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한미 FTA 씹는 이유

“끔찍한 협정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을 문다. 어떤 분야는 자신들에게 유리한데도 막말을 멈추지 않는다. 경제 파워를 무기로 한미 FTA를 ‘재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겠다는 게 지상 과제로 보일 정도다. 자! 이제 우리는 트럼프가 왜 그러는지 따져봐야 한다. “미국도 수혜를 입었다”는 반박논리로는 트럼프를 당해내기 어렵다. 대책이 필요하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한미 FTA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사진=뉴시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불평등 조약이다. 강대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2007년 6월 30일, 우리나라 여론은 극단으로 갈렸다. 한국과 미국이 FTA에 공식 서명하면서다. 엄청난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며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던 ‘한미 FTA 찬성파’가 있었다. 한쪽에선 ‘불평등 협상’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둘은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했고 한미 FTA는 용도폐기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다 2011년 극적으로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부활했다. 이듬해 2012년 3월 발효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영토가 넓어졌다.

그렇게 5년, 귀에 익숙한 주장이 다시 들린다. “한미 FTA는 끔찍한 협정이다. 우리는 공정한 협상을 원한다. 일방적인 협상은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국내 FTA 반대론자의 주장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한 목소리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미 FTA를 두고 “일자리 킬러” “무역적자 2배의 원인” “폐기ㆍ재협상”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막말에 가까운 트럼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미 FTA 재협상 요구는 일리가 있다. 어떤 협상이든 자유롭고 공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미 FTA는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만큼 공정하지 않은 협정일까.

통계를 보자.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상품 무역흑자 규모는 2011년 116억 달러에서 FTA가 발효된 2012년 152억 달러로 뛰었다. 이후 2013년 205억 달러, 2014년 250억 달러, 2015년 258억 달러, 2016년 233억 달러의 증가 추이를 보여 왔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 교역은 연평균 3.5%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미 교역은 1.7% 증가했다. 한미 FTA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FTA 발효 후 5년간 우리나라 전체 수출은 2.3% 감소했지만 대미 수출은 3.4% 증가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3.2%로, 2011년(2.6%)보다 0.6% 포인트 확대됐다. 세부 업종으로 따지면 성과를 두고 논박이 벌어질 순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분 좋은 성적표다.

트럼프의 볼멘소리에 숨은 뜻

하지만 이 통계는 트럼프의 주장이 ‘헛소리’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트럼프의 발언에 우리 정부가 발칵 뒤집힌 이유이기도 하다. 한미 FTA가 우리 수출 실적의 버팀목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손해만 본 건 아니다. 지난해 미국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10.6%로, 한ㆍ미 FTA 발효 전인 2011년(8.5%)에 비해 2.1% 포인트나 상승했다. 서비스수지에서는 미국이 오히려 흑자를 냈다. 지적재산권 사용료 지급 등이 증가한 덕으로 분석된다. 2012~2015년 미국은 서비스수지에서 한국에 연평균 12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직접 투자도 늘었다.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액은 지난 5년간 총 370억 달러로 FTA 발효 이전 5년간(2007~2011년 231억 달러)에 비해 60%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한對韓 투자액도 총 202억 달러로 발효 전에 비해 112% 늘었다.

그럼에도 트럼트 대통령은 ‘막말’을 접지 않고 있다. 눈에 훤히 보이는 긍정적인 숫자를 보면서도 볼멘소리를 입에 담는다. 왜 일까. 트럼프가 한미 FTA를 도마에 올려놓고 ‘통상압박’을 계속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한미 FTA의 긍정적인 효과는 미국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는 한미 FTA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과거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한 협정인데다 실제로 상품무역수지에서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어서다. 상품무역 기준으로 미국 10대 교역국 중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는 국가는 캐나다와 멕시코, 우리나라뿐이다. 그만큼 한미 FTA의 영향력이 크다는 거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도 우리를 향해 사소하거나 비합리적인 주장을 언제든 할 것 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건 사실 의미가 없다. 트럼프가 노리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는 힘이 지배한다. 트럼프의 말이 맞든 틀리든 우리는 ‘한미 FTA’를 재협상 테이블에 올려놔야 할지 모른다. 세계경제의 중심축인 미국이 우기는 데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대비책 못 세우면 큰코다칠 수도

익명을 원한 국제금융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상품무역수지와 서비스수지를 합산한 교역수지(2015년 117억 달러)를 보면, 우리나라가 이득을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봤을 때, 이를 분명히 걸고 넘어갈 것이다. 가령 한국이 수혜를 입고 있는 교역수지를 근거로 법률이나 의료 시장처럼 미국에 유리한 산업 개방폭을 넓혀달라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의 재협상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우리로선 실失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비책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적 득실 계산이 이해관계를 압도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는 수세적인 입장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신 4차 산업혁명 등 과거 FTA를 체결할 당시와 바뀐 시대상을 강조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비책을 빨리 만들지 않으면 소도 잃고 외양간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