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 소비자 활짝 웃다

▲ 대다수 소비자는 본인이 사용하는 데이터보다 많은 양의 요금제를 선택한다. 혹여 초과 사용했을 때 요금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사진=뉴시스]
75.3%. 통신요금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소비자의 비율이다. 아마 식음료였다면 난리났을 것이다. 까다롭고 가격에 민감한 한국 소비자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그런데 통신요금은 어쩌질 못한다. 원가를 모르니, 소비자들도 냉가슴만 앓을 뿐이다. 통신요금 원가가 공개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봤다.

유통회사에서 영업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재선(가명)씨는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통신요금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 마땅히 해결할 방책이 없어서다. 김씨는 업무 특성상 통화할 일이 많아 음성통화 무제한은 필수 요건이다.

여기에 잦은 미팅으로 근무시간 중 상당 부분을 대중교통 안에서 보낸다. 그런 그에게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인터넷 콘텐트는 하루 중 유일한 즐거움이다. 그래서인지 데이터 사용량도 적지 않은 편이다. 매달 6~8GB의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김씨가 골치를 앓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데이터에 있다. 김씨는 현재 SK텔레콤의 ‘band 데이터 6.5G’ 요금상품을 사용하고 있다. 5만6100원에 무제한 음성통화, 6.5GB 데이터에 최신 콘텐트 등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기본 데이터 제공량인 6.5GB를 넘기지 않아 큰 걱정은 없다. 문제는 종종 6.5GB를 초과해서 사용할 때다. 많아야 1GB가량 초과했을 뿐인데 추가 요금은 금세 2만원을 훌쩍 넘긴다.


그렇다고 한 단계 상위 상품을 선택하기도 애매하다는 게 김씨의 한탄이다. 다음 단계 상품인 ‘band 데이터 퍼펙트’의 기본 데이터 제공량은 11GB로 격차가 심한데다 요금가격도 6만5890원으로 껑충 뛰기 때문이다. 김씨는 “기본 데이터 제공량을 매달 초과하는 것이 아닌데 1만원이나 비싼 11GB짜리 요금제를 쓸 필요는 없다”면서 “내게 딱 맞는 요금상품이 없어 불필요한 돈을 쓰는 것 같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게다가 추가 사용량에 부과하는 요금은 정액상품과의 차이가 너무 커 적정한 요금이 산정되고는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는 김씨만의 고민은 아니다. 혹시나 부과될 추가 요금이 부담돼 본인의 사용량보다 많은 데이터 요금제를 선택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데이터 1GB 초과해도…

이런 문제는 이통사의 전략에서 기인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4.9GB다. 하지만 이통3사(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가 제공하는 요금상품엔 4~5GB대 상품이 아예 없다. 이럴 경우 3GB대 요금제를 쓰고 초과 사용량은 추가요금을 내든지, 6GB이상 요금제를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많은 소비자는 6GB 이상의 요금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데이터를 추가로 사용할 시 요금이 과하게 청구되기 때문이다. 현재 요금상품 이외에 추가로 사용하는 데이터에는 1MB당 22.528원이 부과된다. 1GB (1024MB)를 추가로 사용할 경우 2만2792원이 추가되는 셈이다.

소비자가 불필요한 요금제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건데, 사실 이런 폐해가 가능한 이유는 따로 있다. 소비자가 통신원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통신원가가 공개되지 않으니 데이터 통화료가 비싼 건지 합리적인 건지 소비자는 알 수 없다는 거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인 조형수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가 미래부ㆍ이통3사에 통신원가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신원가가 공개되면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신원가가 공개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통신원가 공개 이후의 가상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통신요금을 바꾸기로 결정한 김재선씨는 이통3사 대리점을 돌며 요금제를 알아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개 통신사라고 해도 믿을 만큼 획일화됐던 요금제가 크게 달라졌다. 통신사별로 통신요금상품이 차별화됐다.

김씨는 무제한 음성통화와 데이터 7.5GB만 제공하는 상품을 골랐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것만 묶어놓으니 요금도 훨씬 저렴해졌다. 통신원가가 공개되면서 통신사와 시민단체, 소비자가 참여하는 요금인가 심의위원회가 생긴 덕분이다. 통신요금상품이 출시되기 전에 심의위를 거치니, 좀 더 합리적인 상품이 나온 셈이다. 

마케팅비 절감할 수도 …

이젠 기본으로 제공되는 데이터양을 초과해도 크게 걱정이 없다. 정부가 통신사의 통신원가 대비 과도한 이윤 취득 행위를 규제해 추가요금 부담이 예전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통신원가를 모를 땐 정부가 기업의 초과이윤 추구 행위를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 줄 수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게 됐다.

소비자만 웃는 건 아니다. 통신사도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통신사의 요금제를 신뢰할 수 있게 되면서 거액의 마케팅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의 마케팅 비용은 대부분 ‘통신비가 합리적으로 산정됐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한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통신원가만 공개해도 그동안 부당하다고 여겼던 부분을 개선할 수 있다. 조형수 변호사는 “통신원가가 공개된다고 해서 당장 통신요금이 인하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기업에 비해 소비자가 불리했던 구조가 개선될 수 있고, 무엇보다 합리적인 요금 설계를 위한 기반은 마련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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