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매트릭스(Matrix) ❶

워쇼스키 남매 (Lana Wachowski•Lilly Wachowski) 감독의 영화 ‘매트릭스(1999년)’는 2199년 고도의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그린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허무맹랑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매트릭스가 선풍적인 인기와 흥행을 몰고 온 것은 ‘이미 시작된 미래’를 그리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영화 ‘매트릭스’ 속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자궁’에 갇혀 인공지능(AIㆍArtificial Intelligence) 컴퓨터의 동력원으로 사용된다. 인공자궁 속에서 배태胚胎되는 모든 인간의 두뇌에는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프로그램이 입력된다.

영화 제목인 ‘매트릭스(Matrix)’에는 ‘모체母體’나 ‘자궁’의 의미도 있고 수학적 ‘행렬’의 의미도 있다. 이를테면 매트릭스는 인공자궁 속에서 기계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인간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특성이나 의지, 노력은 무의미하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흙수저로 살아갈 뿐이다. 개천에서 난 용은 희미한 전설일 뿐이다.

매트릭스의 뜻은 수식數式의 행렬처럼 이미 구조화된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매트릭스는 미래의 결과가 함수函數처럼 이미 결정된 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함수는 이미 식이 결정되어 있고 x에 값을 대입하면 y의 답이 나오는 구조다. y라는 결과는 x에 따라 항상 다르지만, 결국은 함수식의 틀에 갇혀 있는 한 운명처럼 이미 그 방향이 결정돼있다. 4차 산업혁명이 마치 인류의 구원자처럼 찬양되는 요즘 워쇼스키 남매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가상현실기술, 인공지능의 완성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dystopia)의 암담한 미래다.

영화의 대결 구도는 ‘운명론(fatalism)’과 ‘인간 의지론(voluntarism)’의 충돌이다.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인공지능에 의해 규정된 운명을 거부하고 인간의 의지로 그것을 뛰어넘으려 한다. 사회 양극화와 뛰어넘기 어려운 ‘유리 천장’은 영화 속 매트릭스가 설정해놓은 운명과도 같다. 우리 모두 그것을 뛰어넘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네오와 모피어스를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한다.

▲ 네오와 모피어스는 정해진 운명을 인간의 의지로 뛰어넘으려 한다.[사진=더스쿠프포토]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인 토마스 앤더슨(Thomas Anderson)은 퇴근 후에는 해커로 소위 ‘투잡(two job)’을 뛴다. 해커의 세계에서 그의 이름은 네오(Neo)인데, 이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Neo’와 ‘그(The One)’는 그 철자의 순서만 바꾼 애너그램(anagram)이다.

그의 본명인 토마스 앤더슨의 토마스는 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수의 손발과 옆구리의 못자국과 창에 찢긴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고서야 그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는 ‘의심 많은 토마스’에서 따왔다. ‘앤더슨(Anderson)’이라는 성姓은 본래 스웨덴 성으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싱거운 뜻을 갖고 있다. 결국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상상력도 빈곤하고 믿음도 없이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좇는 ‘보통 인간’이 모피어스를 만나 인류를 구원할 예언 속의 유일한 ‘그(The One)’로 거듭 난다.

저항군 지도자 모피어스(Morpheus)의 이름은 인간들의 꿈을 조정하며 모든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신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꿈을 꾸게 하고 결국 네오를 ‘ONE’으로 바꾼다. ‘Morp heus’의 어원은 ‘어둠’을 뜻하는 그리스어 ‘morphnos’다. 꿈은 어두운 밤에 꾸는 것처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꿈은 세상의 빛이 사라지고 암흑에 빠졌을 때 꾸게된다. 워쇼스키 남매 감독이 극중 인물의 작명作名 하나하나에 들인 공을 치하하고 싶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말한다. “너는 세상이 뭔가 잘못돼 있다고 느껴왔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네 마음 속에 가시처럼 박혀 너를 괴롭히고 있다.” 모피어스가 말하는 ‘무언가 잘못된 것’은 인류를 통제하는 가상현실 시스템인 매트릭스겠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일 수도 있다.

▲ 사회 양극화가 만들어낸 벽은 인간의 의지로 뛰어넘을수 없을 만큼 공고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치돼 버리기도한다. 혹은 어떤 초인(superman)이나 메시아 혹은 미륵彌勒이 홀연히 나타나 분명 무언가 잘못된 이 세상을 바로잡고 구원해주기를 꿈꾸기도 한다.

메시아 사상이나 니체의 ‘초인철학’ 혹은 우리 전통의 ‘미륵신앙’ 모두 이런 인간들의 소망의 산물이다. 메시아나 미륵 모두 인간들의 꿈의 산물이다. 인간들이 메시아나 미륵을 꿈꾸지 않는다면 ‘그(The One)’는 결코 오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꿈 꿀 때 ‘그’는 온다.

세상이 어지럽고 캄캄하다. 세상이 어둠에잠긴 시간은 꿈을 꿀 시간이다. 어둠에 잠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우리를 가둔 매트릭스를 벗어나는 꿈을 꿨다. 꿈에서 깨어 매트릭스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앨리스가 누볐던 ‘이상한나라’를 끝까지 꿈꾸기를 소망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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