유다.
정승일 새사연 연구이사 sijeongll@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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