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정의와 개혁은 절차가 완성한다
[윤영걸의 有口有言] 정의와 개혁은 절차가 완성한다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42
  • 승인 2017.06.0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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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개혁 성공하려면…

▲ 혁명보다 개혁이 어려운 건 기존 제도의 틀 안에서 바꿔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절차 민주주의'를 중시해야 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초 하나회 숙청,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등 개혁을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였다. 배짱과 결단력도 있었지만 미리 준비를 꼼꼼히 했다. 1993년 취임하자마자 군 지휘관을 불러 그들의 등을 두드리면서 안심시킨 뒤에 전격적으로 하나회의 핵심인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경질했다. 취임 열하루 만이었다.

취임 첫해 김영삼 대통령은 지지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크게 공감을 받았다. 군부 쿠데타설이 끊임없이 나돌던 당시에는 하나회 숙청이 바로 적폐청산이었다. 촛불집회와 탄핵정국이 잉태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의 분노에너지를 연료로 산업화 이후 60년 가까이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인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일거에 없애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검찰이나 국정원 개혁, 선거제도나 정당체계 개혁, 교육 문제 해결을 국민적 동의 하에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취임 초 100일 이내에 개혁반대세력의 기선을 제압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겸손하고 진솔한 모습의 스타일정치는 대중정치시대의 개막을 알려주는 행보로 각인됐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3가지 딜레마에 둘러싸여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후계자이면서도 노무현을 극복해야 하는 딜레마다. 노 전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열정은 넘쳤지만 반대파로부터 협조를 얻는데 실패했다. 상대방을 거칠게 몰아붙여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너무 뚜렷했다. 격정과 분노의 투사였던 노무현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썼다. 문 대통령은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논리와 감성을 가진 국가 CEO가 돼야 한다.

두번째 딜레마는 문 대통령을 따르는 지지자들의 뜻을 거슬러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은 민노총과 전교조 등 이른바 귀족노조다. 개혁은 기득권의 양보가 선행돼야 한다. 높은 연봉을 받는 정규직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단체의 양보가 없다면 개혁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세번째 딜레마는 ‘적폐세력’과 손잡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거다. 문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41.1%를 득표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석은 119석에 불과하다. 국회선진화법 하에서 법안을 통과하려면 180석이 넘어야 하는데 과반인 150석에도 훨씬 못 미친다. ‘적과의 동침’은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절차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야당에 발목을 잡히지 않는다. 청와대는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을 임명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언급했다. 자칫 하명下命 수사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또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에 대한 4번째 감사지시는 독립기관인 감사원을 무리하게 압력한다는 인상을 줄 소지가 있다. 궁극의 정의는 정의감이 아닌 절차에 의해 완성된다. 취임 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나중에 반대파의 빌미가 될 수 있다.

5월 25일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을 언급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게 되면 산업현장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발언이 문제가 됐다. 중소기업이 주요 회원사인 경제단체로서는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말이다. 당장 다음날 사달이 났다. 문 대통령은 “경총도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 중 한축”이라며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일제히 포문을 열어 가세했다. 취임 초 재벌에 대한 기선제압을 하려는 뜻은 이해할 수 있지만, 소통은 상대방의 거슬리는 말까지 경청하는 것이다. 호통을 치기보다는 청와대로 불러 격의 없이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재계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 정부의 힘만으로는 일자리 만들기와 경제 살리기는 쉽지 않다.

흔히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혁명은 힘을 바탕으로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면 되지만 개혁은 기존 제도와 틀 속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토론보다는 삿대질이 우선이고, 남의 의견을 포용하는데 인색한 우리 정서로 볼 때 개혁은 정말 어려운 과제다. 자칫 섣부른 인적청산이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보복은 촛불과 태극기집회의 거리투쟁을 재연할 수 있다. 개혁은 온 국민이 고통분담을 통해 ‘더 높은 곳을 향해’ 손잡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지 ‘미운 놈 손봐주기’나 여론몰이가 아니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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