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세컨드 라이프 ➊ 조현욱 과학과소통 대표

‘100세 시대’를 맞습니다. 수명 연장으로 퇴직을 해도 일해야 하는 ‘반퇴 시대’이기도 합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세컨드 라이프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이 땅의 중년들을 찾아갑니다. 먼저 과학 강연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조현욱(60) 과학과소통 대표와 만났습니다.

 
“마이크를 잡으면 신명이 나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고등학생, 대학생, 교사, 교수, 멘사클럽 회원, 직장인, 주부 등 강연을 듣는 청중은 다양하지만 다들 유익하다고 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어 합니다. 저도 이 일에 흥미를 느끼고요.”

조현욱 과학과소통 대표는 강연을 시작하고서 자신이 이 일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고생 대상 강연을 마치면 수십명이 사인을 받으려 합니다. 자평하면 100점 만점에 98점은 돼요. 부족한 2%가 유머 코드죠. 800명쯤 앉혀 놓고 강연을 하려면 유머를 구사할 줄 알아야겠더라고요.”

강연가로 나선 건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쓴 「사피엔스(김영사)」를 번역하고 나서다. 조 대표는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다. ‘호모 사피엔스 종이 급속도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한 건 허구의 것을 공통으로 믿는 능력 덕에 대규모로 유연한 협력을 했기 때문이다.’ 2015년 출간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저자 대신 역자인 그를 찾는 곳이 하나둘 생겨났다. 그 덕에 지난해 1월 이래  ‘빅 히스토리와 사피엔스’를 주제로 30여차례 청중 앞에 섰다.

초짜 강연가로서의 그의 강점은 무대공포증이 없다는 것이다. 일찍이 고교 시절 어떤 상황에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기른 덕분이다. 그는 스스로 뻔뻔스러워지는 훈련이라고 말했다. 빡빡머리 조현욱은 버스에 올라 차장에게 “버스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게 통하자 이번엔 실제로 버스표 없이 버스에 탄 후 “버스표가 없다”고 차장에게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을 갖추는 게 목적이었기에 상습적으로 무임승차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쌓은 훈련 덕에 군 복무 중 난생처음 웅변대회에 나가 1등을 먹고 포상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원고가 좋았던 덕이었지만 경험도 없이 웅변대회 우승해 포상휴가를 가겠다는 발상을 하게 된 건 상황 대처 능력이 생긴 덕이었다.

그 시절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을 접했다. ‘지혜롭고 따뜻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싶었던 그가 가까운 친구에게 자기 얼굴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기분 나쁘지만 꾹 참고 있는 얼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드러났던 거 같아요.” 그날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유 없이 웃는 얼굴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가 늘 어린애처럼 속없이 웃는 비결이다.

과학 분야 번역가는 무주공산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 정치학과를 수료했다. 중앙일보에 들어가 주로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고 문화부장과 문화 담당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때 과학 칼럼을 쓴 덕에 퇴직 후 3년간 이 신문에 과학 칼럼 ‘조현욱의 과학산책’을 연재했다. 지금도 중앙선데이에 과학칼럼 ‘조현욱의 빅 히스토리’를 연재 중이다. 빅 히스토리에 대해 그는 ‘빅뱅에서 현재에 이르는 역사 전체를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문사 시절 과학책 두권을 번역했다. 이때 세컨드 라이프를 과학책 번역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과학 번역서에 엉터리 번역이 적지 않은 것에 착안했다. 출판계는 때마침 과학 분야의 번역자 기근을 겪고 있었다. 번역자가 대부분 자연과학을 잘 모르는 인문학 전공인 탓이었다. 기자 출신에 영어에 능하고 과학책을 꾸준히 읽은 그에게 과학 분야 번역 일은 무주공산 격이었다.

그가 「붉은 여왕(김영사)」과 「루시의 유산(한나)」의 오역을 지적하는 기사를 썼을 때의 일이다. 한나가 책값을 환불해 주겠다고 밝혔다. 국내 출판 사상 처음 있는 리콜이었다고 한다. 김영사는 환불과 더불어 개정판 출간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박은주 당시 김영사 사장이 직접 개정판에 참여해 달라고 그에게 제의했다. “MIT를 ‘매사추세츠기술연구소’, 칼텍을 캘리포니아기술연구소로 옮긴 책도 있어요. 앞으로 이 분야에서 밥을 벌어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지금까지 10권 번역했고 6월에 다음 역서가 나옵니다.”

그는 젊은날 사람들 앞에서 자주 시를 암송했다. 한창 땐 167편을 외웠다고 한다. 정작 학창시절엔 국사ㆍ지리 등 암기과목에 약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시란 곧 낭송이다. “시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려 외웠습니다. 걷거나 술을 마실 때, 또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하다 보면 그 상황에 맞는 시가 떠오릅니다. 여러 권의 시집을 평소 휴대할 수 없어 시를 외웠어요.” 시인이 되지 않은 건 재능도 부족했지만 시로 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가슴에 절실하게 맺힌 게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눈앞에 닥친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에 인류가 과연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간의 노동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 대자본이 소득을 분배하려 들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노동을 제공하지 않는 타인에게 자원을 배분하는 것에 과연 정당성이 있는지부터 의문이라고 했다.

“이런 시대 누군가에 의해 권위 있는 자원의 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돈 있으면 인공장기를 이식해 200년씩 살고 창의력도 비싼 약 처방 받아 증진할 수 있을지 몰라요. 돈 많으면 삶의 질이 높아질 확률이 큰 게 아니라 확고하게 삶의 질이 높아지는 시대가 될 겁니다.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나게 만들려 사람을 대상으로 유전자 조작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이렇게 되면 정의, 평등, 민주주의의 개념도 달라져야겠죠. 이런 초유의 상황에 대응해 서둘러 사회가 합의를 이루지 않으면 디스토피아가 올 겁니다. 어쨌거나 이런 시대에 필요한 교육을 젊은 세대에게 해야 합니다.”

「사피엔스」는 많이 읽히기도 했지만 술술 잘 읽힌다는 평을 들었다. 조현욱 표 번역은 어떤 것일까? 그의 영업비밀을 들어봤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년 발간된 양귀자의 소설로 1994년 최진실 주연으로 영화화됐다. 영어 제목은 I wish for what is forbidden to me) 식으로 번역합니다. 영어 문장처럼 동사를 먼저 우리말로 옮기고 목적어구를 그 뒤에 배치하는 겁니다. 이렇게 번역하면 긴 문장을 끝까지 읽기 전 대의를 파악할 수 있죠.

한마디로 영어 원문의 아이디어 전개를 따라가는 번역입니다. 이런 문장 구조가 우리말 어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여기에 더해 번역문 티가 안 나게 하려 노력합니다. 원문의 뜻이 잘 전달되면서도 번역 투가 느껴지지 않는 문장을 구사하려 합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