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R&D 사업 성과 보고서

약 20조원. 한해 국가연구개발 사업(국가R&D 사업)에 들어가는 돈이다. 당연히 국민 세금이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한 연구보다 미래를 위한 연구에 투자하라고 배정하는 돈인데, 제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국가R&D 사업의 효율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산하 ‘시장과정부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가 오랫동안 공들인 보고서다.

▲ 정부는 국가R&D 사업을 통해 각종 연구를 지원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의 정부의 연구ㆍ개발(R&D) 투자 규모는 2010~2014년 연평균 6.6%씩 늘었다. 같은 기간 정부 통합재정 규모가 연평균 5.3%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증가율이다. 미래창조과학부(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성과분석’에 따르면 성과는 투자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 5년간 국내 등록 특허는 연평균 34.5%, 해외 등록 특허는 34.9%, 사업화는 22.2%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기조에 따른 실용화 성과 확대 경향이 반영된 결과다. 2014년 SCI논문(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건수는 전년대비 30.6% 증가하고, SCI 논문의 피인용 횟수도 꾸준히 상승했다. 양적 성장은 물론 질적 성장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최근 3년간 질적 지표 수준이 다소 정체되고 있어 질적 성장 제고 노력이 더 필요하다.”

2016년 1월 미래창조과학부의 정책홍보 웹진 ‘미래이야기’에 실린 글의 일부다. 정부가 주도한 연구개발사업, 이른바 ‘국가R&D 사업’을 정부 스스로 평가한 건데, 문제는 내용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국가R&D 사업의 성과가 눈부시다. 질적 성장을 위해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는 있지만, ‘국가R&D 사업은 비용 투입 대비 성과가 매우 뛰어난 사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2016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하며 관심을 끌었다. 바둑대결 이벤트가 끝나고 3일 후, 정부는 AI 연구 1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뇌과학 발전전략’도 내놨다. 자살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 우울증 연구가 인기를 끌고, 큰 재난이 닥치고 나면 외상후증후군 연구가 인기를 끄는 것처럼 AI연구 1조원 투자계획도 순식간에 나왔다.

정부가 사회적 이슈나 산업적 필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 졸속사업으로 전락해 정작 중요한 과제를 놓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호원경 서울대(의학) 교수가 2016년 6월 ‘젊은 과학자들의 커뮤니티’로 통하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브릭(BRIC)’에서 했던 지적은 경종을 울린다. “정부가 주도하는 ‘기획연구’는 과학자들의 창의적 연구를 막고, 기초연구를 방해한다. 연구과제가 학자들이 아닌 정부에 의해 결정되면 기초연구도 부실해져 결국 우리나라의 과학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이다.”

정부가 “국가R&D 사업은 큰 성과들을 내고 있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쓴소리로 풀이된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R&D 사업을 분석한 연구자료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산하 ‘시장과정부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가 몇년간 공을 들여 준비해온 논문이다. 연구센터는 국가R&D 사업의 지원을 받아 출원한 특허의 가치를 ‘등록유지 비율’ ‘인용(활용) 정보’ 등의 기준으로 따져봤다. 더불어 최근 정부가 추진한 국가R&D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됐던 ‘21세기프론티어 사업(1999~2010년)’의 효율성도 측정했다.

결과는 어떨까. 국가R&D 사업의 지원을 받아 출원된 특허의 등록유지 비율은 민간 특허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국가R&D 특허의 등록을 돈을 내가면서까지 유지할 만한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국가가 해야 할 기초연구에 충실했던 것도 아니다. 2006~2013년 국가R&D 특허를 활용한 비율은 ‘장기적’이지 않았다. 국가R&D 사업이 장기간에 걸쳐 활용되는 기초연구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는 얘기다.

임홍래 연구원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국가특허가 민간특허보다 가치 있다고 할 만한 근거, 국가특허가 개발기술 연구에 중점을 둔 민간특허보다 기초기술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면서 “정부 재원을 투입해 미래성장 동력을 담보할 만한 성과를 못 내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21세기프론티어 사업’의 분석 결과도 마찬가지다. 연구를 보조했던 이희원 연구원은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의 논문 성과가 일반연구자 사업보다 더 효율적이거나 효과적으로 선진국 수준의 기술 역량을 확보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면서 “특허나 사업화 등을 분석해 지금보다 더 정확한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국가의 ‘기획연구’가 일반연구자들의 연구보다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듯하다”고 분석했다.
중요한 건 이처럼 기업의 연구와 차별점을 찾기 힘든 국가R&D 사업에 들어가는 한해 예산만 2015년 기준 18조8747억원에 달한다는 거다. 2011년 총 예산이 14조8528억원이었으니 매년 1조원씩 올랐다. 

과제 선정부터 성과관리까지 오픈해야

호원경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정부의 R&D 투자 방향성을 창의적 기초연구에 두고, 성과분석도 제대로 해서 자유공모 기초연구비를 늘려주는 방식으로 연구 재원 배분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연구자들의 학문적 필요에 의해 연구과제가 선정되지 못하고, 공무원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과제가 선정되는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거다. 그러려면 국가R&D 사업의 성과 분석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 정부가 하는 것처럼 기준도 없이 ‘얼마의 성과를 냈다’ 이런 게 아니라 연구자들도 납득할 수 있는 분석 결과를 내놔야 한다. 그 작업을 늦출수록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점점 뒤처질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