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세컨드 라이프 ➌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공병호(57)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지금까지 100여권의 책을 냈다. 대부분 실용서다. 그런 그가 50대 후반에 평전 작가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도 동원그룹 창업주 「김재철 평전」을 꼽았다. 1인 기업가의 모델인 그는 이코노미스트, 싱크탱크 수장, 벤처 CEO를 거쳐 17년째 나홀로 콘텐트를 생산한다. 그는 이 혁명적인 변화의 시대 금과옥조는 유비무환이라고 주장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1인 기업가의 모델이다.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그는 싱크탱크 수장, 벤처 CEO를 거쳐 17년째 콘텐트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 지난해 ‘파도를 헤쳐온 삶과 사업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동원그룹 창업주 「김재철 평전」을 낸 후로는 평전 저술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100여권의 책을 낸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50대 후반에 평전 작가로 데뷔한 그는 본격적인 국내 평전 작가 1호를 자처했다. “평전 출판이 활발한 구미에서도 평전은 보통 소설가나 저널리스트가 씁니다. 주 내용이 주인공에 대한 스토리텔링이고요. 반면 제가 쓰는 평전은 주인공이 몸담은 산업의 성장사를 함께 다뤄 연구서를 겸합니다. 분석적인 스토리북이라고 할 수 있죠.”

김재철 평전엔 수산업 발전사를 담았고 봉제 기업인을 다루는 다음 평전에선 봉제산업 성장사를 조명하려 한다. “봉제산업은 1970년대 연간 25%씩 성장했습니다. 그랬던 회사들이 그 후 거의 다 망했어요. 그 간난을 이기고 살아남은 봉제 기업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공 소장은 예향인 경남 통영 산이다. 서울의 중산층 출신이 아니라서 평전의 주인공들이 통과한 1930~1940년대의 신산한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기에 저도 시각이 보수적이고, 이분들과 나이차를 떠나 동년배처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복이죠. 그동안 쓴 다양한 실용서들은 결과적으로 평전을 쓰기 위한 습작이었다고 봅니다. 어떤 의미에선 저에게 평전의 세계는 무주공산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는 현대는 누구도 나를 보호해 줄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했다. 기술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 부단히 창조적 파괴를 시도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시대라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는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정직해 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자기 기만을 경계했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형편을 직시해야 합니다. 대학 나왔다고 다 삼성전자에 들어가는 거 아니죠. 삼성전자가 노키아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요.”

이 근본적이고도 혁명적인 변화의 시대에 유일하게 통하는 금과옥조金科玉條는 유비무환有備無患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흐름(flow)이 대세인 시대 그 자리에 머문다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공한 CEO들의 공통점은 모든 걸 알고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학습 속도가 빠르지만 그보다 실험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이죠. 시도해 보지 않고는 내가 무엇에 강한지도 알 수 없어요.”

계속 유행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에 현혹되지도 말라고 충고했다. 열심히 텍스트를 읽으면서 미래를 예측해 보려 애쓰고 시간과 에너지라는 자원을 자신이 하려는 일에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4차 산업혁명이 좋은 예입니다. 이제 전기가 통하는 모든 기계에 인공지능(AI)이 탑재될 겁니다. 의사, 애널리스트, 펀드 매니저 등 컴퓨터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 정보의 흐름과 관련된 일들은 아예 사라질 수도 있어요.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이죠. 어쨌거나 이런 변화를 두려워 말고 오히려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는 이런 시대엔 멘탈이 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자신은 남의 시선을 잘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1990년대 초 초임 연구원 시절 그는 자신의 이름의 첫 글자인 gong을 새긴 셔츠를 입고 다녔다고 했다. 그 바람에 그게 어떤 브랜드냐는 질문도 받았다고 말했다.

하루 2회씩 한달에 25~30회의 강연을 소화하는 그는 연 1회 정도 부득이 강연장에 늦게 도착하게 되더라고 했다.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는 늦으면 늦는 대로 자신이 왜 늦었는지 청중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그날 강연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모든 상황이 강연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인생 문장’은 “우리는 모두 지적 기업가”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말이다. 이런 취지로 그는 자신을 ‘콘텐트 크리에이터’로 규정했다. 지식 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와 다른 점은 저술과 강연에 나름의 창의성이 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시민이 판매자라면 자신은 생산자라는 이야기다.

1인 기업가로서 그의 주 수입원은 저술과 강연이다. 강연을 부탁 받으면 30분 일찍 강연장에 도착해 직접 세팅을 한다. 강연 중 보여줄 슬라이드를 미리 띄워 보는 식이다. 비록 청중은 없지만 강연 환경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청중과 더 잘 교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1인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자질로는 자신의 핵심 역량 내지는 본질적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노력을 첫손꼽았다. “고객에게 내가 전달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에 시간과 에너지라는 자원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장에서 성과를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1인 기업(가)도 일반 회사와 똑같은 기업이죠.”

자기 규율도 잘 돼야 한다. 재능이 있어도 절제에 실패하면 1인 기업가도 세계적인 대기업처럼 결국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유년 시절의 꿈은 뜻밖에도 기자였다고 말했다. 기자는 반응과 전환이 빨라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재능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능도 높지 않다고 했다. 학창 시절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스마트하지도 순발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고 자평했다.

공병호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차지한 지식 공장을 풀가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관찰하고 부단히 읽어 자기만의 지적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랬기에 종래의 평전과는 다른 장르의 평전을 쓸 수 있었죠. 미 서부 여행기 등 여행기도 학습을 병행하는 형식으로 꽤 써 놨는데 평전 작업에 밀려 마무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묘비명을 어떻게 기록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사회에 뭔가 플러스가 되려 했던 사람’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고되지만 지금처럼 이 세상에 족적을 남기는 삶을 살고 싶어요.” 

늘 과거보다 현재가 좋았다

공병호 소장은 살아오면서 가장 좋았던 시절은 과거 어느 때가 아니라 현재라고 말했다. 부침은 있었지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거나 새 고객을 만들어 스스로 생명력을 유지했다고 돌아봤다. “현재보다는 5년 후가 더 좋을 겁니다. 평전을 50권 쓰고서 인생을 하직하고 싶은데 지금까지의 대표작인 「김재철 평전」보다 나은 게 나올 거로 봅니다. 현대사를 개인에 초점을 맞춰 기록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그는 평전을 쓰면서 많이 운다고 털어놓았다. “때로는 감동을 받아 울고, 산업화 1세대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산업을 일으켰는데 그런 노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웁니다.” 그는 작가로서 공익적 마인드가 강한 건 경영연구소장 타이틀로 활동하지만 경영학이 아니라 경제학을 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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