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3사의 통신원가 딜레마

“이동통신사의 폭리가 심하다.” “통신업계는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서 어쩔 수 없다.” 통신비 인하를 두고 매번 갈리는 주장들이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통신요금 원가를 보면 된다. 그런데 이통3사는 이를 공개하길 꺼린다. 왜일까. 

▲ 문재인 정부가 ‘기본요금 폐지’를 공약으로 걸었다. 업계의 반발이 심한데, 이를 줄일 방법이 있다. 통신요금 원가 공개다.[사진=뉴시스]


“새 정부가 기본요금 1만1000원을 폐지한다고 한다. 이통3사가 고객 1명에게 얻는 수익이 3만5000원 수준이다. 정부 말대로라면 이들의 수익 30%가 갑자기 줄어드는 거다. 어느 산업이든 기존에 받던 요금의 30%를 일시에 낮춘 전례는 없다. 더구나 통신사업자들은 민간기업 아닌가.(통신업계 관계자)”

통신업계가 울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국민들과 한 약속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가계 통신비 절감 8대 정책’을 공약으로 걸었다. 이동통신서비스의 기본요금을 폐지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통3사는 별다른 내색은 하고 있지 않지만 탐탁지 않은 눈치다. 현재 휴대전화 가입자(중복 가입자 포함)는 6100여만명. 모든 가입자에게 기본요금 1만1000원을 일괄적으로 받지 않는다고 단순하게 주판알을 튕기면 연 8조52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통3사의 연간 영업이익 총합이 3조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장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이들의 말은 볼멘소리만은 아닐지 모른다.

 

사실 통신비 인하 공약은 국민들에게 익숙하다. 선거철만 되면 단골메뉴로 등장해서다. 이명박 정권은 기본요금 1000원을 인하했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동통신서비스ㆍ단말기 경쟁 활성화 및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 방안’을 발표했다. 정치권이 통신비 인하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통신요금이 비싸다’고 인식하는 국민들이 숱해서다. 여기엔 매년 조 단위 이익을 내는 이통3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섞여있다.

국민들 공분 산 이통3사

이런 의심은 통신요금 시스템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이통3사의 요금제가 별다른 차이가 없다. 통신요금을 인상하는 시점도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하다.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구매할 때 통신사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이유다. 덕분에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5대 3대 2(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 점유율로 고착된 지 오래다. 국민 입장에서는 ‘담합’ ‘폭리’ ‘거품’ 등의 시선을 보내기에 충분한 근거다.

이통3사는 “억울하다”고 말한다. 요금제를 이통3사 맘대로 결정하는 것도 아닌데, 때만 되면 된서리를 맞는다는 이유에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신규 요금제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인가(시장지배사업자 SK텔레콤 대상)가 없으면 출시할 수 없다. 시장지배사업자가 요금을 쉽게 올리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다고 2ㆍ3위 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가 규제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이들 역시 요금제를 미래부에 신고해야 한다.

문제는 미래부가 지금껏 이통3사의 요금제를 거부하거나 수정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합리적인 요금제도를 구축해야 할 정부 부처가 기업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듣고 있는 꼴”이라면서 “미래부의 감시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통신요금의 원가를 공개하지 않아 이통3사가 적정금액을 받는지 폭리를 취하는지 알 길이 없다. 사실 이 문제는 낡은 병폐나 다름없다. 법적 소송까지 진행됐음에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

2011년 참여연대는 소관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 통신요금 원가 및 원가산정과 관련된 자료 일체를 요청했다. 통신요금의 원가를 분석해 현 요금제도가 적절한지를 국민의 시선으로 판단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방통위는 ‘영업기밀’을 이유로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논리는 이렇다. “기업 핵심적인 경영과 영업상 비밀이 경쟁사에 무방비로 노출돼 기업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고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위협할 우려가 크다. 민간기업 핵심 영업비밀을 공개하라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고, 마치 기업이 심혈을 기울인 특허나 제품 설계도면을 공개한 채 경쟁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원가 정보를 검토한 재판부는 방통위와는 다른 해석을 내렸다. “통신요금 원가는 영업비밀로서 가치가 크지 않다. 이를 공개하는 데서 얻는 공익적 가치가 더 크다.”

결국 방통위 업무를 인수한 미래부는 2013년 10월 ‘백기’를 들었다. 항소를 취하하고 요금 원가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도 재판은 ‘현재진행형’이다. 보조참가자로 소송에 참여한 이통3사가 상고장을 제출하면서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3년째 낮잠을 자고 있다.

한현배 카이스트 통신공학 박사는 “통신서비스는 온 국민이 이용하는 사실상의 공공재인 만큼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원가 공개로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는 요금제도를 만든다면 이통3사가 국민의 공분을 사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통신 서비스는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기반인데, 통신사가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언급했듯 이통3사는 요금제 개편에 민감하다. 당장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요금제 개편은 이통3사가 통신요금을 활용해 폭리를 취한다는 의혹이 깔려 있어 국민 역시 반길 게 분명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문제의 해결책은 이통3사가 쥐고 있다. 통신요금 원가를 공개해 ‘폭리를 취하지 않는다’는 걸 설명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통3사는 “원가공개는 곤란하다”고 버티면서 “요금제 개편은 안 된다”고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요금제 개편도, 원가 공개도 어렵다는 거다. 이통3사의 탐욕스러운 딜레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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