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추경의 성공 조건

▲ 문재인 정부는 ‘공공 일자리 늘리기’가 핵심인 이번 추경이 초래할 후유증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야당들의 반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사진=뉴시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첫 당정협의를 갖고 10조~11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1호 업무지시로 설치된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새 정부가 본격적인 일자리 늘리기 드라이브에 나선 모습이다.

추경에는 공공 부문 일자리 채용과 중소기업 임금 보조 확대, 육아휴직 급여 인상, ‘삼세번 재기지원 펀드’ 도입 예산 등이 담길 예정이다. 재원은 초과 세수 8조~9조원과 세계잉여금, 기금 등으로 마련된다. 더 걷힐 세금으로 마련하는 것이라서 국채 발행 등 빚은 내지 않아도 된다. 전임 박근혜 정부가 세수 추계를 잘못했든지, 올해 예산을 너무 보수적으로 편성했든지 둘 중 하나겠지만 어쨌든 문재인 정부로선 운이 좋은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추경안을 6월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해 하반기에 곧바로 집행할 태세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국회로 가서 추경안을 설명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당들이 일제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야당들의 반대 논리는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들의 반대 목소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국가재정법이 규정한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ㆍ재해, 남북관계 등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와 같은 추경 편성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떠나 공공 일자리 늘리기가 핵심인 추경이 초래할 후유증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계획대로 공무원 1만2000명을 추가 채용하면 이들이 현 정부 5년 동안 근무하고 그만두는 게 아니다. 이들이 정년까지 근무하면 차기 정부 30년 동안 공무원 인건비라는 경직성 경비 부담을 안아야 한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로선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치밀한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국민 안전과 복지 등을 위해 긴요한 인력부터 단계적으로 늘려가야 할 것이다. 그에 필요한 예산도 급히 편성하는 이번 추경보다 본예산에 반영하는 것이 정석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추경 규모 10조원을 의식해 10조~11조원으로 미리 정해 놓고 이것저것 사업을 끼워 넣는 식이어선 안 된다. 나름 성과가 예상되는 사업들 중심으로 추경의 사용처를 정해 나가야지, 총액을 미리 정해 놓고 부처에 나눠주는 식으로 급조하면 부실 중복 예산안으로 짜이기 십상이다. 이러다간 올해 안에 집행도 못한 채 막판 시한에 몰려 엉뚱한 데로 새어나가는 것도 있을 것이다.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굳이 10조원이란 규모에 연연하지 말라. 일자리란 게 정부가 다그친다고 공장 기계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필요한 데를 찾아 정밀하게 마련하지 않고 엉성하게 짜인 예산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메르스 사태와 가뭄을 이유로 11조원 규모 추경을 편성했으나 용처를 제대로 찾지 못해 5조원을 이듬해로 이월시켰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정작 중요한 나라살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면 취업난에 몰린 청년들을 두번 울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추경은 사업내용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사상 최고인 청년실업률이 보여주듯 일자리 문제 해결은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다. 정부는 전체 규모에 연연하지 말고 하반기에 집행해 성과를 낼 만한 사업들 중심으로 알찬 추경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추경의 용처가 분명하고 집행 방식이 투명해야 야당을 설득할 수 있다.

야당들도 무조건 보이콧할 게 아니라 추경안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수정 보완을 요구하거나 거부하는 식으로 심의해야 마땅하다. 반대하는 시늉을 하다가 심의에 참여하는 의원의 지역구 토건사업이나 정당의 민원 사업용 예산과 같은 반대급부를 얻고선 못 이기는 척 넘기는 행태 또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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