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약가인하 처분 논란

▲ 보건복지부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된 총 12개 제약사 188개 품목에 약가인하 처분을 내렸다.[사진=뉴시스]
한 제약사가 새 약품을 내놨다. 의료기관 창구를 뚫기 위해 검은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당연히 약품 가격이 올라간다. 리베이트가 약가藥價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리베이트 적발시 ‘약가인하 처분’을 내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 처분은 지금까지 논란이 많았다. 약가인하 처분을 내리지 않거나 강도를 낮추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검찰이 최근 약가인하 처분의 실태를 살펴보는 이유다.

제약사에 약가藥價(의약품 가격)는 민감한 요소다. 매출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때론 받는 보험급여에 따라 시장에서 선택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되기도 한다. 보험급여를 받지 못하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어서다. 보건복지부가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약가를 건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9년 8월 보건복지부는 리베이트 행위가 적발된 품목의 약가를 인하하는 행정처분, 이른바 ‘리베이트-약가연동제’를 꺼내들었다. 최대 20%의 인하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리베이트에 적발된 제약사로선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베이트-약가연동제는 시행한 지 5년여만인 2014년 7월 1일 중단됐다. 그 대신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새로 실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법 리베이트 행위로 적발된 품목은 약가에 지급되는 보험급여를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재차 적발 시엔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퇴출한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가 최근 리베이트-약가연동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실시하기 전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를 재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엔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의 움직임이 있다. 지난 4월 11일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복지부의 리베이트 행정처분을 관할하는 보험약제과와 약가급여를 평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을 압수수색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복지부를 수사하면서 특히 리베이트로 적발된 의약품의 약가 관련 조치사항을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수사 이후 복지부의 행보에 변화가 생겼으니 검찰이 복지부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부산지검이 복지부에 약가인하 조치를 받지 않은 제약사에 행정처분을 내릴 것을 요청했지만 복지부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이런 것들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사실 검찰의 역할은 리베이트 관련 수사자료를 복지부에 넘겨주면 끝난다. 이후 약가인하 처분을 내리는 건 복지부 소관의 일이다. 그럼에도 부산지검이 리베이트-약가연동제 처분 현황을 수사한데 이어 복지부에 행정처분 대상 조사를 강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건 왜일까. 답을 추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됐음에도 약가인하 처분을 받지 않은 제약사가 여전히 많다.”

사실관계를 추적해보자. 복지부는 리베이트-약가연동제를 실시한 2009년 8월 이후 약가인하 처분 고시를 총 다섯번했다. 첫 고시인 2011년 7월 21일 영풍제약ㆍ동아제약일동제약한미약품 등 총 7개 제약사의 131개 품목이 대상에 올랐다. 2012년 8월 23일 건일제약 5개 품목, 그해 10월 25일 한국오츠카제약 3개 품목, 진양제약 9개 품목, 2015년 3월 18일과 4월 17일 각각 명문제약 35개 품목과 대웅제약 5개 품목도 조치를 받았다. 5차례의 고시를 통해 12개 제약사 188개 의약품이 약가인하 조치를 받은 셈이다.

5년간 188개 의약품 약가인하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됐지만 약가 인하 처분을 받지 않은 곳이 숱하게 많다는 얘기다. 관련 통계도 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발표한 의료 리베이트 비리 수사결과에 따르면 2010~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의료기기업체는 총 14곳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업체에 내려진 복지부의 행정처벌은 아직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수사 자료를 받으면 동시에 처분가능여부를 조사 한다”면서 “경우에 따라 이르면 1~2달 내에 정해질 수도 있고 늦으면 1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는데, 아직 처분이 안 났다면 조사 중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해명에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숱하다. 가령, JW중외제약은 2010년까지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적발됐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그 때문에 2013년 4월에 복지부로부터 1개월 판매정지 행정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약가인하가 아니라 1개월 판매정지만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 리베이트 제공으로 인한 약가인하 처분을 받지 않은 셈이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사례도 수없이 많다. 건일제약은 2012년 8월 23일 약가인하 처분을 받았다. 2000여 기관에 38억원가량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가인하 대상은 170여곳 9억4000만원가량의 리베이트가 제공된 의약품으로 축소됐다. 2015년 3월 18일 행정처분을 받은 명문제약 역시 리베이트의 대상이었던 45개 품목 중 35개 의약품만 약가가 인하됐다. 적발된 리베이트 중 일부는 행정처분을 받지 않고 넘어갔다는 얘기다.

어떻게 약가인하 처분에서 벗어났나

명문제약 관계자는 “일부 의약품이 약가인하 처분을 받지 않은 건 저가의약품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관계가 비틀어져 있다. 가령 명문제약 의약품 중 20% 약가인하 처분을 받은 ‘명문메토카르바몰정’의 가격은 118원(인하 전)이었다.

하지만 저가의약품으로 약가인하를 면한 명문제약의 ‘미다컴주5밀리그람’의 가격은 700원으로 이보다 높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약가인하 처분을 내릴 때 판매가만 보는 게 아니라 채산성도 본다”면서 “이 때문에 기준에 따라 저가의약품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 기준이 무어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제약사가 뿌리는 리베이트는 대부분 약가에서 나온다. 그래서 리베이트가 횡행하면 일반 국민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복지부의 약가인하 처분을 제대로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진 문제도, 논란도, 허점도 많았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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