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렌털시대 ‘활짝’

▲ 비싼 돈 들여 사지 않아도 합리적인 가격에 옷을 빌려 입을 수 있는 패션렌털 산업이 뜨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소비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과거엔 ‘소유’를 목적으로 한 소비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합리성을 내세운 ‘렌털’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필요할 때 빌려 쓰고 돌려주면 되니, 굳이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생활가전에서 빠르게 확대되던 렌털서비스가 최근엔 패션 분야로까지 넓혀졌다.

주부 조선경(가명)씨는 요즘 딸아이 돌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한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돌잔치를 이벤트 업체에 맡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신경 쓸 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다른 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는데, 아직 옷을 고르지 못했다. 결혼식 때 장만한 한복을 입을까도 했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입을 일이 있을까 싶어 드레스를 입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된 옷 한벌 사자니 망설여진다. 한번 입고 옷장 속에 고이 간직해둘 것 같은 옷에 큰돈 들이자니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다 이웃으로부터 근처 백화점 지하에 드레스를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휴대전화로 검색해보니, 입고 싶었던 옷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 아닌가. 일단 예약을 신청한 조씨는 며칠 후 방문해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다.

극심한 경기침체,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에 93포인트이던 소비자심리지수는 3월 97포인트로 상승, 경제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기준치 100에 다가서고 있다. 의류비 지출전망CSI지수도 같은 궤적을 그린다. 1월에는 96포인트였던 것이 3월엔 98포인트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어버이날, 어린이날 등 각종 행사가 즐비한 2분기에는 소비심리가 더욱 개선될 거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서민들은 수두룩하다. 그 여파는 생활용품을 다루는 업종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특히 패션업계가 고전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실질 가계수지 항목 중 의류ㆍ신발은 해마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17만9957만원이던 의류ㆍ신발 소비는 2016년 15만5171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소득은 한정돼 있는데 물가는 치솟으니까 여간해선 옷ㆍ신발 등에 지갑을 열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굳이 사지 않아도 합리적인 가격대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렌털시장이 뜨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수기ㆍ공기청정기ㆍ비데 등 생활가전에서 몸집을 키워온 렌털산업은 안마의자ㆍ영유아 가구까지 확산됐다. 최근엔 패션업계도 가세해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SK플래닛은 지난해 9월말 패션 스트리밍 서비스 ‘프로젝트 앤(PROJECT ANNE) ’을 론칭했다. 다양한 패션을 경험하고 싶지만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거나 구매 전에 미리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새로운 소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서비스다.

월 8만원짜리 이용권을 구매하면 의류 4회 또는 핸드백을 월 3회 렌털할 수 있다. 시즌이 종료되면 정기적으로 ‘패밀리 세일’과 ‘애프터 앤’ 서비스를 실시, 빌려 입던 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다.

유명브랜드를 합리적인 가격에…

‘프로젝트 앤’은 론칭 6개월 만에 가입자 수가 크게 늘었다. 3월 기준 가입자 수는 약 9만5000명, 정기권과 월 이용권을 포함한 이용권 구매 건수는 9400건을 기록했다. 150여개 브랜드의 3만여개 아이템이 입고돼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구매자의 80% 이상이 중복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 앤’이 비교적 트렌디하고 일상적인 패션을 렌털해주고 있다면 롯데백화점은 ‘특별한 날’을 위한 패션렌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7월, 업계 최초로 문을 연 ‘살롱 드 샬롯(Salond de Charlotte)’은 드레스ㆍ슈트ㆍ주얼리 등 자주 착용하진 않지만 가격대가 높아 구매하기 어려운 제품들을 빌려준다. 드레스 전문 브랜드 ‘저스트 필리파’, 디자이너 브랜드 ‘장민영’, 연주자 또는 발레리나 맞춤복으로 인기가 높은 ‘라실루엣드 유제니’ 등을 선보이고 있다. 2박 3일을 기준으로 30만~40만원대에 렌털할 수 있는 품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명품핸드백은 10만원대로도 렌털이 가능하다. 평일엔 20~30명, 주말엔 30~40명의 고객이 매장을 찾는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1~2개 수량 들어와 있기 때문에 아주 저렴한 가격대는 아니에요, 판매가 대비 30~40% 할인된 금액으로 렌털이 가능해요. 가격적인 면보다 특별함, 희소성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거 같아요. 최근엔 스몰웨딩이 대세여서 그런지 드레스 찾는 고객이 늘고 있어요. 한번 입고 마는 드레스 비용 아껴서 차라리 신혼여행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이더라고요.”

▲ 드레스와 핸드백 등을 렌털해주는 롯데백화점 패션렌털숍 ‘살롱 드 샬롯’.[사진=롯데백화점 제공]
이런 트렌드는 미국과 일본 등 해외시장에 이미 대중화되고 있다. 미국의 ‘렌트 더 런웨이(Rent the Runway)’는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저렴하게 빌려 입을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으로, 월 정액요금만 내면 한 달에 3번 입고 싶은 옷과 가방을 빌릴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패션렌털 서비스는 IT벤처 기업이 오픈한 ‘에어클로젯(Air Close t)’이다. 전신사진을 등록하고 월정액 6800엔(약 7만원)만 내면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고른 의류 3종을 빌려 입을 수 있다.

평상복 렌털 가능할까

하지만 불황 속에 탄생한 패션렌털 산업이 지속가능할지는 의견이 갈린다. 깊어진 불황에 소비자들은 어떻게라도 소비를 줄여보려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고 있지만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한 유통업체의 새로운 판매전략일 수도 있어서다. 김경자 가톨릭대(소비자학) 교수는 “일정기간 사용하면 나중에 소유할 수 있게 되는 정수기나 자동차처럼 패션렌털도 충분히 그런 판매방법으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학 스위트스팟 팀장은 “모자ㆍ안경ㆍ가방 등 패션 액세서리나 파티 드레스 같은 특수복은 니즈가 분명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만, 데일리웨어(평상복) 렌털은 옷을 빌려 입는다는 게 우리 정서와 크게 맞지 않아 패션렌털시장의 주인공이 될지 의문이다”고 내다봤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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