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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용비 이코노미] 양극화 품은 ‘빅 콤플렉스’불황이 바꿔놓은 소비트렌드
[243호] 2017년 06월 15일 (목) 06:05:03
김미란 기자 lamer@thescoop.co.kr

깊어진 불황은 숱한 신조어들을 만들어냈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만 음식을 해먹는다는 ‘냉파(냉장고 파먹기)’, 온라인 쇼핑몰의 파격 할인 시간대만 찾아다니는 ‘핫딜 노마드족’, 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를 일컫는 ‘탕진잼(탕진+재미)’ 등. 그중에서도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가성비’는 지난해 우리사회를 휩쓸었다. 최근엔 ‘가용비(가격 대비 용량)’까지 등장했다. 실속을 따지는 사이, 우리는 불황과 마주하게 된다.
▲ 가격 대비 성능, 용량을 따지는 불황형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정석(가명ㆍ29)씨는 2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취준생(취업준비생) 신세에서 탈출하는 걸 보면 부러운 것도 잠시. 월세며 공과금이며, 생활비로 나가는 돈 때문에 매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입이라곤 2주에 한번꼴로 부모님께 받는 용돈이 전부다. 그마저도 넉넉하지 않아 어떻게든 아껴보려 외출도 자제하고 되도록 집에서 많은 걸 해결하려다 보니 자의반 타의반 ‘섬’이 되고 있는 한씨다.

한씨의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그에게 유용한 ‘핫딜(온라인 쇼핑몰의 특정시간대 할인 이벤트)’이 뜰 때마다 SNS 메시지로 좌표(링크)를 보낸다. 좌표를 따라가 보니 오늘은 대용량 과자다. 2.5㎏이 1만1900원이란다. 안 그래도 저녁마다 입이 심심하던 차에 ‘옳다구나’ 결제 버튼을 눌렀다. 절약이 몸에 밴 한씨지만 이 정도 소비쯤은 부담스럽지 않다.

한씨가 오늘 온라인쇼핑몰에서 구매한 건 ‘인간사료’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대용량 과자다. 벌크포장으로 비닐 자루 한가득 담겨 있는 과자가 동물사료처럼 양이 많기도 하고, 배고픈 청춘들의 끼니를 대신한다는 의미도 있어 그렇게 부른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층에게 특히 인기다.

싸서 좋긴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반려동물도 유기농 사료에 6년근 홍삼까지 월 5만4793원 어치의 사료를 먹는데, 인간은 1만원 남짓한 인간사료를 구입하면서도 이것저것 따져야 하는 현실이 영 마뜩잖은 게 사실이다.

▲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이들은 확실한 걸 추구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지난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이어 올해는 가용비(가격 대비 용량)가 유통업계를 흔들고 있다. 같은 값이면 양이 많은 제품, 싸면서 양이 많은 제품이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실제로 창고형 할인매장에서나 보던 대용량 제품들이 온ㆍ오프라인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소득 줄어드니 소비 줄일 수밖에

온라인 쇼핑사이트인 옥션의 집계만 봐도 그렇다. 옥션의 발표에 따르면 올 1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판매된 대용량 제품은 지난해보다 10배 이상 많다. 소모성 강한 칫솔(83%), 핸드워시(75%), 주방세제(49%), 화장지(44%) 등 생필품에서 판매율이 두드러졌다. 옥션 관계자는 “생필품 중에서도 오래 두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 중심으로 대용량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면서 “가성비에 이어 가용비 트렌드가 불황기 소비자들을 파고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1L에 육박하는 대용량 커피, 300mL에 이르는 대용량 화장품도 가용비 소비트렌드에 합세하고 있다. 제품뿐만이 아니다. 무한리필 식당도 눈에 띄게 늘었다. 1만원대 뷔페는 물론 9900원, 1만900원만 내면 고기를 무한리필 할 수 있는 식당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왜 가성비도 모자라 가용비까지 따지게 된 걸까. 이준영 상명대(소비자주거학) 교수는 불황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불황기에는 한정된 비용으로 만족감을 극대화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과거에는 비싼 제품에만 가성비 잣대를 들이댔지만 최근엔 제품 전반으로 그런 추세가 확산하고 있다.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들의 경우엔 용량도 성능 중 하나로 인식하기 때문에 비용은 적게 쓰면서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가용비를 추구하게 되는 거다. 대용량 제품들이 많아지는 것도 그런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계속된 불황으로 지난해 가계 살림살이는 쪼그라들었다. 절약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환경인 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39만9000원이었다. 전년 대비 0.6% 증가했지만 물가상승을 제외한 실질소득은 되레 0.4% 감소했다. 그러다보니 지출도 줄었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가계지출이 전년 대비 0.4% 감소해 336만1000원으로 집계됐다. 실질 가계지출은 이보다 더 큰 폭(-1.3%)으로 줄었다. 이렇게만 보면 소득과 지출이 확연하게 줄어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소득 분위별로 나눠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해 소득 5분위(최상위 20%)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834만8000원이었다. 전년 대비 소득이 2.1% 증가한 5분위 가구는 이중 398만원을 지출했다. 반면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는 전년 대비 소득이 5.6% 감소했다. 이들 가구는 월평균 144만7000원을 벌었고, 126만9000원을 지출했다. 소비지출 중 식료품 비중이 11.1%인 5분위 가구와 달리 그 비중이 20.4%에 이르는 1분위 가구는 더 싸고 더 많은 것을 찾을 수밖에 없는 거다. 이들에게 가성비와 가용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다.

불확실한 시대, 확신을 원하다

가용비 소비 안에는 무엇도 믿을 수 없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불안한 심리가 내포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소비자들이 소비에서만이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눈에 보이는 확실한 걸 선택하고 싶어 한다는 거다. 김상훈 서울대(경영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불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전체적으로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도 있지만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커지게 마련이다. 회사에서는 오늘 잘릴지 내일 잘릴지 알 수 없고, 눈속임 같은 마케팅도 믿을 수 없다. 그런 환경에서 살다보니 실제적이고, 즉각적이고, 객관화되고, 확실한 것을 추구하는 거다. 가성비와 가용비로 그런 심리가 나타나고 있다.” 불확실성이 더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뚜렷하고 즉각적인 효용을 원한다는 거다.

가용비 트렌드가 양극화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은 동물사료보다 싼 인간사료를 먹고, 지갑이 두둑한 이들은 반려동물에게 인간사료보다 비싼 동물사료를 먹인다는 게 단적인 예다. 인간사료 보다 비싼 동물사료. 동물사료만도 못한 인간사료를 먹는 현실이 2017년을 사는 소비자들의 가슴을 때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
@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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