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 우리나라 장애인의 이동권은 보장되지 않는다.[사진=아이클릭아트]
우리는 원하는 장소에,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는 일이 쉽다. 대중교통도 편리한 데다 도로 시스템도 잘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아니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긴 여행이 시작된다. 장애인 전용 자동차 하나 못 만드는 글로벌 자동차 생산국 5위 국가의 민낯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국가. 선진국의 필수 조건 중 하나다. 특히 정부는 소외계층인 장애인의 불편과 고통에 공감하고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일상생활의 가장 기본권리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이동권이란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고자 하는데 불편함이 없이 움직일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들어온 개념이다. 지하철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 보행환경 개선, 공공시설 접근성 개선 등 거리 모양이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장애인 배려 없는 교통 시스템

그럼에도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에게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그림의 떡이다. 미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흔히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미국에는 장애인이 많을까”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대중교통 환경이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불편한 환경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물론 우리나라 버스 중 일부에 장애인 보조 장치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전시용 장치’라는 방증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사람이 북적대는 출퇴근길에는 승·하차에서부터 막힌다. 지하철 환승 동선은 휠체어 탄 사람이 아닌 ‘걸어 다니는 사람’ 기준으로 짜여있다. 각종 표지판도 휠체어 탄 사람이 아닌 일반 성인 눈높이에 맞춰 부착돼 있다.

결국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동수단은 자가용 뿐이다. 물론 자가용이라고 편한 건 아니다. 각자의 장애에 맞게 운전할 수 있는 특수 장치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차량 가격보다 높은 특수장치가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 정부는 장애인에게 1500만원의 구조변경 비용을 일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장애 정도를 구분하지 않는 한계성 정책이다. 이마저도 직장을 갖고 있는 장애인 한정이다.

우리나라 완성차 제조사들도 장애인 전용 차량 마련에는 무관심하다. 주도적으로 장애인 차량을 공급하거나 중소기업과 협업하는 일은 없다. 그저 일반인을 대상으로 차를 판매하는 데 급급하다.

일본의 도요타가 중소기업과 협업으로 만든 수십가지 장애인 관련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장애인 차량에 필요한 특수장치들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산 제품이 없다보니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비싸게 들여와야 한다. 우리나라 자동차는 특수장치는커녕 트렁크 공간이 좁아 휠체어를 싣기도 어렵다. 글로벌 자동차 생산국 5위 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글로벌 자동차 생산국의 민낯

정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복지와 연관된 기관이 많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경찰청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기관이 많다보니 역할 분담이 제대로 안 되기 일쑤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다.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 컨트롤타워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에서 장애인 운전 관련 정책연구를 시작했다. 재활운전 마스터플랜을 짤 수 있는 첫 용역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 용역이 장애인들의 기본권리인 이동권을 끌어올리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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