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흘린 악어의 눈물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건설업계가 4대강 입찰 담합에 연루돼 관급공사 입찰참여가 제한돼 있던 2015년, 광복절 특사로 면죄부를 받고 출범시킨 사회공헌재단이다. 건설업계는 출연금만 2000억원이라면서 목에 힘을 줬지만 현재 출연금 총액은 고작 47억원. 더구나 운영까지 엉망이다. 대국민 약속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 2015년 건설사 CEO들은 입찰 담합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공익재단을 만들어 사회공헌활동을 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고 지킬 생각도 없다.[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사업’ 정책감사를 지시했기 때문일까. 건설업계가 ‘좌불안석’이다. 4대강 사업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입찰 담합으로 이득을 봤던 건설업계에 불똥이 튀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H건설사 관계자는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4대강 사업 과정에서 담합한 건설사들은 2015년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그 이후엔 입찰 담합이 적발되지도 않았다. 건설업계도 노력한 거다. 적발된 건에 대해선 과징금도 냈고 벌도 받을 만큼 받았다. 불똥이 튀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상당 부분 틀렸다. 건설사의 주장대로 공정위가 ‘지나간 사실’을 들춰낸 건 맞지만 그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키진 않았다. 올해 4월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입찰담합건도 2015년 이전의 일이다.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2015년 건설업계는 죽을 맛이었다. 대부분의 대형건설사들이 두차례나 4대강 사업 입찰 담합 비리(2012년 6월 1차 턴키 담합 적발, 2014년 11월 2차 턴키 담합 적발)에 연루돼 관급공사 입찰 참여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공사의 약 35%를 차지하는 관급공사를 못 받으면 손가락만 빨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시 박근혜 정부는 건설사에 면죄부를 줬다. ‘광복절 특사’를 통해서였다. 67개 건설사의 입찰 참여 제한이 모두 풀렸고, 수십명의 건설업계 임직원들도 풀려났다. 검찰에 기소돼 있던 건설사들은 사면됐다.

대신 건설업계는 그만한 대가를 내놓기로 했다. 2015년 8월 19일 건설업계 CEO들은 한자리에 모여 “다시는 담합 비리를 저지르지 않겠다”면서 국민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2000억원의 출연금을 갹출해 사회공헌활동에 전념하는 공익재단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결과, 그해 10월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지난해 9월까지 모인 출연금은 고작 47억원. 애초부터 출연금 모금에 관한 계획이나 규정도 없었다. 재단 관계자는 “최근 문제가 된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의 모금처럼 보일까봐 조심스럽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고개를 조아리면서 만든 공익재단을 국정농단세력의 비밀결사체였던 미르재단ㆍK스포츠재단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출연금의 사용 내역을 보면 말문이 아예 막힌다. 주거환경 개선, 공공시설 개선, 일자리 창출, 재난ㆍ재해긴급복구지원 등 목적은 다양하지만 어떤 사업에 쓰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일자리 창출 지원에 쓴다면서 대형 언론사에 2000여만원을 지급했다.

D건설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더이상 입찰 담합도 안 나오지 않는가. 재단 출연금 건은 2년 전의 일이고, 대한건설협회가 주도했던 일이다. 다른 건설사들도 안 내는 걸 우리가 왜 내야 하는가.” 고개를 조아렸던 2015년 그때, 그들은 진짜 사죄하지 않았다. 아니길 바랐지만 ‘악어의 눈물’이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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