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비리 막고 싶다면…

▲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은 줄을 대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통령 스스로 단호해져야 한다.[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꼽힌다. 남의 청을 좀처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이 많다. 애당초 정치에 관심이 없던 그가 대통령에 이르게 된 것은 우연과 인연이 그의 책이름 「운명」처럼 얽히고설킨 탓이다. 그는 3번 재수再修를 했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대학, 사법시험, 대통령선거에서다. 그러나 그는 ‘재수 좋게’ 사람을 잘 만났고, 시대의 도움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무려 7살이나 많은 노무현은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문재인의 넉넉한 친구였다. 대통령이 되려면 시대적 코드에도 맞아야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노무현의 돌연한 타계 이후 가슴깊이 애도하는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어느덧 문재인을 보면 노무현이 생각할 정도로 두사람을 동일시하게 됐다. 여기에 촛불집회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는 적폐청산을 내건 시대적 코드와 운명처럼 만났다.

핵심 측근으로 ‘3철’이라고 불렸던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가 관심이다. 2012년 대선 때 ‘비선실세’로 지목돼 당 안팎에서 견제를 받았던 이들은 몸을 바쳐 선거를 도왔다.

민주당 선대위에서 비서실 부실장을 맡았던 양정철 전 비서관은 지난해 총선 뒤 문 대통령과 히말라야 트레킹에 동행할 만큼 최측근이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다듬고 올봄 출간한 대담집 출간도 기획하는 등 문 대통령의 복심 중 복심이다. 전해철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의 일원이라 경선 때 캠프를 직접 돕지는 않았지만 당과 문 대통령 쪽 사이에서 가교 구실을 해왔고 대선 마지막 날까지 열과 성을 다했다. 전 최고위원은 장관 하마평에도 오르고 있다.

반면 이번 선거기간 내내 부산에 머물며 밑바닥 표심을 훑었던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지난 10일 출국했다. 그는 비행기를 타기 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 “제가 존경하는 ‘노변’ ‘문변’ 두 분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만한 명예가 어디 있겠습니까. 올해 초 캠프에 참여하면서 비행기 표를 미리 예약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벗들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잠시 해외로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 정권이나 취임 초기에는 측근을 제대로 관리하겠다고 큰소리친다. 불행하게도 한 번도 약속이 지켜진 적이 없다. 대통령의 말이 측근 실세를 통해 전달되니 측근의 말은 곧 대통령의 육성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대통령과 독대하는 특정인의 호가호위를 막을 제동장치가 없다. 권력의 속성은 오직 명령에 따르기만 할 뿐 권력자에게 직접 진위여부를 물어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독대는 독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독대하는 순간 권력은 측근에게 몰린다. 독대를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사실만으로도 권력기관은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인다. 그게 권력의 생리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하나같이 쓸쓸한 퇴임을 하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이유는 딱 하나다. 다름 아닌 측근과 가족을 막지 못해서다.

측근들을 멀리하겠다고? 그건 한국의 현실과 정서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줄을 댄다. 실세로 소문난 이들이 공식적인 직함을 맡건 맡지 않건 국내에 거주하는 한 이를 막을 도리가 없다. 차라리 측근들에게 비행기 표를 끊어줘서 외국으로 보내라고 권하고 싶다. 해외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공부할 기회를 만들어주면 본인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비행기를 탄 이호철 같은 이가 더 나와야 한다. 벌써부터 노무현 정권 이후 10년 가까이 권력에 목마른 이들이 몰려 올 조짐이다. 문캠프에 관여한 교수만 1000명이 넘으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 김영삼 정권 창출에 큰 공을 세운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부동산 과대 보유 사실이 빌미가 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서 ‘토사구팽兎死拘烹’이라는 말을 했다.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없게 돼 삶아 먹는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동고동락해왔던 동지와 핵심지지층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용기다. 그것만 잘해도 내치의 절반은 성공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나쁜 남자’라는 누명을 감수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래서 늘 고독하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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