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이리언:커버넌트’ 後日譚

▲ 영화 ‘에이리언:커버넌트’ 의 한장면.[사진=더스쿠프 포토]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SF 호러물 ‘에이리언:커버넌트’가 던진 철학적 질문이다. 어렵게 느껴지는가. 답을 찾기 위해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전작들을 한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대순으로 나열해 보자.

2089년 : 프로메테우스(2012년 개봉)
2104년 : 에이리언:커버넌트(2017년 개봉)
2122년 : 에이리언(1979년 개봉)

올해 개봉한 ‘에이리언:커버넌트’는 1979년 만들어진 에이리언의 프리퀄(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이자 2012년작 프로메테우스의 이후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 사이의 이야기는 2019년 개봉될 예정이다.

‘에이리언:커버넌트’는 ‘식민지 행성 개척’이라는 특별한 임무를 띤 ‘커버넌트’호號가 끌고 간다. 비행선의 목적은 오직 하나, 식민지 개척이다. 지구 환경과 비슷한 행성을 찾아 인류가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커버넌트호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모두 ‘커플’인 이유다.

커버넌트호는 미지의 행성으로부터 발생한 신호를 감지하고 그곳을 탐사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곳이 15세기 콜럼버스가 찾은 신대륙 같을 거라는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진다. 그곳은 되레 어둡고 위험한 세계로 판명되고, 외계 생명체의 공격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건 탈출 장면이 스크린을 어지럽힌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목도할 수 있는 건 하나, ‘나약한 인간’이다. 엄청난 지능을 무기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지만 외계 생명체 앞에선 미물에 불과하다. 저항은커녕 외계 생명체의 숙주宿主가 되는 걸 막아내지 못한다. 인간은 곧 미물, 에어리언:커버넌트를 관통하는 주제다. 그런데 이 철학, 어디서 본 것 같다. 생각해보니, 전작 ‘프로메테우스’와 철학적 배경이 같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인간은 자신과 닮은 로봇 ‘데이빗’을 만든다. 하지만 데이빗은 자신을 만든 인간을 파멸시켜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인간은 인간의 피조물에 공격 당하고, 끝내 파멸한다. 인간은 창조를 할 자격이 없는 미물이라는 ‘역설적 철학관’이다.

언젠가부터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됐다. 세포를 만들고, 인공지능을 창조한다. 하지만 인간은 과연 지배자일까. 그렇다면 아직도 자연을 두려워하고, 아직도 바이러스를 해결하지 못한 인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간의 다른 얼굴은 ‘나약한 지배자’가 아닐까. 프로메테우스를 잇는 에이리언:커버넌트. 우울한 SF 영화이지만 음미할 만한 철학이 많다.
권세령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christin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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