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문 두드린 국민연금

제1ㆍ2금융권에서 외면 받은 약한 서민들이 문을 두드리는 곳이 있다. 대부업체다. 하지만 이곳에서 돈을 빌린다고 살림살이가 쉬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워낙 금리가 높은 탓에 이자에 짓눌리기 십상이다. 대부업체의 실적이 좋아진다는 건 서민들의 불행이 커졌다는 거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가. 우리나라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서민의 불행’에 돈을 걸었다.

▲ 국민연금이 대부업체 리드코프에 지분 투자를 했다. '서민의 불행'에 돈을 걸었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기금을 관리ㆍ운용하는 경우에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위해 투자대상과 관련한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국민연금법에 명시된 기금 운영 원칙 중 하나다. 투자를 할 때 기업의 수익만 보는 게 아니라 공공성도 고려한다는 거다. 국민연금이 우리나라 2200만 가입자의 노후자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행동강령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공공성에 따라 투자를 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4월 공시된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내용을 보자. 국민연금은 코스닥 상장사 리드코프(대부업체)의 주식 135만주(5.08%)를 사들였다. 10월 4.06%로 비중을 줄였지만 일정한 지분은 유지했다.

국민연금과 리드코프의 지분 관계를 좀 더 뜯어보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단일 주체로 이 회사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기업은 KB자산운용. KB자산운용은 KB금융지주의 100% 자회사인데, KB금융지주의 최대주주가 바로 국민연금이다. KB자산운용은 2013년 1월 리드코프 주식 11.8%를 사들인 후 여러 차례 지분을 추가해 올해 1분기 기준 19.99%까지 끌어올렸다.

표면적으론 문제 있는 투자는 아니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투자에 전체 기금 중 18.5%를 투자하고 있다. 리드코프에 투자한 건 그중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리드코프가 대부업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드코프는 국내 대부업체 최초의 상장사다.

물론 국민연금 측은 “리드코프는 석유 소매업체로 상장했기 때문에 대부업에 투자한 게 아니다”고 반론을 편다. 틀린 항변은 아니다. 석유소매업체로 상장한 리드코프는 정관변경 및 신사업 추가를 통해 대부업을 시작했다. ‘증시에서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은 은행뿐(은행법)’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 우회상장을 꾀한 것이다.

문제는 리드코프의 실적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거다. 지난해 기준 리드코프의 사업 비중을 보면 석유 소매업은 전체 매출의 46.6% 수준인 반면 소비자 금융업은 53.4%를 차지하고 있다. 수익 구조를 따져보면 대부업 비중이 더 높아진다. 석유 소매업에서 13억4000만원의 적자를 봤지만 소매 금융업에서는 509억9000만원의 이익을 냈다.

리드코프의 기반 역시 대부업이다. 2011년 앤알캐피탈대부를 인수하고, 이듬해 아이루리아대부를 인수하면서 대부업을 키웠다. 2013년까지만 해도 자산순위 5위 대부업체였지만 지난해 6650억원을 기록하며 3위로 뛰어올랐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이다. 대부업체는 약한 서민을 담보로 돈을 굴리는 곳이다. 1ㆍ2금융권에서 외면 받는 저신용ㆍ취약계층이 늘어야 실적이 증가한다. 대부업체에 투자한 국민연금을 두고 ‘서민의 불행에 베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부업계에는 그림자가 많다. 13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과잉 시대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게 ‘저신용ㆍ취약 계층의 붕괴’다. 이들이 주로 손을 벌리는 곳이 대부업체다.

고금리 대출 증가에 웃는 국민연금

그렇지 않아도 소득이 적은 이들이 고금리를 감당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미 한계가구(가처분소득에 대한 원리금상환액 비중이 40% 이상이고,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은 가구)는 2015년 158만3000가구에서 지난해 181만5000가구로 14.7% 늘어난 상태다.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이 리드코프 투자에 나선 지난해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관리하면서 1금융권 대출이 깐깐해졌던 시기”라면서 “풍선효과로 취약계층 대부분이 대부업체로 몰렸고 실제로 이들의 실적도 증가했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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