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전락한 세빛섬

▲ 세빛섬이 개장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본잠식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강 재건 사업으로 기대를 모았던 세빛섬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개장 이후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기는커녕 막대한 손실만 기록하고 있다. 머리가 복합해진 건 운영주체 효성이다. 거액을 들여 투자했건만 추가 비용만 더 들게 생겼기 때문이다. 효성은 “공익사업이라 적자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해가 가볍게 내리쬐는 봄날. 서울 잠수교 위를 달리던 버스에서 내렸다. 문 밖으로 한발 내딛자 선선한 강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 부닥친다. 한강의 수변공원을 거닐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2대의 버스만이 정차하는 이 정류장에서 200m가량을 걸어 나가면 한강 위로 우뚝 솟아오른 두 개의 인공섬이 눈에 들어온다. 채빛섬과 가빛섬. 세빛섬을 이루는 네개의 섬 중 규모가 가장 큰 두개의 섬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나머지 두 섬, 예빛섬과 솔빛섬도 모습을 드러낸다.

4월 24일 12시 20분께, 바깥에서 본 세빛섬의 전경은 ‘한강 르네상스’를 이끌 관광명소라는 명성이 무색했다. 점심시간을 틈타 여유를 찾는 4~5명의 직장인, 자전거를 세워놓고 난간에 기대 잠시 바람을 쐬고 있는 청년 2~3명. 강의가 없는 시간에 맞춰 놀러 나온 듯한 10여명의 대학생, 이들이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강바람이 점차 거세지니 황량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레스토랑, 뷔페, 카페, 펍 등이 들어서있는 세빛섬 내부. 여느 곳이라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러 찾아 온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귓등을 때렸겠지만 그보다 먼저 차가운 공기가 폐부肺腑를 찌른다. 통유리로 안이 들여다보이는 카페는 세 테이블 이상 손님을 받은 곳이 없고, 가빛섬 3층에 위치한 펍엔 200~300명은 거뜬히 받을 수 있을 만한 홀이 덩그러니 남은 채 6팀 정도만이 식사를 하고 있다.

평일 점심 세빛섬의 풍경이다. 평일이라서였을까. 하루 평균 방문객 평일 4500명, 주말 1만명. ‘어벤져스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던 2015년이 세빛섬의 마지막 봄이었던 걸까. 2006년 서울시가 야심차게 기획한 한강 르네상스의 핵심사업 세빛섬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빛섬은 2014년 10월 정식 개장 이후 내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적자 규모는 2014년 73억원, 2015년 30억원, 2016년 32억원으로 첫해보단 손실이 줄었지만 여전히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광객 없는 한강 관광명소

세빛섬의 운영 악화로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효성이다. 효성은 세빛섬의 지분을 57.8%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그래서인지 세빛섬 매출의 99%도 효성에서 나온다. 세빛섬의 경영이 악화할수록 효성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게 효성 측의 반응이다. 효성 관계자는 “세빛섬은 수익사업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공익사업”이라면서 “적자가 나더라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익을 내고자 해도 서울시 산하의 한강사업본부가 가격과 이벤트 등을 통제하고 있어 사실상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가빛섬 1층에 위치한 효성 직영 레스토랑의 경우 음료 가격만 8800~1만5000원(아메리카노ㆍ녹차 등 8800원, 생과일주스 1만5000원)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명동과 서울 도심에 위치한 유명 호텔의 커피가격을 웃도는 수준이다. “공익을 위해 다소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효성 측의 주장이 허언으로 들리는 이유다.

한강사업본부가 제약을 하고 있다는 말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세빛섬 관계자는 “공차와 같은 프랜차이즈의 경우 다른 지점보다 비싸게 받지 말라는 정도의 ‘권고사항’만 있을 뿐 별다른 제약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전시장ㆍ공연장으로 쓰이던 예빛섬과 솔빛섬은 현재 방치돼있어 “레스토랑, 펍, 카페만 즐비한데 무슨 공익사업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효성이 세빛섬 사업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건 공익사업이라서가 아니다. 생각지 못하게 불어난 투자금 탓에 셈법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효성이 세빛섬 사업에 참여한 시기는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때다. 세빛섬의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개장을 눈앞에 두고 있던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교체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600억원 불어난 투자금에 발목

▲ 손님맞이로 한창이어야 할 시간임에도 세빛섬 내 카페는 한산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세빛섬 사업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민간기업 특혜와 부실공사 문제가 드러났다. 수순대로 공사기간이 연장되자 800억원을 예상했던 공사비가 1400억원가량으로 불어났다. 효성으로선 상환해야 할 부채와 이자가 급격히 증가한 셈이다.

세빛섬 임대사업이라도 잘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다.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 뷔페 두곳을 제외하면 임대 실적이 신통치 않다. 효성 관계자는 “세빛섬의 손익분기점은 100억원 이상의 임대료를 받아야 맞출 수 있다”면서 “하지만 교통 및 지리적 위치 등 열악한 입지조건 탓에 임대사업이 여의치 않다”고 털어놨다.

앞으로도 문제다. 효성은 서울시와 20년 무상운영, 10년 유상운영 후 기부채납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은 무상운영 기간이라 추가금이 없지만 이후 유상운영하게 되면 사용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정책변경 탓이든 셈의 오류 탓이든 세빛섬은 미래가 어두운 섬으로 전락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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