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

이윤성(64)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일찍이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로 ‘규정’했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가 구성한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최근 서울대병원은 백씨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했다.

 
“법의학자는 병사와 외인사가 경합할 경우 외인外因의 비중이 5~10%만 돼도 외인사로 봅니다. 질병 요인이 50% 이상이면 병사이고 그 미만이면 외인사가 아니에요. 병사야 국가가 사망 원인 통계로 잡으면 그만이지만 타살ㆍ자살이나 사고사는 달라요. 가해자를 처벌하고 안전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있죠.”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로 기록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사망에 외부 원인이 조금이라도 개입해 사회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경우 사인 결정권을 의사가 아니라 사회가 행사토록 하는 게 현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의 취지입니다.”

외인의 비중이 5~10%면 어떤 상황일까? 그는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이 접촉사고가 난 후 길에서 상대방과 언성을 높여 싸우다 심장에 무리가 가 발작을 일으켜 사망한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때는 병사로 처리해도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만일 상대방이 폭행을 했다면 외인은 10%를 초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백남기씨의 사망 원인을 9개월 만에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백씨는 이에 앞서 2015년 11월 '1차 민중총궐기' 시위 당시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후 뇌출혈을 일으켜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었다. 그가 사망하자 병원 측은 사인을 병사로 기록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가을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이때도 그는 “백씨는 외인사”라고 입장을 밝혔었다.

✚ 백씨 사인을 둘러싼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았습니다. 최초에 왜 병사라고 기록했다고 보나요?
“단순 오류죠. 외압 때문이었다고 보지는 않지만 잘못 쓴 사망진단서입니다.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가 사망진단서의 개념을 정확히는 몰랐고, 오류라는 지적을 받았을 때 사인을 고쳤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요즘 의대생과 달리 50대 대학병원 의사는 사실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그런 만큼 사망진단서를 다 잘 작성하는 것도 아니에요. 어쨌거나 병사라고 기록했다고 정권이나 어느 기관에 의해 덮일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전국민이 아는 사건인데 무슨 시도가 있었다는 건 유치한 억측이고, 정말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급성경막하출혈이라는 진단명도 적지 말았어야죠.”

✚ 어떻든 서울대병원이 백씨의 사인을 뒤늦게 외인사로 변경했습니다.

 

“백 교수는 지금도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백남기씨가 사고 후 병원에 300일 가까이 있다 보니까 병을 앓았다고 생각하는 임상 의사가 꽤 돼요. 가정이지만 백 교수가 허위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면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법원도 개인이 작성한 진단서를 고치라고 명령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는 사인을 제대로 기록해야 하는 건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일종의 레슨이 된다는 거죠. 이런 사례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표현하는 기준 구실을 합니다. 기준은 지키기는 어렵지만 깨기는 쉬워요.”

✚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들여다볼 때 현행 사망진단서 작성 시스템 내지는 절차에 개선점은 없나요?
“우리나라는 국가가 개입하는 변사가 전체 사망 건수의 12~13%입니다. 일본은 15~16%, 영국은 30% 이상이죠. 부검 건수도 연간 5000~6000건으로 일본의 절반 미만인데 변사 및 부검 건수가 이렇게 적은 건 경제적 비용 때문이에요. 이로 인해 1%, 연간 50~60건이 병사로 잘못 기록돼 사망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는지도 몰라요. 실제로 부인이 독극물을 먹여 죽였는데 사인을 의사가 식중독이라고 기록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정도의 경제 규모면 그에 상응하는 부검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 우리나라 과학 수사의 수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과제는 뭔가요?
“부검도 잘하고 DNA 검사의 수준도 높습니다. 11년 전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의 범인이 당시 프랑스로 출국해 국내에 없던 영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DNA 검사로 밝혀냈죠. 범인의 칫솔 등에서 채취한 DNA가 영아의 것과 일치했습니다. 문제는 국내 부검의가 사실상 30~40명으로 너무 적고 한 사람이 많게는 연간 200건을 맡아 과부하라는 거예요. 앞으로 10년 동안 160명 정도를 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마땅히 이들을 수용할 일자리가 없다는 거죠. 부검 시스템은 일종의 사회 기반 시설로 봐야 돼요. 단적으로 발생 건수가 들쑥날쑥인 화재와 달리 부검은 일정한 건수를 유지합니다.”

그는 부검이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오래해 익숙해지면 “전문직 일이 으레 그렇듯이 부검이 당길 때도 있다”고 말했다. “나야 내 직업에 만족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죠. 돈 많이 버는 아버지를 둘 기회를 박탈당한 셈이니까요. 원론적으로 법의학 하는 의사가 돈을 많이 버는 건 옳지 않아요.” 그는 “이 정도 ‘구라’ 실력으로 병원을 개업했다면 굉장히 잘 벌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 대한민국 모든 공대 위에 의대와 한의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학 교육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의사는 사실 그렇게 명석한 두뇌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생명과 건강을 다루니 머리가 중간보다야 좋아야겠지만, 의사는 사실 머리보다 심장이 중요한 일이죠. 장기적으로 의사와 한의사를 일원화해야 합니다. 의료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을 위해 필요합니다. 한 10년 정도 준비 기간을 갖고 전국의 한의예과를 의예과로 전환하는 겁니다."

▲ 이윤성 교수는 "가정이지만 백선하 교수가 허위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의료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 뭐라고 보나요?
“행위별 수가제인 현행 건강보험을, 포괄수가제를 일부 도입해 개편해야 합니다. 그래서 의사의 과잉진료를 막고 부당행위를 한 의사는 도태시켜야 합니다.” 이 교수는 대한의학회장을 맡고 있다. 국내에 약 40명밖에 안 되는 법의학자가 이 자리에 오른 건 처음이다. 현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이기도 하다. 32년째 몸담은 서울대에선 내년에 정년퇴임한다.

✚ 생명윤리에 대해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생명윤리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정한 원칙 내지는 기준 같은 겁니다. 의학이든 과학이든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게 마련이죠. 그런 만큼 평형점을 찾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대리모를 통한 출산을 예로 들면 국내에서 못하게 하면 지금은 글로벌화가 돼 인도로 갑니다. 또 콩팥을 이식 받으러 중국으로 가죠.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 내지 윤리가 있는 게 아니면 다른 나라들과도 맞출 필요가 있어요.”

✚ 인생의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나요?
“살아오면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가치관과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예를 들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기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결정을 했어요. 그렇게 하면 나중에라도 후회할 일이 없죠.”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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