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업정지, 그후 롯데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언뜻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이의 고백처럼 보이는 이 문구는 지난 3월, 롯데가 일부 호텔과 편의점 등에 붙여 놓은 거다. 지나가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알아보기 쉽게 표기는 중국어로 했다. 사드 보복 조치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롯데가 그렇게라도 안간힘을 쓴 거다. 하지만,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중국 내 롯데마트는 99개 점포 중 87개가 문을 닫았다.[사진=뉴시스]
“중국 사업을 계속 하고 싶다.” “사업 철회 계획은 없다.” “계속 투자할 거다.” 롯데가 중국 사업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말 롯데가 국방부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부지 교환계약을 체결한 후 중국이 ‘영업정지 처분’ 등으로 보복 수위를 높여가고 있지만 롯데는 일관되게 ‘사업 지속’ 의지를 밝히고 있다. 계속되는 적자로 철수를 선언한 이마트와 대조적인 행보다. 롯데는 “손쓸 수 있는 데까진 써보겠지만, 현재로선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를 향한 중국의 압박이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4개로 시작된 중국 내 영업정지 처분 롯데마트 점포는 6월 22일 현재 74개로 늘었다. 반한反韓 감정을 우려해 자체적으로 영업을 중단한 점포 13개까지 포함하면 총 87개의 점포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99개의 점포 중 정상영업을 하는 곳은 12개뿐이다. 그러다보니 깊어지는 한숨만큼 실적도 악화하고 있다.

5월 12일 공개된 롯데쇼핑의 1분기 실적을 보자. 영업정지 처분 영향으로 중국 내 롯데 할인점(슈퍼 13개 포함)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7% 감소했다. 112개 점포(마트 99개, 수퍼 13개) 중 87개가 정상영업을 하지 못한 영향이 컸다.

상황이 이런데도 롯데는 흔들림 없이 ‘중국 사업 지속’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더 투자하고, 더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대화 채널이 재개됐고, 앞으로 양국 관계가 회복되면 이와 관련된 문제도 해결될 거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중국이 어떤 생각인지 알 방법이 없다는 거다.

4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롯데 50주년 기념행사 ‘50주년 뉴 비전(New Vision) 설명회’에서 황각규 경영혁신실장은 “중국 정부가 어떤 속내인지 100%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항간에 나도는 철수설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중국 사업은 아직 투자 단계이며, 철회할 계획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롯데는 그전에도 공공연하게 중국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혀왔다. 그룹의 수장인 신동빈 회장이 처음 의중을 밝힌 건 외신 인터뷰를 통해서다. 신 회장은 3월 24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부지를 제공한 건 정부 요청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롯데마트 영업 정지 등으로 보복을 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선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기할 수 없는 시장 ‘中’

4월 4일엔 CNN머니와 인터뷰를 하며 “2~3개월 안에는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신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정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을 뿐 사드 배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또 한번 피력하며 “중국으로 가 직접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싶지만 출국금지 상태라 불가능하다”며 중국 사업에 대한 의지를 거듭 표명했다.

롯데의 의지와 신 회장의 기대처럼 상황은 달라졌을까. 아니다. 롯데의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답보상태다. 되레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점포만 더 늘었다. 3월 6일 ‘소방 규정 위반’으로 1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롯데마트 점포는 하루만에 4개에서 39개로 늘었고, 8일엔 55개로 증가했다. 4월엔 다시 75개, 6월 22일 현재 영업을 중단한 중국 내 롯데마트는 99개 중 87개에 달한다.

▲ 신동빈 회장은 중국 사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자 롯데는 긴급 자금까지 투입했다. 영업 중단으로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할 게 뻔히 보이자 3월 27일 이사회를 열어 “5월 중 중국 사업에 388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결정한 거다. 이 자금은 상품 대금과 현지 직원들 임금 지급 등에 쓰였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여전히 사드 보복 조치를 부인하며 “소방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 중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설을 보완해 재신청을 해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서다. 사드 부지 제공에 따른 보복 조치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신 회장은 점점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왜 중국 사업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는 걸까. 그건 롯데가 중국 시장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다. 현재 롯데는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베트남은 날로 성장하고, 인도네시아는 사드 영향으로 주춤한 중국 매출을 추월했다. 그래도 여전히 중심은 중국이다.

계륵 전락한 중국판 롯데타운

롯데는 중국 선양瀋陽에 한국의 제2롯데월드 같은 ‘중국판 롯데타운’을 건설 중이다. 연면적 150만㎡(약 45만평) 규모의 ‘롯데월드 선양’은 롯데그룹 7개 계열사가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2018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롯데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 위생점검, 소방점검이 이뤄지던 과정에서 역시나 소방점검을 통과하지 못하며 공사가 중단됐다.

롯데가 자칫 ‘롯데마트 철수’라는 칼을 빼들었다가 3조원이나 투자한 대형 프로젝트로까지 불통이 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물론 20년 전 중국에 진출해 꿋꿋하게 사업을 전개해 온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롯데 측이 “지금으로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대책을 세우기보단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는 신 회장이 “나는 중국을 사랑한다”며 지속적으로 중국사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의지만으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외교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롯데가 중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이유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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