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소 뒤에 숨은 보험사의 꼼수

사고차량이 정비소에 입고됐다고 가정하자. 파손이 클 경우, 정비소는 ‘방청(철판에 약품을 처리해 녹이 슬지 않도록 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방청’을 생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당신은 십중팔구 정비소에 “눈탱이 치지 마라”면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비소의 잘못인지 보험사의 꼼수 때문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질문을 풀어봤다.

▲ 손해보험업계가 손해율을 낮춘다고 소비자가 수혜를 입는 건 아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손해보험사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 손해율의 사전적 정의다. 손해율이 100%라면 보험가입자가 낸 돈 전부가 보상 등의 비용으로 지출됐다는 뜻이다. 당연히 손해율이 높을수록 소비자는 좋다. 

반대로 손해율이 떨어지면 손보사에 유리하다. 지금까진 손보사에 좋은 환경이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는 특히 그랬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2015년 87.8%에서 지난해 83%, 올해 1분기 78%로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손해보험업계는 “자동차 사고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운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사실 손보사가 손해율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손해액과 보험금을 사정査定하는 손해사정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손해사정사가 보상비용을 짜게 계산하면 손해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객에게 돌아갈 보상비용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손해사정사 대부분이 ‘돈을 주는’ 보험사의 자회사로 종속돼 있다는 점이다.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을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은 100%다. 동부화재는 동부자동차보험손해사정, 현대해상은 현대하이카손해사정을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모회사인 손보사들이 주는 일감을 받아 사업하다보니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상비용을 짜게 계산해 보험사에 이득을 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단순히 보험사에 이득을 주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자동차 보험수리의 원칙은 ‘사고 직전 상태로의 원상회복’이다. 그런데 손해사정사가 손해율을 무리하게 떨어뜨리면 보상비용이 줄어 반드시 필요한 정비들이 빠질 가능성이 생긴다. 원상 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우리나라 보험수리는 정비공장이 선先정비를 하면 손보사에 후後청구를 하는 방식이다. 원상 회복을 위한 정비를 해도 손보사가 보험금을 공장에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정비공장의 정비 범위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 정비를 하는 동안 들어간 부품과 노동력을 보상받지 못하면 정비공장에는 그만큼 마이너스라서다.

방청 외면하는 손보사

대표적인 게 방청 작업이다. 이는 철판에 약품을 뿌려 녹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작업이다. 대부분의 신차新車는 제조사가 방청 작업을 진행하지만, 사고 이후 패널 교체나 판금을 수리했을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새롭게 방청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부식이 발생하는 위치나 정도에 따라 차가 주저앉거나 사고 시 과도하게 차체가 찌그러들 수 있어서다. 안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부식은 운전자가 알아채고 정비를 받으러 가기도 어렵다. 사고 후 방청 작업이 꼭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손보사들이 지급 의무가 없다며 방청 작업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동차정비사는 “손해를 감수하고 방청 작업을 진행하는 정비공장도 있지만 일부 정비공장들은 ‘돈도 주지 않는 작업을 왜 하느냐’며 나몰라라하고 있다”면서 “부식이 발생해 또 사고가 나면 그때는 누가 책임을 지는가”라고 꼬집었다.

자동차 사고 후 손보사와 손해사정사들이 ‘차량의 안전’이 아닌 ‘손해율 낮추기’에만 집중을 하면 엉뚱한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해 뒷범퍼와 리어펜더가 파손된 피해차량이 인천의 한 정비공장에 들어왔다. 정비공장은 파손 부위를 수리하려고 했지만 삼성화재손해사정서비스의 손해사정사가 이를 막았다. 과거에 사고이력이 있어 리어펜더 파손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고객과 정비공장이 항의하자, 손해사정사는 리어펜더 파손을 인정하는 대신 조건을 걸었다. 고객이 사용 중인 렌터카를 반납하라는 거였다. 고객이 렌터카를 반납하면 손해율은 그만큼 낮아진다.

 

손해율만 낮추면 된다?

차 수리가 급한 고객은 ‘OK’를 했지만, 정비공장 측은 손해사정사와 고객의 ‘거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정비가 필요한 부위라면 조건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서다. 더구나 해당 고객은 자차가 필요한 업무를 하고 있었다. 결국 정비공장이 남은 차량을 고객에 빌려줬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손해보험 업계의 정비요금 삭감 문제가 계속되면 정비공장은 차량 정비에 소극적이게 된다”면서 “이런 움직임이 제 2의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손보사들은 자동차 정비 품질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는 “손해보험 업계는 얼마나 수리품질이 높은 상태로 수리가 완료됐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면서 “그저 수리에 소요된 부품과 기술료만 최대한 적게 지불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손해율을 낮추면 손보사는 이익을 본다. 정비를 담당한 공장은 그만큼 손해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 손해를 만회하려 할 수 있다. ‘요금과다청구’라는 주홍글씨가 이들에게 새겨진 건 어쩌면 이 때문이다. 이것은 고스란히 다시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손해율이 높아진다고 소비자가 웃는 건 아니다. 손해율이 높아질 때마다 손보사들은 보험료를 올렸기 때문이다. 결국 손해율이 높든 낮든, 웃는 건 손보사라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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