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LG그룹 부회장

세인들은 흔히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동정動靜에 예민하다. 그들의 움직임이 세상을 바꾸거나 돈의 흐름을 갈라놓는가 하면 심지어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즘 구본준(66) LG그룹 부회장의 동정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는 걸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 구본준 부회장은 ‘독한 경영자’로 불린다. 사진은 2014년 LG챔피언스 파크 준공식에 참석한 구 부회장(왼쪽).[사진=뉴시스]
올 들어 5월까지 구본준 부회장은 LG그룹 운영과 관련해 두차례 큰 회의를 주재했다. 지난 1월 18~19일 열린 ‘글로벌 CEO 전략회의(GCC)’와 5월 25일 개최된 임원세미나가 그것이다. 매년 초 열리는 GCC는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및 사업본부장(사장급) 40여명이 모여 한해 경영방침과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대개 분기마다 열리는 임원세미나는 그룹 계열사 전문경영인을 포함 300~400명이 참석해 그룹 현안을 논의하고 신사업 등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 모임이다.

이들 두 회의를 통해 LG그룹 전체 현안이나 대응 메시지가 외부로 드러난다. 올 들어 두 회의를 모두 주재한 구 부회장은 GCC에서는 더욱 체계화된 사업구조 고도화와 제대로 된 경영혁신 활동을 요구했다. 임원세미나에서는 요즘 재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들고 나왔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확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쟁 우위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본무(72) 회장이 주재했던 회의를 그가 연거푸 맡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그의 동정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경영권 장자 승계원칙을 고수해왔다. 지금까지 아무런 잡음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오너 4세 장자인 구광모(39) 상무의 총수 승계는 시기만 남았지 기정사실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구 부회장의 요즘 동정을 보면 그동안 잠복해 있던 소위 ‘징검다리 총수 승계론’이 부활하는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구 상무의 나이가 아직 어리고 경력도 적으니 삼촌인 구 부회장이 중간에 한번 회장을 맡는 수순에 들어간 거라는 얘기다.

LG그룹 측은 “회의 주재와 총수 승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룹 내부 인사들조차 “사람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오너 회장단의 동정을 주시하고 있다. 사실 재계에 ‘구본준 징검다리 총수 승계론’이 흘러나온 지는 꽤 됐다. 현실적으로 4세 장자 승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설득력을 얻어온 논리다. 다만, 올 들어 구 부회장이 동정의 폭을 넓히고 회장급 메시지를 자주 발하다보니 그 얘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을 뿐이다.

불과 반년 전인 지난 연말 LG그룹이 정기인사를 발표하면서 밝힌 내용을 되돌아보면 구 부회장의 최근 그룹 회의 주재는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 그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일 LG그룹은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그룹 최고 사령탑인 구 회장과 구 부회장의 역할에 일부 변화가 있다고 발표했다. 구 부회장의 역할 확대가 포인트다.

기존에 맡았던 신사업뿐만 아니라 그룹 전반의 주력 사업 경쟁력 향상과 수익성 제고 역할까지 맡겼다. 또 전략보고회의나 경영회의체도 주관키로 했다. LG그룹은 당시 결정이 구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전장부품사업과 에너지솔루션 등 신성장사업의 효율적인 성과창출을 위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 주력계열사 CEO를 두루 거친 구 부회장의 경험과 추진력이 필요했다는 설명이었다.

구 부회장으로 하여금 ‘신성장사업추진단장’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룹 운영 전반을 살피고, 주요 경영회의체를 주관하며 이끌도록 한 것이다. 구 회장은 지주회사 ㈜LG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역할을 그대로 맡아 그룹의 주요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 및 최고경영진 인사 등 큰 틀에서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했다. 승진이 예상됐던 구 상무가 승진자 명단에서 빠진 것도 징검다리 승계론에 힘을 보태줬다.

오너 4세로 경영수업 중인 구 상무의 친부는 구본능(68) 희성그룹 회장이다. 희성그룹은 오너 2세 구자경(92) 명예회장이 장자 구본무에게 LG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차남 구본능에게 맡겨 독립시킨 그룹이다. 구 명예회장은 4남 2녀를 뒀다. 구 부회장은 3남이다. 4남 구본식(60) 희성그룹 부회장도 차남 구본능과 함께 희성그룹에 몸담고 있다. 2005년 LS그룹(회장 구자열)과 GS그룹(회장 허창수) 등을 분가시키고 남은 모태 LG그룹은 결국 3세 장자 구본무와 3남 구본준이 이끄는 모양새를 갖췄다.

4대 회장 승계 구도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또 있다. 구본무 회장이 딸만 둘이 있어 회장을 잇기 위해 조카 구광모를 양자로 들였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인간사를 기준으로 보면 구본무~구본준~구광모 사이에 승계를 두고 미묘한 입장차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구씨, 허씨 가문이 오랫동안 동업했던 옛 LG그룹은 분가를 그렇게 해주고 나서도 창업 70년째인 올해 재계 4위를 유지하고 있다. 구 회장은 아버지 구 명예회장이 70세 되던 해인 1995년 50세 때 회장에 올라 2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72세로 LG그룹이 장자 승계 시 묵시적으로 적용해온 소위 ‘70세 룰’을 벗어나고 있다. 구 상무가 50세 때 회장 승계를 하려면 아직 11년은 남았다. 그래서 구본준 징검다리 승계론이 나왔던 것이다. 재계는 구 상무가 50세 전에 총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구 부회장은 34세 때인 1985년 금성반도체 부장으로 입사해 66세인 지금까지 32년간 경영일선을 지켰다. 오너 2인자로서 금성반도체, 금성사, LG전자, LG화학, LG필립스LCD, LG상사 등 주요 계열사 임원과 CEO를 두루 맡으며 경영 일선을 챙겼다. 그가 계열사 CEO 자리를 떠나 공식적으로 그룹 전체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다. 당시엔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이란 구체적인 직책을 맡았던 데 비해 올해엔 그룹 부회장이란 상당히 포괄적인 직책을 맡았다는 점이 차이다.

계열사 CEO 시절 그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제조업의 기초인 기술력과 제품에 관심이 많고, 시장 선도를 향한 열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연구ㆍ개발(R&D) 투자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주요 계열사 곳곳에 큰 족적을 남겼다. 결정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은 2010년 위기에 처한 LG전자 오너 구원투수로 투입됐던 때의 일이다.

5년 6개월 동안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체질을 바꾸려 했던 노력은 인정되지만 스마트폰사업과 TV사업의 부진을 되돌려 놓진 못했다는 평가가 요지다. 당시 그는 “독한 조직문화를 LG전자의 기업 DNA로 삼겠다”며 체질개선을 밀어붙였다. 

그는 인화人和를 중시하고 보수적인 LG그룹에서 보기 드물게 ‘독하다’는 얘기를 듣는 최고위 경영자다. 오너라서 그런지 하고 싶은 일이나 말에 비교적 거침없는 직선적인 스타일로도 알려져 있다. 보스 기질도 있다는 얘길 듣는 그는 계산통계학과 출신답게 수치에도 밝다고 한다. 2008년부터 LG트윈스 프로야구단 구단주를 맡고 있는 야구광이기도 하다. 그가 형 구본무 회장과 조카 구광모 상무 사이의 4세 승계 과정에서 드러날 과도기를 어떤 역할을 통해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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