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행복하길 망설이는 이유

▲ 기술 때문에 왕처럼 편리해진 소비자는 기술 앞에서 행복하길 망설인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을 전혀 모르더라도 사방에서 첨단기술로 우리에게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곧 새로운 신세계가 열릴 것만 같다. 너도 나도 소비자의 건강과 편리함과 재미에 초점을 둔다니 소비자로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게 될까.

우리는 기술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혜택에 익숙해지고 있다. 취침 전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말만 하면 로봇비서가 불을 꺼준다. 아침에 깨워주기도 한다. 출근길에 미리 앱으로 주문하면 원하는 시간ㆍ장소에서 커피를 받을 수 있다.

외출할 땐 지갑을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만 들고 나가도 편의점에서 무엇이든 살 수 있다. 모바일 결제시스템 덕분이다. 아기가 잠투정을 할 때는 숙면을 도와주는 음악을 틀어주고, 아이와 떨어져 있더라도 아기가 안전한지 수시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퇴근하는 중엔 자동차에 세팅된 앱을 통해 피자를 주문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피자를 받는 게 가능하다.

사물에 연결된 인터넷 덕분에 소비자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소위 O2O서비스(Online to Offline) 또는 온디맨드(On demand) 서비스 시대다. 기술 덕에 왕처럼 편리해진 소비자는 정말 행복할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주변을 보면 아직 행복하기를 망설이는 소비자가 많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편리해지기 위해선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지만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광고를 보는데 동의해야 한다. 개인정보나 프로그램은 개별소비자에게 맞춤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감시자인 빅브라더를 생성해내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다.

둘째 이유는 기술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구매력을 가진 40대 이상의 소비자들 중엔 아직도 기초적인 스마트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패스트푸드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에 설치된 셀프주문대나 셀프계산대에서 신용카드를 단 한번에 제대로 긋는 사람은 아직도 3명에 1명꼴이다. 화면을 터치하는 것도 어색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도 어렵다.

기술은 우리를 편리하게 하는 게 아니라 종종 좌절하게 한다. 20~30대 젊은 소비자를 제외하곤 공감할 것이다. “이제야 초등학교 수준의 기술을 익혔는데, 일상에선 대학원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하네”라면서 푸념을 내뱉는 소비자도 많을 것이다.

관련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소비자 수용성은 기술에 익숙한지와 연관이 깊다. 소비자들이 기술에 익숙해야 기술의 유용성을 높이 평가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쉽게 받아들인다는 거다. 기업이 첨단기술로 끊임없이 소비자를 위해 노력하는 건 분명 고마운 일이지만 소비자에게 제공할 콘텐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도 노력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소비자가 기술에 익숙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

첨단기술 콘텐트가 필요한 계층은 노인 소비자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콘텐트가 가장 필요한 계층인 동시에 기술에 가장 취약한 소비자다. 냉장고ㆍTVㆍ자동차ㆍ의류ㆍ신발ㆍ가구, 심지어 변기에도 인공지능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만 대가로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두려움(개인정보와 기술적응 장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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