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R&D vs 세계 트렌드

1999년 가동된 21세기프론티어 사업을 기억하는가. 바이오ㆍ나노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면서 추진한 정부 프로젝트다. 정부는 “큰 성과를 냈다”고 홍보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서울대 시장과정부연구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의생명과학 분야에서 프론티어 사업은 연구비 100만원 당 0.011편의 논문을 내는 데 그쳤다. 그렇다고 그 논문들이 국제적 학술지에 많이 인용된 것도 아니다. 

▲ 저명한 국제학술지들은 21세기 프론티어 사업단의 논문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1999년.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우리나라 산업은 군데군데 상처가 났다. 반면 글로벌 경제는 IT 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을 기점으로 눈부신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반전이 필요했다. 낡은 성장전략을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다. 차세대 성장동력이 절실했고,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는 명확했다. 세계 일류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국가주도 장기연구개발사업인 21세기프론티어 사업(프론티어 사업)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만의 강점 기술을 선택하고 개발해 2010년 기술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청사진을 그렸다. 10년간 정부연구비 1조2450억원이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성과도 굵직하다. 국내외에서 총 9655건의 특허 출원 및 등록이 이뤄졌다. 게재된 논문만 해도 1만2013건이었다. 확보한 기술을 기업체에 이전해준 일은 427건에 달했다. 이 프로젝트로 4789명의 석ㆍ박사를 배출했다. 달콤한 결실이었다. 비슷한 성격의 글로벌프론티어 사업이 뒤이어 출범한 이유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이 굵직한 성과를 냈는데 우리나라를 기술 선진국으로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프론티어 사업의 집중 개발 분야로 선정된 바이오, 나노, 에너지ㆍ환경 등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호기심을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있다. 시장과정부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가 분석한 ‘21세기프론티어 사업 성과 분석 자료’다. 이 자료는 정부가 역설한 달콤한 성과와는 거리가 있었다.

시장과정부연구센터는 16개 사업단 중 2개 사업단의 성과를 분석했다. 프로젝트 초기에 선정돼 다른 사업단에 비해 성과가 많은 ‘인간유전체 기능연구’와 ‘자생식물이용 기술개발’이다.

분석시점은 사업의 마지막 해인 2009년으로 잡았다. 비교 대상은 2개의 프론티어 사업단과 유사한 과제를 수행한 일반연구자지원 사업으로 삼았다. 일반연구자지원 사업이란 여성연구자, 지역대학 우수과학자 등 특정 그룹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프론티어 사업은 정부가 주도하는 반면, 일반연구자지원 사업은 개별 연구원 집단이 이끈다.

먼저 효율성 결과를 보자. 의생명과학 분야에서 프론티어 사업의 연구비 100만원 당 논문 수는 0.011편, 일반연구자지원 사업은 0.032편이었다. 일반연구자지원 사업의 효율성이 프론티어 사업보다 3배는 좋았다는 얘기다. 산업바이오 분야에서도 일반연구자지원 사업의 성과가 프론티어 사업보다 2배가량 많았다.

인용지수(IFㆍ해당 논문이 다른 논문에 얼마나 인용됐는지를 계산한 수치)를 근거로 논문의 완성도는 프론티어 사업이 좋았다. 프론티어 사업의 두 사업단이 100개의 국제 저명학술지에 이름을 올린 논문은 총 3편으로, 평균 IF는 4.37이다. 일반연구자지원 사업의 평균 IF인 3.16보다는 높다. 그렇다고 프론티어 사업의 인용지수 4.37이 높다는 건 아니다. 저명 국제학술지의 평균 IF 14.15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연구센터는 논문의 ‘핵심주제어’도 비교ㆍ분석했다. 저명 국제학술지의 핵심 주제어가 프론티어 사업단의 논문에도 있다면 글로벌 첨단 연구경향과 유사한 흐름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어서다. 연구센터에 따르면 저명 국제학술지 핵심 주제어 3만2454개 중 프론티어 사업의 논문과 일치한 핵심 주제어는 179개였다. 0.55%의 비율이다. 한편에선 “프론티어 사업의 논문 수는 159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1만6386개에 이르는 국제학술지의 주제어와 비교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연구센터는 논문 수를 고려해 2차 분석을 했다. 국제학술지를 기준으로 프론티어 사업 논문이 1% 늘어날 때 핵심 주제어의 증가율을 따져봤다. 프런티어 논문이 1% 증가할 때 핵심 주제어도 1% 늘어난다면 정부 사업이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한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결과는 0.57%로 미흡했다. 프론티어 사업이 프론티어하진 않았다는 거다.

물론 2개 사업단의 논문 성과만 두고 프론티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건 섣부른 일이다. 다만 확실한 건 세계 정상급의 과학기술 지식은 우리나라 프론티어 사업단의 연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세계 정상급 기술력 확보’를 기치로 나선 대규모 프로젝트의 민낯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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