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인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영화‘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장면들.[사진=더스쿠프 포토]

25만 마리. 2015년 기준 서울시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의 숫자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서울시가 단 12곳만을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년 2만~3만 마리의 고양이가 버려진다고 하니 길고양의 정확한 수는 더욱 알기 어려워진다. 그사이 길고양이는 불편한 존재가 돼버렸다. 밤새 울어 불쾌감을 주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훼손하는 일도 많다. 귀여운 고양이가 어느 순간 골칫덩어리로 변해버렸다는 얘기다. 과연 길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영화 ‘나는 길고양이로소이다’는 이런 물음에 답을 찾아간다.

“우리의 삶은 수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그 어디에도 편히 쉴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차가운 도시의 겨울 밤, 어둡고 좁은 뒷골목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나는 길고양이입니다”는 해설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길고양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로드 무비다. 

영화를 연출한 조은성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든 계기는 2013년 일어난 ‘압구정동 고양이 사건’이다. 당시 추위를 피해 아파트 지하실에 몸을 숨긴 고양이 수십마리가 바싹 마른 사체로 발견된 일이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지하실에 숨어든 길고양이를 쫓아낸다는 명문으로 지하실의 모든 창문가 통로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조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오로지 인간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현재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며 “처음부터 길고양이의 시점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영화가 사람이 아닌 길고양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해 관객이 길고양이들이 처한 현실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행복한 공생 해답을 찾기 위해 이웃나라 대만과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의 고양이 섬으로 유명한 아이노시마相島와 에노시마江島를 찾아 길고양이가 골칫덩어리가 아닌 복덩어리가 된 이유를 전한다. 실제로 아이노시마는 CNN이 선정한 ‘세계 6대 고양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 284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에 사람보다 많은 수의 고양이가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대만의 ‘고양이 마을’로 불리는 ‘허우통’의 사례도 비슷하다. 이 마을은 대만 최대의 석탄 생산지였지만 석유가 보급화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살지 않는 빈 집에 고양이들이 하나둘 씩 터를 잡기 시작했고 마을 이장의 부인이 고양이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그 후 이 고양이들이 사는 마을이 알려지면서 한해 50만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영화는 이처럼 한국ㆍ대만ㆍ일본 길고양의 각기 다른 모습을 집중탐구하며 길고양이와 사람의 행복한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나는 길고양이로소이다’를 통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을 존중하는 것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길 추천한다.
손구혜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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