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매트릭스(Matrix) ❹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에 정복 당하고 통제되는 인간들이 가장 먼저 빼앗긴 것은 ‘꿈’이다. ‘꿈’은 정복 당하거나 통제되지 않은 인간들만의 전유물이다. 기계의 지배를 거부하는 소수의 반란군을 이끄는 지도자의 이름이 모피어스. 즉 ‘꿈을 꾸는 자’다. 지배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피지배자들의 통제되지 않는 ‘꿈’이다.

 
모피어스(모르페우스)는 이름답게 꿈을 꾼다. 모두가 꿈꾸기를 포기하거나 꿈꾸는 방법조차 잊은 시간에 꿈을 꾼다. 모피어스가 꿈을 잃지 않게 만든 힘은 구원자가 나타나리라는 믿음이다. 구세주(Messiah)의 도래에 대한 희망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동력이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아무리 “네가 바로 세상을 구원할 ‘그(The One)’”라고 단정해도 네오는 믿지 않는다. 모피어스의 최면에 쉽게 빠져들지 않는다. 그러나 모피어스 일행과 매트릭스의 세계의 실상에 눈을 뜨고 함께 매트릭스 세계에 저항하면서 자신이 구원자로서의 잠재력을 지녔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또 세상을 구원해야겠다고 스스로 자각한다. 그렇게 네오는 정말 구원자로 거듭난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구원자’라는 이름표를 붙여줘서 구원자가 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깨달음에서 구원자로 태어난다. 

▲ 네오는 자신이 스스로 구원자임을 깨닫고, 세상을 구원하기로 마음 먹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칸트(Immanuel Kant)는 우리 자신 말고 어느 누구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믿는다. 자신의 깨달음과 노력 없이 자유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또 다른 주인의 노예가 될 뿐이다. 인간의 자기 해방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지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선구자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은 「내부로부터의 혁명(Revoution from Within)」에서 ‘탈脫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깨달음은 결코 누구로부터 배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맹렬여성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꼽은 스타이넘은 “우리 내부의 우주적 자아를 깨닫는다면 어느 누구도 무엇을 두려워하거나 숭배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대단히 전투적이다. 모든 것을 바꾸는 진정한 ‘혁명’은 외부로부터의 작용이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스타이넘의 주장은 칸트의 ‘신인神人(theantropic)’적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칸트는 예수를 인간과 세상을 모든 고통에서 건져주는 초월적 절대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인간 내부의 신인적 잠재력의 표상으로 파악한다. 구원과 해방은 얻어지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 내부의 잠재력은 눈에 보이고 계량할 수 있는 실증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다. 구원은 메시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각과 깨달음으로부터 온다.

모피어스의 인간해방군의 은신처이자 지하세계 사령부 함선 이름이 ‘네브카드네자르(영화 자막에는 성서의 표기대로 ‘느브갓네살’로 표기된다)’호號다. 네브카드네자르(Nebuchadnezzar)는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바빌로니아의 정복군주다. 세상을 발 아래 두고 오만과 광기에 사로잡혀 왕좌까지 빼앗기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네브카드네자르 왕은 신의 은총으로 생명과 왕좌를 되찾고 비로소 회개한다.

네브카드네자르 왕은 바빌론에 노예로 끌고온 이스라엘 포로들을 해방시켜준다. 베르디의 대표 오페라 ‘나부코(Nabucco)’는 네브카드네자르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이스라엘 포로들은 네브카드네자르 왕의 선물로 얼떨결에 해방됐지만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은 아니다. 포로들은 해방됐지만 돌아갈 나라는 없었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들은 나라없는 백성으로 세상을 떠돌고 또 다른 민족과 왕들의 노예로 살아간다. 칸트의 성찰처럼 스스로의 각성 없이 ‘주어진 자유’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일 뿐이다.

▲ 대통령 한명 바뀌었다고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사진=뉴시스]
영화는 ‘너희들에게 우리가 갇혀 있는 매트릭스를 보여주겠다’는 네오의 선언으로 끝난다. 영화의 마지막에 워쇼스키 감독이 밝힌 네오의 정체는 메시아가 아니라 ‘교사敎師’일 뿐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모델’이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메시아가 아니라 ‘깨어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우리 모두가 ‘그(the One)’가 돼야 한다.

우리 모두의 진정한 ‘깨달음’이 없는 상태에서 한순간 독재를 타도했다고 바로 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나쁜 정부’가 한순간 물러갔다고 당연히 ‘좋은 정부’가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혼돈의 시대 새로운 대통령에게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겠다. 단지 우리 모두에게 우리를 가두고 있는 ‘매트릭스’의 세계를 깨닫게 해주는 위대한 ‘교사’이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교사이기를 소망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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