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공약 지킬 수 있을까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국민 100%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 “민생을 살려 중산층 비중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국민은 좌절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 그에게 ‘공약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은 약속에 예민해졌고, 문 대통령을 향한 기대치도 높기 때문이다.

▲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공약을 이행하기 어렵다. 이는 문 대통령을 압박하는 또다른 변수다.[사진=뉴시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가슴이 뜨겁다. 신명을 바쳐 일하겠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의 일부다. 취임식은 당선의 기쁨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자리였고, 최소한의 의례로 끝냈다. ‘일하러 왔으니 일 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일자리위원회 설치하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실을 만들라.’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처음으로 했던 업무지시다. 대선 기간 강조해왔던 1호 공약을 곧바로 추진하겠다는 거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한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대한민국 경제는 지금 벼랑에 몰려 있다.

청년실업률(15~29세)은 4월 기준으로 11.2%로 역대 최고치(통계청)다. 실제 청년실업률은 34%를 넘는다는 조사결과(20 16년 현대경제연구원)도 있다. 대ㆍ중소기업 임금격차는 62.9%(고용노동부ㆍ2016년 임금총액 기준)에 달한다. 자영업 생존율은 30.8%(국세청ㆍ창업과 폐업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 특히 대출금리가 0.1% 포인트 오를 때 자영업 폐업위험도는 7〜10.6 % 상승(한국은행)했다.

1344조원(한국은행ㆍ2016년 기준)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 된 지 오래다. 올해 1월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20년 전 일본의 부동산버블 때보다 위험한 상황”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기업도 죽을 맛이다. 2016년 수출액은 전년보다 5.9% 감소(산업통상자원부)했다. 자동차ㆍ선박ㆍ석유제품 등 주요 산업의 수출이 죄다 줄었다. 여기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 HAAD) 배치와 통상외교를 둘러싼 미국ㆍ중국발 외부변수까지 있다. 이런 상황들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거다.

눈여겨볼 점은 문 대통령이 추구하는 해법은 그간 역대 정부가 해왔던 방향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각종 규제완화, 통상개방,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표방했다. 정부 역할을 줄이고 민간기업의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정책들이다.

반면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 확대, 복지 확대, 정부의 시장 개입, 노동권 강화 등을 강조한다. 정부 역할이 커지는 만큼 재정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재정지출 증가율을 현재 연평균 3.5% 수준에서 7%로 2배 늘리기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제정책의 큰 틀을 바꾸려 한다는 얘기다.

재원 없으면 공허해질 공약들

일단 시장의 반응은 좋다. 대선 이후 코스피는 연일 사상최고가를 기록 중이다. 11일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26.25포인트(1.16%) 오른 2296.37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4차 산업혁명 육성, 친환경 에너지 확대 정책의 수혜 업종들이 오름세를 보였다.

하지만 과연 장밋빛 전망만 있을까. 아니다.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큰 걸림돌이 있어서다. 바로 재원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들은 보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정책들이 꽤 많다. ‘공공부문 중심 일자리 81만개 창출(5년간 21조원)’ ‘청년구직촉진수당(연 4500억원)’ ‘출산수당(연 4800억원)’ ‘기초연금 확대(연 4조4000억원)’ ‘아동수당 도입(연 2조600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이 추산한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총액만 해도 5년간 약 178조원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 가계부에서 밝힌 필요 재원 총액보다 43조원이나 더 많다. 어떻게 이 많은 돈을 끌어 모을 것인지가 문 대통령 경제정책의 핵심인 셈이다.

문제는 재원마련 방안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선 기간, 경쟁후보들로부터 재원마련 방안을 놓고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인 방향성은 있다. ‘재정개혁(112조원)과 세입개혁(77조원)’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방향성일 뿐이다. 389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공약집에서 재원마련 방안 페이지는 고작 2페이지이고, 수치상으로 기재된 내용은 1페이지에 불과하다.

어디서 어떻게 얼마를 마련하겠다는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다양한 방법론을 고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예컨대 단순히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하겠다는 계획만 내놓을 게 아니라 예상되는 반발을 어떻게 잠재우고 설득할 것인지가 함께 나와야 한다는 거다. 복지를 하겠다면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공약을 내팽개쳐버린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재원 대책이 文 평가기준 될 것

특히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기업 부채 등을 제외한 순수 정부부채만 올해 기준으로 68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0.4%에 달한다. 아무리 선진국 대비 부채 수준이 낮은 편에 속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무작정 정부부채를 늘릴 수는 없다. 차기 정부에도 부담을 줄 수 있고, 정치공세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채발행은 최후의 보루다.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보에 국민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재원마련 대책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한다면 큰 기대만큼 국민의 실망도 커질 것이다. 그러면 정책 추진력도 약해진다. 국민은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이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기대치는 ‘박근혜 정부보다 나은 정부’가 아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 구절처럼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를 원한다. 문 대통령이 5년간 곱씹어야 할 말이다.
김정덕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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