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매트릭스(Matrix) ❽

모피어스는 자기가 메시아라는 걸 믿지 못하는 네오를 ‘메시아 감별사’ 오라클에게 데려간다. 하지만 오라클은 “믿음을 가지라”는 애매한 말만을 남긴다. 그때 네오의 눈에 ‘테메트 노스케(temet nosce)’라고 쓰인 액자가 들어온다. 우리말로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의 이 한문장이 네오에게 가르침을 준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기계들의 노예로 전락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고 믿는다. 하지만 모피어스의 믿음과 달리 네오는 자신의 어마어마한 능력을 믿지 못한다. 자기를 천재라고 믿고 흥분하는 엄마가 영 부담스러운 아이의 모습이다. 모피어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기 위해 ‘메시아 감별사’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에게 데려간다.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자신감 없는 아이를 ‘영재학원’에 데려가 영재 테스트를 받게 하는 열혈엄마의 모습이다.

오라클은 인간에게 신의 말을 전하는 메신저다. 신神의 대변인인 셈이다. 인간이 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에 부딪치면 오라클은 신전에 나아가 신에게 답을 구한다. 신탁神託이다. 그리스인들은 델피(Delphi) 신전에서 신탁하고 델피 신전의 오라클을 통해 신의 계시를 기다렸다.

영화 매트릭 스에서 오라클 역은 흑인 여배우 글로리아 포스터가 맡는다. 신의 대변인을 흑인여성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남성중심ㆍ백인중심 세계관을 제대로 비꼰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워쇼스키 감독다운 도발이다. 모피어스와 네오가 찾아간 오라클이 살고 있는 매트릭스의 신전은 델피 신전처럼 으리으리하고 뻑적지근하지 않은 평범한 살림집이다.

매트릭스의 오라클은 부엌에서 과자를 굽고 있다. 오라클의 부엌 출입구 위에 라틴어로 ‘테메트 노스케(temet nosce)’라고 쓰인 액자가 우리네 대표적인 가훈家訓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처럼 무심하고 소박하게 걸려있다.

▲ 오라클은 네오에게 ‘메시아가 아니다’는 판정을 내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메시아 감별사’ 오라클은 네오의 눈을 잠깐 들여다보는 대단히 무성의한 테스트를 실시하고 ‘너는 메시아가 아니다’고 판정한다. 뻘쭘하다. 오라클은 뻘쭘해진 네오에게 과자를 건네며 “이제는 믿음을 가지라”는 묘한 말을 건넨다. 너는 분명 영재는 아니지만 네가 영재라고 믿으라니 참으로 난해하다.

오라클은 ‘너는 이미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나에게 물으러 온 것이다. 메시아가 되기로 예정된 운명은 없다. 네가 운명적인 메시아는 아니다. 그러나 네가 메시아가 되겠다고 이미 선택했다면 너의 선택에 믿음을 가져라. 그리하면 너는 메시아가 될 것이다’는 깨우침을 준다.

오라클의 난해한 가르침을 받은 네오의 눈에 부엌에 걸려있는 ‘테메트 노스케’ 액자가 다시 들어온다. ‘테메트 노스케’는 우리말로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는 뜻이다. 흔히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리스 델피 신전에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지는 격언이다. 더 정확히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신전인 룩소르 신전(Luxor Temple) 외벽에 새겨졌던 격언이라고 전해진다. 그 연원이 어지러운 만큼 ‘너 자신을 알라’는 짧은 가르침은 참으로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의적이다.

말은 짧을수록 함축적이어서 수많은 의미를 담아내는 마법을 부린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너의 무지無知를 알라’는 의미로도 사용했지만, ‘기본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처럼 ‘사람이 곧 신이다’는 주장에 차출되기도 한다. 아무데나 겹치기 출연하는 무척이나 바쁜 격언이다.

▲ 신에게 답을 청했던 고대인들의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고 씌여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그리스 문명 이전에 이미 세계 최고의 문명이었던 이집트의 문명을 열광적으로 배우고 받아들였던 그리스인들은 신전까지도 룩소르 신전을 모델로 자신들의 신전을 건설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리스의 델피 신전은 이집트 룩소르 신전의 짝퉁인 셈이다. 룩소르 신전 외벽에 새겨져 있었다는 원본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하면 신을 알게 될 것이다(Man, know thyself. and you are going to know the gods).”

델피 신전이나 룩소르 신전은 인간의 지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신에게 의탁하고 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받드는 곳이다. 그런 신탁의 건축물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새겼다는 고대인들의 인간관人間觀이 경이롭다. ‘너 자신을 알라’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어서 신에게 묻는 모든 문제에 대해 ‘너 자신을 알라’고 대답하고 있다.

자신의 운명을 내다본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일까. 이미 정해진 운명이 과연 존재할까. 신의 뜻이라는 것도 과연 있는 것일까.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건 아닐까. 자신이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신의 뜻이다. 간절히 소망한다면 신의 뜻이 이뤄지듯 그 뜻도 이뤄질 것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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