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순응 언제까지…

최근 SK와 롯데의 일부 계열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정규직 전환이 이렇게 쉬운 일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의 성장정책에 발을 맞추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언제까지 손해를 감수하고 정부 정책에 스탠스를 맞출지는 알 수 없다.

▲ 소득주도 성장의 성과가 불확실해지면 재계의 반발이 커질지도 모른다.[사진=뉴시스]
“올 하반기 중으로 ‘대기업 비정규직 상한제’ 도입을 위한 대대적인 (기업)실태조사에 나설 것이다.” 최근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밝힌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이다. 일자리를 통한 소득불균형 해소는 소득주도 성장의 주요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홍장표 부경대(경제학)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서는 “근로ㆍ생활소득 증진, 자본소득세 강화, 공정한 산업생태계 조성, 일자리 창출, 고용의 질 개선” 등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ㆍ경제정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기업의 발등에 떨어진 ‘대기업 비정규직 상한제’를 비롯, ‘비정규직 근무여건 개선’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의 질 개선에 속한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근로ㆍ생활소득 증진, ‘사내유보금 과세’ ‘법인세 인상’은 자본소득세 강화, ‘하도급거래 공정화’ ‘성과ㆍ이익공유제 개선’은 공정한 산업생태계 조성에 속한다.

이 정책들은 공통점이 있다. 기업의 곳간을 열거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라는 점이다. 기업으로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각종 전제조건들이 기업 경영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재계는 표면적으론 덤덤하다. 날선 주장이 간혹 나오지만 집단적인 반발은 거의 없다.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될 위기에 몰릴 때마다 적극적인 의견을 피력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이유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정경유착이 드러났고, 그게 정권교체의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반대 목소리를 높일 만한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구심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해체론에 직면해 있고,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힘은 예년만 못하다.

‘문재인 정부가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다면 기업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작업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SK, 롯데 등 정경유착 고리가 컸던 기업들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발맞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서둘러 발표하기도 했다. 재계는 연쇄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잡음이 나오거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혹은 기업 이익이 크게 줄어든다면 숨죽였던 반발이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구나 소득주도 성장은 효과를 내는 데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재계를 떠안고 가든지, 소득을 확실하게 높여 국민을 등에 업고 가든지 정부의 확실한 스탠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